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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창원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든 <민주성지 창원마산 역사지도>.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창원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든 <민주성지 창원마산 역사지도>.
ⓒ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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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성지, 참으로 자랑스럽지만 '자랑'만 있고 '정신'이 없는 도시를 민주성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지도에는 자랑과 함께 반드시 정신도 담아내겠습니다."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창원시 지원으로 <민주성지 창원마산 역사지도>를 만들었고, 이를 제작총괄한 김영만 고문이 밝힌 말이다.

2015년 '마산 역사지도'를 만들었던 이 단체가 이번에는 '스마트시대에 맞춘 큐알(QR)코드 지도'를 만든 것이다.

지도 위에 표시된 큐알코드 위해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해당 내용을 소개한 블로그로 연결되어 내용을 바로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모두 17곳의 역사 현장마다 안내와 해설이 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지원에다 외국인을 위한 영문 해설도 지원된다. 역사 현장의 관공서와 학교, 지명은 당시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

창원마산 역사지도에는 △3.15의거 발원지(옛 민주당 당사), △부마민주항쟁 41주년 상징조형물, △6월민주항쟁 30주년 기념 표지 동판, △남성동파출소, △3.15의거기념탑, △무학초등학교 담장, △도립마산병원, △김주열열사 사망 장소, △마산시청,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마산경찰서, △경남대 10.18부마민주항쟁 기념 시원석, △부마항쟁 상징조형물, △북마산파출소 터, △3.15의거기념비명, △김주열 소공원, △국립3.15민주묘지가 담겨 있다.

김주열열사 사망 장소가 이전까지는 현재 '무릅병원'인 옛 남선전기 마산지원 앞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지도에서는 창원지법 마산지원 앞으로 해놓았다.

이 단체는 "최루탄을 박사라고 김주열 시신을 바다에 수장했던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박종표의 재판 판결문에는 김주열의 사망장소가 법원 앞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1999년 3월에 창립했다. 1944년 남원에서 태어난 김주열 열사는 남원 금지중학교를 나와 1960년 옛 마산상고(현 용마가) 입학시험을 쳤고, 그해 3월 15일 3.15의거 때 행방불명되었다.

그의 형이 합격증을 대신 받았고, 실종 27일만인 그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때 시신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일어났고 이를 '4.11민주항쟁' 내지 '마산2차의거'라 부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김주열 열사는 1995년 4월 11일 마산상고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고,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는 2011년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온 국민이 창원마산을 민주성지라고 불렀다. 1960년 마산의 3.15의거와 4.11민주항쟁이 4.19혁명으로 이어져 독재자 이승만이 물러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영만 고문은 "이 지도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시민들과 함께 더 많은 내용으로 채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2015년에 낸 지도는 한계가 있었다. 많은 내용을 담을 수가 없었다"며 "그래서 스마트시대에 맞춰 큐알코드를 통한 지도를 만들었고, 이는 해설자 없이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역사지도를 주요 관공서에 배포하고, 전화(055-221-1860) 등으로 요청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보내기로 했다.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창원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든 <민주성지 창원마산 역사지도>.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창원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만든 <민주성지 창원마산 역사지도>.
ⓒ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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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주열 열사,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민주성지, #역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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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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