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30일 정년퇴직했다. 퇴직하면 무지갯빛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회사 조직을 떠나서 홀로의 시간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가늠해보았다. 퇴직은 또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그 새로운 삶을 서울서 부산까지 자전거국토종주로 시작하기로 계획했다. 하루에 약 60여km쯤을 달리는 여정을 함께 나눈다.[기자말]
업힐의 두려움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시달리게했던 이화령 고갯마루에 비로소 섰다. 두려움은 직면하는 것으로 극복하거나 완화될 수 있음을 이화령이 알려주었다.
 업힐의 두려움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시달리게했던 이화령 고갯마루에 비로소 섰다. 두려움은 직면하는 것으로 극복하거나 완화될 수 있음을 이화령이 알려주었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충주 탄금대에서 문경 진남역까지 65.2km를 달렸다. 영하로 내려간다는 기상예보에 따라 복장을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어제 강천섬을 지날 때 처음 이화령 방향이 표시되었다. 고갯길마다 동료들은 이건 이화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언덕길에서 힘겨워하는 나를 격려하기 위한 응원의 말이었지만 이화령은 내게 어린아이에게 어른들이 말하는 호랑이처럼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그 호랑이를 대면해야 하는 날이다.​

다리 근력이 확실히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승패는 인내심이다. 끈기에 나를 실어 이화령을 넘겨주리라."

고갯마루까지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의 시험은 수안보를 지나자 시작되었다. 업힐 앞에서 숨이 가빠지기 전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아침의 다짐은 고개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부서졌다.

끈기를 발휘해 가파른 고개 하나를 쭉 올랐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골랐다. 다시 긴 오르막. 이를 악문 투쟁만 남아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조차 잊었을 무렵 마루에 도달했다. 이 투쟁의 보상은 내리막길. 내리막길에서 비로소 주변이 내게 다가왔다. 큰 바위에 조각된 두 마애불상까지... 몇 계단을 올라 감사 기도를 올렸다.

고개 아래에서 몸을 쉬면서 소조령을 넘으며 악다구니 친 나를 뒤돌아 보았다. 내가 넘은 것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한 고개라는 큰 새재, 조령에 빗대 '작은 새재'라는 소조령이었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이화령은 더 자주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화령이라는 문구가 어느 순간부터 투우사가 나를 향해 흔드는 붉은 천, 카포테 같았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직면하는 것이다. 나의 이화령을 임하는 결심은 정으로 치면 금방 깨질 것처럼 단단해졌다.

마침내 직면해야 할 이화령. 어금니를 한번 질겅 깨물고 출발했다. 내가 믿는 것은 어느 정도 적응한 다리의 근력과 나를 뒤따르며 매 순간 용기와 기술을 함께 주고 있는 코치인 차 여사님. 그리고 굽이마다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팀원들이다.
 
??마침내 직면해야 할 이화령. 어금니를 한번 질겅 깨물고 출발했다. 오르막 몇 굽이를 돌았는지 알 수 없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다리 근육이 마비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직면해야 할 이화령. 어금니를 한번 질겅 깨물고 출발했다. 오르막 몇 굽이를 돌았는지 알 수 없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다리 근육이 마비되지는 않았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오르막 몇 굽이를 돌았는지 알 수 없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다리 근육이 마비되지는 않았다. 소조령보다 두 배는 됨직한 업힐이었다. 4번쯤 멈추었지만 팀원들은 내가 당도하기를 기다려주었고 다시 정연한 대열로 출발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보이는 그곳, 그곳이 이화령 마루였다.
 
?마침내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보이는 그곳, 그곳이 이화령 마루였다.
 ?마침내 모든 것이 눈 아래로 보이는 그곳, 그곳이 이화령 마루였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금 자전거와 함께 백두대간 속에 있다."

절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 없이 이곳을 오르다니... 드디어 자전거가 나와 동행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화령 정상을 떠나기 전 할리데이비슨 투어링팀이 당도했다. 할리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한 바퀴 한 바퀴 내 육신으로 바퀴를 저어 올라온 이 상쾌한 기분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긴장이 차지했던 자리에 풍경이 들어왔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왜 숭고한지를 알겠다.
 ?긴장이 차지했던 자리에 풍경이 들어왔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왜 숭고한지를 알겠다.
ⓒ 강복자

관련사진보기

 
긴장이 차지했던 자리에 풍경이 들어왔다. 하루를 밭에서 노동으로 보내고 귀가하는 할아버지의 걸음이, 길가에 수확해 말리고 있는 들깨단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밭두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부부의 나란한 어깨가... 지극한 아름다움은 왜 숭고한지를 알겠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게 포스팅됩니다.


태그:#자전거국토종주, #이화령, #소조령, #은퇴여행, #자전거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