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5 18:28최종 업데이트 19.03.27 11:38
'버선발'은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의 곁을 지키고, 한평생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버선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버선발'은 '맨발, 벗은 발'이라는 의미인데요, 백 선생님 책 출간에 부쳐 사회 각계에서 '버선발'을 자처하는 이들의 글을 '우리가 버선발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어 차례로 싣습니다. 이 글은 그 첫 순서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버선발 이야기>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유성호

 
'너도 잘 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 다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라네'

버선발은 희망의 언어이자 몸짓이었습니다. <버선발 이야기>의 첫 장을 접했을 때는, 고약한 욕심에 짓이겨지는 민중들의 설움으로만 알았습니다. 버선발이 스스로 일어서 외로이 맞붙는 한판에 나섰을 때, 저항의 영웅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다 읽었을 때는 참세상을 만들려는 민중들의 휘몰이와 빼앗긴 희망을 되살리는 염원에 가슴 뜨거웠습니다. <버선발 이야기>는 거짓을 깨뜨리고, 체념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니나(민중)들의 노나메기를 향한 염원이었습니다.


<버선발 이야기>에 등장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니나들의 일생은 설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내 거'밖에 모르는 막매 놈의 횡포와 거짓, 뭇별들에 채찍질과 강탈을 행사하는 장면은 현실 곳곳에 있습니다.

존엄의 권리는 상실되고, 자신의 생명과 재산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숨들이 겹쳐집니다. 양극화는 심각해지고, 불의가 횡행하는, 불평등한 '오늘날'의 모습이 버선발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불평등한 오늘의 모습이 담기다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지음. ⓒ 오마이북

 
버선발이 만났던 팥배, 개암이, 애뚝이, 젊은 아낙은 낯설지 않습니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죽은 비정규직 청년, 426일간 굴뚝농성한 노조원, 생활고로 생을 마감한 누군가의 서러움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이 괴로운 이야기에 이 시대의 고민들이 교차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처한 고난, 악화되는 삶의 질, 무너지는 경제와 더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좌우 갈등과 사회적 대결, 소모적 정쟁, 시대의 향방에 대한 무지와 편견, 나눔과 돌봄의 가치가 사라져 버린 공동체,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노동, 일을 해도 잔고가 늘지 않는 생활. 제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삶, 우리 세상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버선발에게 개개인이 짊어지는 고통을 주는 "틀거리(체제)를 왕창 부셔달라"는 머슴할머니의 말이 계속 남습니다. 머슴할머니는 분노와 저항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괏따 소리'(거짓을 깨뜨리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는 광장에 모인 민중들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고했던 백기완 선생의 소리였습니다.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는 우리 공동체의 값진 승리의 경험, 촛불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이 흘린 박땀, 안간땀, 피땀의 깨우침입니다. '사람의 뜻이 채가 되고 사람의 마음이 긴 북이' 된 한바탕에 수많은 버선발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선생은 "없는 길은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고 앞서가면서 가야 할 길을 함께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그이의 버선발은 불평등 사회를 뒤엎을 시대정신이자 촛불시민입니다.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을 거쳐, 1987년 6월항쟁,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촛불혁명까지. '삶이 곧 역사'였던 선생은 이렇게 당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벗나래(참세상)와 거짓 세상을 분별하라, 다함께 하나가 되어 다함께 부르며 열어간 앞날에 대해 치열하라'고.

<버선발 이야기>를 읽고 난 후, 광장에서 울고 웃었던 시민들이 절절히 떠오릅니다. 참세상을 연 '버선발'이 이렇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삶을, 어떤 가치를,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 '버선발'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틀거리를 바꿔야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사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참된 하제, 노나메기 세상이다."

버선발은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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