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토),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효율적이다―엔지니어가 경험한 기술문명의 비효율성, 그리고 생태적 삶의 아름다움과 효율성'이라는 주제로 오닉스 인사이트에서 일하는 신원 님의 강의가 열렸다. 신원 님은 풍력발전 분야에서 대체에너지 실무를 맡아온 15년차 엔지니어로, 이날 기술문명과 생태적 삶에 대해 성찰해온 바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누어주었다.
상품화된 대안이 아닌 현실의 필요를 채우는 창조성
2018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2019년이 탄소배출의 정점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증가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발표 당시에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선언적인 목표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한 변화 속에 놓이면서 이 추세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기후변화 연구기관들의 예측이다. Carbon Brief 등 여러 연구기관은 2020년 탄소배출량이 전년 대비 4~8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산업계의 전망은 어떨 어떨까. 신원 님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국 석유기업 BP의 2020년 전망 보고서 발표 사례를 소개했다.
"BP는 이미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다다랐고,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된다 하더라도 완만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신재생에너지 쪽에 투자를 넓혀가려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요. 자본이 이미 이런 변화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가 과연 진정한 해결책이 될까요? 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재생에너지도 결국 다른 나라 소비자들에게 팔기 위한 새로운 산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상품화된 대안은 또 다른 착취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원 님은 15년차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자신이 배운 것과 배우지 못한 것을 이야기했다. 주어진 문제를 쪼개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법을 배웠지만,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전체와 연관시키는 능력은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현실 문제로부터 멀어지고 기술중심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설계 엔지니어가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컴퓨터로는 되는데 현장에서 안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전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도록 훈련받지 않는 것이지요. 현장에 가는 시간을 낭비라 생각하고, 그게 전문성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풀 가치가 있는 것인가'입니다. 문제 자체가 잘못됐는데 계속 탁월하게 풀어내면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효율성이 없거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창조성이란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원 님은 비무장 영세중립 국가로 잘 알려진 코스타리카를 예로 들며 우리에게도 문제를 현실화하는 능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스타리카는 2015년 이미 75일 연속으로 국가전력 수요의 99퍼센트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2021년까지 '탄소배출 제로국가'를 목표로, 숲을 키우고 모든 경제활동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코스타리카 대통령 카를로스 알바라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석이 아니라 사례"라고 했다. 기후위기와 탄소배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충분한 분석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한국, 기후깡패? 기후바보
기후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공공연히 '기후깡패'로 불린다. 2007~2017년에 다른 OECD 국가들은 탄소배출량을 평균 8.7퍼센트 줄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4.6퍼센트 증가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발표한 그린뉴딜에 끝내 2050년 탄소 중립선언을 담지 않았다.
신원 님은 "우리는 기후깡패가 아니라 기후바보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 먼저 우리가 피해를 입고 있다. 집중호우, 자원과 식량 수입 의존 등의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 최종에너지로 소비되는 비율을 보면 가정산업은 13.2퍼센트에 그치는데, 신원 님은 '자동차나 철강회사에서 쓰는 에너지가 훨씬 많은데, 집에서 불 끄고 아껴봤자 얼마나 영향이 있나' 하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개인의 노력은 큰 의미가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신원 님은 순환하는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생명체는 결정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카오스 효과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줄인다고 무슨 차이가 생기겠어?'라는 질문은 기계적인 생각입니다. 기계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지만, 시간성 속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작은 차이로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만 봐도 전기를 덜 쓰는 사람은 플라스틱도 덜 쓰고 자동차도 덜 타려고 합니다. 자동차 회사도 자동차를 자주 바꾸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그만큼 생산하는 것이고, 핸드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쓰고 버리는 문화가 바뀌면 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생명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계속 영향을 미치고,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지 모릅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돌림병으로 변화의 폭이 훨씬 큰 시기입니다."
환원주의, 기술중심주의 한계 넘어 '순환하는 삶의 회복'으로
신원 님은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난 변화로 '텃밭'을 들었다. 출장이 많은 편인데,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6개월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시간의 여백이 생기면서 마을 친구들이 해오던 텃밭에 참여했다. 음식부산물을 톱밥과 섞어 퇴비로 만들고, 그 퇴비로 텃밭생명을 키우면서 '순환하는 삶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더 깊이 들어왔다.
"작물을 키우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질소'입니다. 땅이 생산할 수 있는 양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토양에 있는 질소의 양이지요. 질소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콩과 식물에 있는 뿌리혹 박테리아, 휴경재배 등을 통해 질소가 토양에 공급되고, 이 토양에서 자란 식물을 사람이 먹고 퇴비와 거름을 통해 흙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에 의존하지요.
'식량을 증산하는 데 필요한 질소를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9년도에 프리츠 하버라는 과학자가 인공비료를 만들었습니다. 토양과 식물의 관계를 단순히 질소 공급으로 축소하여 환원시키고 기술로 해결하려 한 것이지요. 비료가 개발되면서 단일 작물을 광대하게 기계 재배할 수 있게 되어 식량 증산에는 성공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땅에는 질소만 있는 게 아니라 미생물, 미네랄, 유기물 등 수많은 다른 요소들도 있지요. 땅을 돌보지 않으니 땅이 황폐화해졌습니다. 여기에 최근 발견된 또 다른 문제는 황폐해진 땅은 이산화탄소 저장 능력이 떨어져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전체 연관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부분적인 해결책을 적용하니, 전체에는 오히려 큰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신원 님은 기술중심주의와 환원주의가 갖는 문제점과 비효율성, 그리고 생태적 삶 회복의 중요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강조했다. 전체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못한 채 환원주의적인 입장에서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그리고 이는 비효율뿐 아니라 순환하는 삶을 해치는 결과로 나타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순환하는 삶의 회복입니다. 농사짓는 땅이 회복되면 연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0~35퍼센트를 흡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땅을 살리는 것이 기후위기의 현실적 대안인 것이지요.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실행방법은 풀 멀칭하기, 퇴비 주기, 다양한 작물 키우기 등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늘 해오던 것들이지요. 검증되지 않은 값비싼 신기술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지속가능성이 검증된 옛 지혜에서 기후위기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신원 님은 강의를 갈무리하며, 함께 사는 삶의 경험 속에서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결국 삶의 구조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을 친구들 몇 명과 일회용기가 아닌 스테인리스 통으로 두부를 유통해보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 바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담아주시는 분이 통에 담아주셔야 하고, 두부를 사간 사람들도 통을 제때 돌려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실제 생활양식을 바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관계가 얼마나 만들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명만의 운동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문화를 만들어갈 때 가능한 것이지요."
이날 부산, 군포, 서울 등지에서 여러 사람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지만, 누구 하나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고 강의에 집중했다. 한 수강생은 "땅과 식물 미생물들의 역할, 공생 등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일상의 작은 실천이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결코 작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는 후기를 나누었다. 이번 강의까지 총 세 번에 걸쳐 '환경과 먹거리 이야기'를 주최한 밝은누리 인수마을밥상은 이후 강의에 참여한 이들과 밥상교제 및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밝은누리 누리집(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