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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멜번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비.
아래로 멜번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워졌다.
▲ 한국전 참전 기념비  4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멜번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비. 아래로 멜번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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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한국 땅에 내린 것은 1951년의 아주 추운 겨울이었어요. 그리고 매일 전쟁터를 누비며 557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모르고 갔던 거죠."

올해 여든 일곱, 한국전 참전 호주 베테랑 켄 무어(Ken Moore) 옹은 그렇게,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한국 전쟁을 떠올린다.

"정말 추웠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내 기억 속의 한국은 춥다는 말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건강이 좋지 않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무어 옹이 기억하는 그 추위, 그것이 꼭 계절과 기온을 설명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조그만 아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 애들에 대한 기억은 늘 나를 슬프게 만들죠."

그 자신도 겨우 열아홉 소년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에서 전쟁의 공포, 경험해 보지 못한 추위와 싸우며, 아이들 때문에 흘렸다는 눈물은 어쩌면 자신의 가족이 보고 싶어 더 뜨겁게 넘쳤을지도 모른다. '해주', '군산', 그리고 '가평'. 그의 입에서 또렷한 발음으로 나오는 한국의 지명들. 열아홉 소년은 그래도 '살아 돌아와' 이제 여든 일곱의 노인이 되어, 정복을 다시 차려입고 훈장을 가슴에 달고 지팡이에 의존해 의미 깊은 행사에 참석을 했다.

멜번 한국전 참전 기념비 제막식. 많은 '전우'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한국전 참전 호주 용사들은 국내외 내빈들과 함께 이 뜻깊은 시간을 함께 했다.

지난 5월 2일, 풋츠크레이(Footscray) 소재 쿼리 공원(Quarry Park)에서 열린 멜번한국전참전기념비 제막식은 오전 10시, 멜번한국무역관 권영일씨가 진행을 맡아 소프라노 신혜원씨의 선창으로 양국 국가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환영사를 하는 김성효 멜번분관 총영사
▲ 김성효 멜번분관 총영사 환영사를 하는 김성효 멜번분관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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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례에 이어 김성효 멜번분관 총영사가 "여기 참석한 한국전 참전 호주 군인들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대한민국 평화 수호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요지의 환영사를 했다.

역시 환영인사와 제막식 설명을 위해 단에 오른 최종곤 멜번한국전참전기념비 건립 위원장은 "오랜 기간 준비를 하고, 기다림 끝에 오늘 제막식을 갖게 되어 정말 기쁘다"면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시는 피우진 대한민국 보훈처장, 이백순 대사, 가평석을 보내 준 김성기 가평군수, 로빈 스콧(Robin Scott) 빅토리아주 보훈처 장관, 그리고 멋진 지역 제공으로 도움을 준 마리비농 시장을 환영하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멜번한국전참전비 건립위원장의 자격으로, 오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 참전비를 헌납한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최종곤 위원장은 참전비 헌납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그동안의 일이 스치듯 잠시 울컥하는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2015년, 당시 조홍주 멜번분관 총영사와 최종곤 위원장 그리고 몇몇 뜻을 함께 하는 한인들이 모여 참전비 건립의 필요성을 토론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참전비 건립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쉽게 될 수 있는 일일까에 의구심도 높았으나 작게는 호주 베테랑 개개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보낸 50불, 100불부터, 몇 천 불, 몇 만 불의 성금까지 꾸준히 모이고, 스윈번 대학(Swinburne University)에서 멋진 디자인을, 가평군에서는 가평석을 실어 보내 주는 등 하나를 향한 마음이 굳게 모이며 이날의 멋진 결과를 끌어냈다.

톰 파킨슨(Tom Parkinson) 한국전참전호주용사회(Korea Veterans Association of Australia, KVAA) 회장은 답사를 통해 "오늘 놀라운 발전을 한 대한민국에 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렇게 멋진 참전비를 보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전우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하다"고 말했다. 특히 참전비 추진 사업을 함께 하다가 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뷕 데이(Vic Dey) 전 회장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이백순 호주 대사는 "아침부터 비가 내리더니 우리가 제막식을 하려는 지금 날이 개이고 있다. 아마 먼저 세상을 떠난 참전 영웅들이 하늘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는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또 오늘 이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점점 줄어드는 생존 베테랑들을 보며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지만 더 늦기 전에 오늘같은 시간을 갖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위안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또한 자유평화 수호를 위해 함께 해 준 호주와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지속 발전해 왔고 더 발전해 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우진 보훈처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 피우진 대한민국 보훈처 장관 피우진 보훈처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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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를 위해 멜번을 찾은 피우진 대한민국 보훈처장은 "오늘 이 뜻깊은 날에 먼저 참전용사, 가족들, 그리고 유가족들에 경의를 표한다"며 "최종곤 위원장과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대단한 일을 해 내셨다"고 인사를 했다. 이어, "오늘 제막되는 참전비가 다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며 참 인상 깊었는데, 왜냐하면 마치 혈맹국으로서의 한국과 호주를 잇는 가교를 의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피우진 처장은 세상이 잘 모르는 작은 나라, 전쟁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도움을 받아야 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를 향해 보답하는 나라로 성장했다면서 오늘 참전비 건립 제막이 또 한 번 도약하는 역사적 한 장이 되길 바란다"고 축사를 가름했다.

로빈 스콧(Robin Scott) 빅토리아 주 보훈처 장관은 멋진 참전비를 만든 스윈번 대학교 디자인 팀에 치하를 하고, 호주 참전 용사는 물론, 대한민국의 베테랑들의 자유수호 공로를 치하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남긴 업적이 오늘을 이룬 것이고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힘이 된 것이라며 앞으로도 빅토리아 주정부는 지금까지 참전비 건립을 위해 그랬듯 기꺼이 후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틴 마크하로브(Martin Zakharov) 마리비농(Maribyrnong City Council) 시장이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시에 이런 기념비를 갖게 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이야기 하고, 김성기 가평 군수가 "참전군인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알게 되어 서둘러 협조를 한 것"이라며 호주 군인들이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며 수호했던 가평의 돌을 이곳에 두게 된 것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인사를 했다.

환영사, 축사 등의 순서에 이어 호주 해군 군악대의 의장에 맞춰 피우진 대한민국 보훈처장과 로빈 스콧 빅토리아주 보훈처 장관의 리드로 동판 제막을 하고 존 브라운힐 (Fr. John Brownhill) 신부가 간단한 순국선열을 위한 기도와 예식을 진행했다. 존 브라운힐 신부는 한국전참전호주용사회원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미리 신청을 한 헌화 희망자들이 준비한 꽃을 가평석 주위에 바치며 희생 전우들의 명복을 비는 순서가 이어졌다.
 
행사 후 미리 신청을 한 많은 내빈이 헌화를 하며 한국전 참전 호주 용사들의 뜻을 기렸다
▲ 헌화 행사 후 미리 신청을 한 많은 내빈이 헌화를 하며 한국전 참전 호주 용사들의 뜻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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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에서 온 김장성 국립인천대학교 겸임교수는,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박태환 장학재단 추진위원회를 통해 한국의 대표 수영선수 박태환씨의 참전비 건립 기부금 6천 불을 전달하고 자신과 박태환 선수의 이름으로 헌화를 했다. 박태환 선수는 이번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경기 관련 일정 때문에 방문을 취소, 아쉬운 인사를 전해왔다.

또 가장 먼저 기획, 건의를 하며 재임기간 동안 부지 답사, 디자인 팀과의 미팅 등 부지런한 행보를 모여 초석을 놓는 데 큰 공헌을 한 조홍주 전 총영사는 "제막식의 뜻깊은 자리에 꼭 참석해 축하를 하고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었으나 아쉽지만 이번에는 참석을 할 수 없다"며 "그동안 수고한 빅토리아 주의 모든 한인 여러분,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축하를 드린다"고 <멜번저널>과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알려왔다.

아침 일찍 내린 비는 전쟁이 남긴 슬픔의 분위기를 주었으며 그러나 평화수호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 덕분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축복하고, 참전비로 기억해 주는 것에 감사하듯 맑게 갠 하늘 아래, 참가자들은 모두 '감동적인 행사였다'는 소감을 남겼다.

참전비를 둘러 본 후 멜번 타운홀(Melbourne Town hall) 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국전호주참전용사와 가족들 및 내빈들은 피우진 처장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오찬을 함께 나누고 문화패 소리의 한국무용 공연, 정승영 씨를 비롯한 현악4중주단의 연주 등을 관람하며 친교의 시간을 이어갔다.

미처 참석을 하지 못한 다니엘 앤드류스(Daniel Andrews) 빅토리아 주총리가 보낸 축하 메시지 동영상이 소개되었다.  또, 이 자리에서 최종곤 위원장과 나인출, 김용귀, 박동구, 김경운 위원들에게 피우진 처장의 공로패 전달식이 있었으며 최종곤 위원장은 마리비농시, 스윈번대학교 디자인팀, 가평군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특히 노구를 이끌고 아침 행사와 오찬에 참석한 멜번의 한국전 참전 한국인 용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열 명 정도로 가끔 만나고 친교를 이어왔으나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김동업, 이상준, 김홍철, 홍장희씨가 남아있다. 이날 행사에는 홍장희씨를 제외한 3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 호주 베테랑들과 인사를 나누며 옛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다.

또한 백낙준 시드니 참전비 기념비 추진위원장과 재호한국대사관의 최성만 국방무관이 자리를 함께 했고, 2년 후, 퍼스에 참전비 건립을 계획하고 있는 이진규 재향군인회장, 박우빈 기획실장, 피터 허니(Peter Herney) 퍼스 공무원 등도 참석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전을 세계 두번째로 결정하고 미지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달려왔던 호주의 군인들.

"Dear my Friends…" 기도 인도에 앞서 조용히 먼저 간 전우들을 불렀던 브라운힐 신부의 그 한마디가 가슴 뭉클한 여운을 남기며 이날 행사의 마침표로 기억되어진다.

친애하는 친구로 다가와준 호주 군인들. 열아홉 스물의 앳된 청년에서 주름 가득하고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는 노인이 되어 발전한 한국, 보답할 줄 아는 나라가 된 모습을 자신의 일인 양 자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Thank you Australia and Veterans."

덧붙이는 글 | 조금 다른 각도의 글이 첨부된 동일한 기사가 멜번의 한인매체 멜번저널에 게재됨.


태그:#멜번, #한국전참전비, #평화수호, #가평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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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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