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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업체에서 일하며 나는 전단지 알바에 대한 거의 대부분을 배웠다.

아파트를 돌며 공동현관문이나 개별 가구의 현관문에 전단지를 붙이는 방식에는 알바 혼자 가는 방식과 알바 몇 명과 팀장이 팀을 이루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방식이 있는데, 과외 업체에서는 두 번째 방식을 사용했다.

그때 내 일과는 이랬다. 출근시간은 대략 오전 9시나 낮 12시. 출근시간은 업체의 스케줄에 따라 바뀌었다. 주로 팀장이 전날 오후에 메시지로 "내일은 낮 12시까지 나와", "내일은 오전 9시야 늦지 마"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당일 오전에 전화로 "오늘 낮 12시까지 나올 수 있지?"라고 통보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하는 날에는 점심을 먹기 전까지 전단지에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한다. 낮 12시가 돼서 사장이나 팀장이 "밥 먹고 일하러 가자"하면 모두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간다. 오후 1시까지 점심을 먹고 전단지를 챙겨 팀장의 차를 타고 그날 전단지를 붙일 아파트로 향해,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퇴근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 소설을 쓰다 보면, 오전 9시까지 전주 인후동에서 사무실이 있는 효자동까지 출근하는 게 곤혹스러웠다. 졸려서 꾸벅꾸벅 졸며 전단지에 테이프를 붙이기도 했다. 졸면서도 반듯하게 붙은 테이프를 보며 나 스스로 '역시 나는 단순노동 체질인가?' 하다가도 '돈이 뭐라고 자면서 붙여도 반듯하게 붙이네' 하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짓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었던 팀장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팀장의 차를 타고 완주 봉동의 한 아파트로 이동했던 날, 나는 그날 처음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전단지를 빼앗겼다. 차로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하 주차장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가게 되었는데, 기다리던 도중 딱 걸린 것이었다. 경비아저씨가 나를 보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라면서 다가오더니 "이런 것 붙이면 안 돼요. 그거 이리 내"하고는 내 손에 들린 전단지를 뺏어갔다.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진짜 무슨 저승사자를 만나는 줄 알았다고요, 아저씨.

내가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챈 팀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고, 나는 "저 경비아저씨한테 전단지 뺏겼어요"라고 답했다. 팀장은 그 말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다른 데 가자. 일단 차로 와" 하고 큰 소리로 말했고, 경비아저씨는 나에게 뭐라 더 말하려다가 내가 "저희 팀장님인데 바꿔드릴까요?"라고 하자 그냥 보내주었다.

내가 차에 타자 팀장은 "그걸 뺏어갔어? 그냥 나가라고만 하면 될 걸 왜 뺏어가? 그 아저씨 성격 참 이상하네"라고 투덜거리고는 "너는 괜찮아?"하고 물었다. 내가 "네?" 하고 되묻자, 팀장은 웃으면서 "그 아저씨가 엄청 뭐라고 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담아두지 마. 일하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내가 보니까 낌새가 이상해서 전화한 건데 전화 잘했다. 그치?"하고는 "당분간 이 아파트는 못 오겠다. 다들 다른 아파트 가자"며 화제를 돌렸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 사람 뭐지?' 했다. 그런데 '이 사람 뭐지?'는 내가 거기서 해고되던 날까지 이어졌다.

전단 알바는 아파트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주택가까지 전단지를 붙이게 되었다. 문제는 주택가다 보니 전단지가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집주인이나 동네 주민이 전단지를 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분명 이곳에 전단지를 붙였는데, 나중에 보면 안 붙어있는 일이 생겼다. 

그것이 반복되자 사장은 내가 전단지를 제대로 안 붙이고 농땡이를 피운다고 의심했고 결국 나를 해고했다. 그때 나와 같이 잘린 분도 같은 이유로 잘렸는데 그분이 울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그러나 팀장은 날씨가 덥다며 자기 돈으로 알바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시원한 음료를 사주기도 했고, 혼자 사는 알바들에게는 그날 지급된 생수 중 남는 게 있으면 챙겨가라고 가방에 넣어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 사람은 왜 알바들에게 이렇게 잘해주지?'라는 생각만 할 뿐 직접 묻지는 못했다. 일하러 온 곳에서까지 누군가와 사적으로 대화하며 친해지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당시 나는 사람과의 대화를 스스로 단절한 상태였다.

그렇게 잘리고 나는 그곳에서의 기억을 잠시 묻어놓았다. 나를 해고한 곳에 대한 기억을 굳이 살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고, 굳이 기억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는 건 그것이 나의 삶이기도 했고, 그때 만난 팀장에 대한 기억도 나의 삶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억이 되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때의 친절함은 기억하고 있어요. 감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는 기자가 겪었던 또다른 알바노동기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태그:#노동, #수기, #전단지알바, #알바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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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한 1인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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