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29 09:32최종 업데이트 19.01.29 10:09
김영빈님은 데블스TV 크리에이터로 '낚시왕 김낚시' 등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엄마 아빠는 PC충 ⓒ 유병재 유튜브


지난 18일 유병재의 유튜브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엄마 아빠는 PC충'이라는 제목을 달고 과격한 'PC주의자'(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사람들)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에는 외국인(백인) 남자와 한국 여자 커플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여자의 부모로부터 "(남자친구가) 흑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육식은 비도덕적인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란다", "(남자가 쓴 소설 내용을 가리키며) 아군 중에 트랜스젠더 장군이 한 명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등의 황당한 발언을 듣게 된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조롱으로 읽힌다.


나는 영상이 재생되는 6분 동안 굉장히 기괴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정확히 어디서 오는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의 달인이었고, 이 타이틀은 여전히 건재하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과연 영상에 나오는 'PC충'은 실재하는 권력체인지, 그가 무엇을 비판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졌다.

작년 4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논란 때 그는 자신의 젠더 권력을 되돌아봤다며 대중 앞에 사과했다. 나는 당시 그에게 가해지는 댓글들이 과격하다 느꼈고, 사과를 하는 것은 '오버'라고 생각했다. 한 작품을 두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의 연기나 시나리오 등에 기준을 두고 칭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드라마 내용에 공감한다는 그의 평가 역시 존중했다.

그런데 이번 영상은 상당 부분 동의하기 어렵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참혹한 심정이다. 그가 과거에 겪은 개인적 '곤욕'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그것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콘텐츠로 발현된다면 사안을 분리해야 했다.  
  

[유병재 스케치] 엄마 아빠는 PC충의 일부분. '트위터'가 언급된 이유는 그가 '나의 아저씨'에 대해 호평을 쓴 이후 가장 크게 비난받은 SNS가 트위터이기 때문이다. ⓒ 유병재 유튜브


'과격하다'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은 대체로 과격할 일이 없다. 자신의 삶에 과격함이 동원되지 않아도 나름 순탄하게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영상은 기만적이다.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한 채 약자를 희화화했고, 다양한 계층에서 일어나는 저항적 외침을 '벌레'라는 단어로 묵살했기 때문이다.

그가 평소 혐오문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이 영상은 과거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콘텐츠라는 느낌이 강하다. 

본인이 당했던 개별적 사안을 교묘하게 구조의 문제로 엮고, '충'이라 놀리며 으름장을 놓는 것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다. 사회 비판은 권력과 시스템을 향한 저항이기 때문에 늘 위험이 도사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유병재는 안전하게 약자를 희롱한다. 대중을 등에 업고 '공격해도 될 만한 상대'만 골라, 아무것도 잃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한 줌의 PC함도 두고 볼 수 없는 기득권적 태도로 사회를 비판한다는 것, 나는 이것을 '안전한 싸움'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이 싸움은 수많은 갈등 양상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싸워준다는 정의로운 이미지만 체득한 채,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하고 편견만 고착시킬 따름이다.

그는 죽은 권력인 전두환을 '개새끼'라 욕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저항을 '벌레'라 칭한다. 이것은 다수의 힘으로 소수자와 다투는 한국사회 혐오문화의 민낯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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