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단원고 학부모들을 간첩으로 취급했다."
세월호 희생자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 수사요청'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오마이뉴스>에 건넨 말이다. 4.16TV를 운영중인 문씨는 이날도 카메라를 챙겨 든 채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2014년 참사 당시 국정원은 팽목항에서 피해자 가족들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반공방첩 활동을 한 것"이라며 "팽목에 있을 때 손가락 없는 장갑을 낀 (국정원 추정) 사람들이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 우리는 일상적인 간첩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사참위는 "국정원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및 개인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조사한 결과 국정원이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를 위반한 혐의가 상당히 확인됐다"면서 "사회적참사 특별법 제28조(고발 및 수사요청)에 근거해 검찰에 수사요청을 할 것"이라 밝혔다.
사참위는 지난해 7월 18일 국정원으로부터 '세월호 참사관련 보고서' 215건을 입수한 뒤 이중 유가족관 관련된 48건의 문건을 확인했다. 사참위는 "국정원이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을 사찰했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여론조작 및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켰다"라고 발표했다.
사참위에 따르면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는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부터 11월 5일까지 8개월에 걸쳐 작성돼 청와대에 보고됐다"면서 "(사찰) 첫날인 17일에만 11건이 작성됐다"라고 강조했다.
유민아빠 사찰한 국정원… 병원까지 확인
이날 사참위는 "국정원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찰을 진행했다"라고 강조했다.
"최소 2명 이상의 국정원 직원이 김씨와 관련된 보고서를 최소 3건 이상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했다. 국정원이 작성한 (김영오씨) 보고서에는 '금속노조, 이혼 뒤 외면, 아빠의 자격 등 개인신상과 관련된 내용들이 SNS와 언론에 다뤄지기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관련해 박병우 세월호진상규명국장은 "국정원은 김씨의 주치의가 근무하는 서울동부시립병원의 원장 등을 (동향 파악 등을 위해) 미리 면담했다"면서 "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윗선에) 보고했다"라고 덧붙였다.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2014년 7월 14일 단식을 시작한 후 8월 22일 건강악화로 서울동부시립병원에 입원했다. 사참위는 "국정원 현장요원이 김씨가 병원에 입원하기 이틀 전인 8월 20일에 서울동부병원 원장을 직접 만나 김씨의 행방 등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박 국장은 "병원을 찾았던 국정원 직원은 사참위 조사에서 '일상적인 정보수집 활동'이라고 해명했지만 당시 CCTV 등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두 사람(국정원직원-병원장)의 만남은 일상적인 만남으로 보이지 않았다"면서 "병원장 또한 통상적 업무로 면담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김영오씨가 입원하기 전부터 해당 병원 원장을 만났다는 건 (김씨에 대한) 사찰이 진행됐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사참위는 또 "유민아빠 김씨의 고향인 전북 정읍시 담당 공무원이 김씨의 모친을 통해 김씨의 인적사항 등을 확인했다"면서 "관련 내용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 수석의 수첩에서 확인됐다. 보고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추측했다.
유튜브와 일베사이트 동원해 여론조작
사참위는 "국정원의 세월호 참사 관련 보고서에서 9건이 '여론 조작과 정국 제언 형식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국정원이 자체 예산을 들여 동영상을 제작한 후 유튜브와 일베사이트에 게시했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여론조작 및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켰다"라고 밝혔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복귀 분위기 조성' 등의 제목으로 작성된 국정원의 보고서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유족·시민단체를 보수언론과 논객 등을 통해 공격하고 세월호 추모 분위기를 공익광고 등의 캠페인으로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국정원에서 만들어진 영상이 실제 일베 등을 통해 유통된 것을 확인했다."
사참위에 따르면 국정원이 만든 보고서에는 '비판 세력의 희생자 추모 빙자 대 정부 투쟁 활동 방치 시 여론 쏠림으로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보수권의 맞대응이 필요하다'는 내용과 '보수언론에서 비판세력 유족을 이용한 정치공세와 유족들의 떼쓰기 행태의 문제점을 알려야 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참위는 "다수의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민간인 사찰과 개인정보 수집 등을 통해 여론조작 등이 이뤄졌다"면서 "이는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금지조항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사참위는 이날 오후 2시 30분께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 수사요청서를 전달했다.
한편 장훈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사참위 기자회견 후 "참사의 원인과 국정원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길래 국정원은 참사 피해자들을 2014년 4월 17일부터 사찰한 것이냐"면서 "박근혜 정권이 우리를 모욕하고 탄압한 국가범죄다. 이번 사건을 직접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검찰 수사는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