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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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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위 보도자료[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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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2일, 김포의 한 건설 현장에서 스물여섯 살의 청년 노동자가 추락 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가 난 뒤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병원에 호송되었고, 결국 뇌사판정을 받았다. 18일이 지난 후에 4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9월 8일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도대체 왜 떨어졌는가,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나, 왜 곧바로 구조되지 않았는가, 젊은 나이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예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싸늘했다. 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

고 딴저테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단속 과정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단속 반원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들이닥쳤고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단속반원의 바디캠에 담긴 단속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한국인임에도 일단 제압하고 수갑부터 채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떤 경위로 사고가 발생했는지, 단속과정에 위법사항은 없었는지, 도대체 이 청년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은 처음부터 어떠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고, 대책위의 면담마저 거부한 채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김포경찰서는 본인이 실족해서 추락했다며 범죄혐의는 없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법무부는 사건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처음에는 공개하지 않다가 대책위가 문제제기하자 일부만 보여주었다. 법무부는 대책위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항의를 하면 이전에는 없다던 더 긴 영상을 보여주고, 추궁하면 그제서야 음성까지 들려주는 등 불신을 자초했다.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려던 법무부는 항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생기자 조금씩 '해명'과 '변명'을 내놓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단속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인권위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
 인권위 권고 이행 촉구 기자회견
ⓒ 대책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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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단속과정에서의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직권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권위는 단속반원과의 신체적 접촉이 추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된 단속으로 인한 사고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주문사항에는 법무부와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의 분명한 책임을 명시했다. 인권위의 핵심적인 권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조사과장 A씨와 조사과 직원 B씨에 대하여 징계조치
2. 단속의 근거가 되는 '긴급보호서'의 사용 최소화
3. 사고의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즉시 단속을 중지할 것과 사고 발생 시 인명 구조를 우선적으로 취하도록 세부 단속지침 마련, 구체적인 안전대책을 세우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
4. 단속과정에서 발생되는 사실상의 체포 및 연행 등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감독 방안 마련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법무부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해 왔음이 드러났고, 사망사건에 대한 법무부의 책임이 명확했다. 아직까지 법무부의 권고 이행 약속, 공식적인 해명과 입장발표는 없지만 인권위 조사 결과로 늦게나마, 아주 조금은 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서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있다. 행정절차 상의 서류미비자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여전히 단속의 대상으로 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속이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하라는 것은 단속 자체의 폐해를 막기에는 부족하다. 단속 과정에 대한 안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고 해도, 단속 과정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참사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다. 세상에 '안전'한 단속은 없다. 사실 문제는 단속 '과정'이 아니라 '단속' 그 자체에 있다.

'보호'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폭력
 
2월 25일 김해에서 일어난 사고를 다룬 KBS 보도.
 2월 25일 김해에서 일어난 사고를 다룬 KBS 보도.
ⓒ KBS 뉴스9 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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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22일 김포. 7.5m에서 추락하여 뇌사 상태 이후 사망(미얀마)
- 2018년 10월 29일 수원. 4층 건물에서 추락하여 중환자실(태국)    
- 2019년 2월 인천. 단속과정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태국, 확인중)
- 2019년 2월 25일 김해.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서 구토 및 의식불명 사태 발생(베트남)


최근 몇 달 간 단속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다. 아마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있을 것이다. 법무부가 단속 추방 정책을 꾸준히 강화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한 단속은 역설적이게도 '보호'라는 미명 하에 이뤄지고 있다. 관련 법 조항을 보면, 강제퇴거 대상자에게 출석을 요구하여 그 사실을 조사할 수 있으며,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심사를 위해 보호명령서를 발급하게 되어있다. 또한, 보호명령서를 발급하기 위해서, 그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그러나 딴저테이씨의 사망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외조항을 악용하여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자체적으로 긴급보호서를 발부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단속과정에서 제대로 된 영장 하나 없이 체포, 구속하여 신체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행정절차에 불과하다며, 살인사건 용의자에게도 필요한 구속영장 하나 없이 체포가 이뤄짐에도, 영장 심사와 같이 제3자에 의한 통제나 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에 어떻게 보면 형사절차보다 훨씬 막강하다.

현행법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행정범으로 분류된다. 형사범과 같은 수준의 위법을 범한 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흔히 '서류미비자'로 분류한다. 지명수배자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공권력이 강제력을 활용하여 긴급체포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법무부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정서와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조장하면서, 동시에 이를 활용하여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 아무런 감시와 제재를 받지 않는 단속과정에서, 공권력은 결국 괴물이 되었고, 매년 희생자를 만들고 있다.

제도가 불법을 양산하고 있다

이 세상에 안전한 단속은 없다. 미등록을 양산하는 제도가 문제다.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고용주가 보내온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최소 3년 동안은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로 사업장 변경요건을 강화하고 사업장선택권을 박탈하는 등 고용주의 편의에 맞춰 법이 개정되고 있다. 2014년 국제앰네스티는 이주노동자 착취와 이동의 자유제한이 국제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고용주가 악의적으로 사업장이탈신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고용주가 외국인노동자에게 휴가를 준 후 고용센터에 '근로자가 사용자의 허락 없이 결근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업장이탈신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등록 노동자가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도, 고용주에게 막대한 권한을 쥐여줬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 노동자를 이탈신고 하면 비자를 잃게 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으니 열악한 근로조건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비자가 없어진다. 고용허가제 기간이 4년 10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비자 만료 상태로 초과체류를 하기도 한다. 사실상 잘못된 정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높은 경쟁을 뚫고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무사히 가족들이 있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제 단속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숫자가 35만 명(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18년 12월 통계월보 기준)이나 된다는 것은 제도상의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단속과 허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사실상 정부는 한쪽에서는 무자비한 폭력 단속으로 겁박하고, 한쪽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면서 정부가 생각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적절한 수를 '관리'하고 있다. 그간의 자료들을 보면, 법무부가 미등록자들의 상한선을 두고 이를 넘어서면 무자비한 폭력 단속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적절한 수준의 미등록자들이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단속에 대한 공포야말로, 미등록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이주노동자들이 주어진 노동조건을 감내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불합리한 제도로 미등록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비인간적인 폭력 단속이 노동력 수급정책의 일환처럼 활용되고 있다. 단속과 추방이 아닌 합법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어느 이주노동자의 죽음 한 달 뒤...
 
딴저테이씨 사망사고 이후 발표된 법무부 보도자료 캡쳐
 딴저테이씨 사망사고 이후 발표된 법무부 보도자료 캡쳐
ⓒ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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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저테이씨가 세상을 떠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18년 9월 20일, 법무부의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서민 일자리 보호 및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건설업 미등록 노동자들을 엄정 단속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신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쉽게 수용하고, 이는 그렇지 않아도 불법 도급으로 열악한 건설 산업의 노동조건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서민 일자리를 보호하고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런 장시간 고강도, 고위험 노동을 개선해 근본적으로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다. 불만은 어떻게든 표출될 수밖에 없고, 분노의 화살을 가장 배척하기 쉬운 이주민에게 돌리고 있다. 사람들은 작은 것에 더욱 쉽게 분노한다. 공포와 혐오는 사회적으로 조장된다. 그 속에서 이득을 보는 자는 분명 '서민'은 아닐 것이다.

태그:#딴저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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