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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금강산도 변했을까?"

한동안 초겨울처럼 쌀쌀했던 날씨가 한껏 누그러져 만추지정을 느끼게 하던 지난 3일과 4일, 금강산에서는 남측 민간인 250여 명이 2008년 이후 10년 만에 금강산을 방문했습니다.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민화협 연대 및 상봉대회'라는 이름의, '하나되는 남과 북, 평화와 번영의 통일 조국을 세우자!'라는 부대 명칭을 단 행사였습니다.

3일 이른 새벽 출발 시각 탓인지 아니면 두근거림에서인지 출발 전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10년 전인 2008년 여름, 6.15선언 8주년 기념대회를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만, 너무 오래된지라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 볼 정도로 변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품고 길을 떠났습니다. 지난 겨울 100여 명의 여성들이 '2018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를 하면서 고성을 지나 제진검문소와 717OP까지 걸으면서 봤던,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해금강의 바닷물은 그대로였습니다.

커다란 철문과 철조망에 가로막혀 <총을 내려> 노래와 퍼포먼스, 평화협정체결 등을 외쳤던 남방한계선을 지나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버스는 다시금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게 했고 가슴은 내내 먹먹했습니다.

다시 금강산으로 가는 길, 날씨는 포근하고 하늘은 이틀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습니다. 다소 긴장감이 감도는 북측 출입사무소 앞에서 "백두산뿐만 아니라 금강산도 3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농담을 우리끼리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여성·노동·농민·청년학생·교육·종교 등 총 6개 부문의 분야별 회의는 첫날인 11월 3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됐습니다. 남북여성회의는 외금강 호텔 회의실에서 진행됐으며, 북측에서는 조선민주녀성동맹, 민족화해협의회 녀성부, 6.15북측위 여성분과 등에서 5명의 대표가 참여했습니다. 남측에서는 민화협 여성위 소속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YWCA 등 5개 단체에서 5명의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대 활발했던 남북민간인교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거의 중단됐습니다. 여성의 경우 2015년 분단 70주년을 맞이해 '우리민족끼리, 여성끼리 만나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10월 한 달 내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통일부의 '비정치적'이라는 조건부 허가 하에 개성에서 당일치기로 100여 명의 남북여성 상봉모임을 갖기는 했습니다만, 적극적인 여성의제를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번 남북여성회의에서 북측여성대표단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측의 성의 부족, 열의 부족'을 이야기하며 회의 내내 섭섭함과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선언을 이행해 나가자, 분위기를 만들자, 옳은 태도와 입장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하면서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있는 대북제재의 현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대북제재라는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는 한 어떠한 선언도 무의미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북측과 달리 남측은 다양한 목소리와 구체적인 제안과 계획을 개진했습니다. 판문점의 시민화, 여성들이 만드는 판문점 평화지대화 방안으로서 김치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행사 개최, 한라에서 백두까지 여성평화 걷기, 국제평화여성단체와의 연대, 개성과 판문점에 남북여성연락사무소, 평화센터 개설 등이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이 모든 제안이 대북제재라는 장애물이 있는 한 순탄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먼저 여성들이 앞장서서 가열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여성대표단은 대북지원조차 일일이 미국의 점검을 받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국제여성평화연대를 통해 미국과 유엔 등을 향해 대북제재는 여성과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제재론자들은 제재에 대해 군사적 침략 대신 쓸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이라고 홍보하지만 제재는 결코 외교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재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전쟁의 수단일 뿐입니다. 제재는 사회의 취약계층인 여성, 어린이, 노약자, 환자들에게 불균형적으로 가해지는 전쟁의 도구입니다.

유니세프는 현재의 대북제재 하에서 앞으로 6만명의 북한 어린이들이 사망할 것이며, 살아남은 어린이들 또한 심각한 영양부족과 성장장애를 겪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Mary-Wynne Ashford, 'Role of Women for Peacebuilding,' Seoul International Women's Peace Symposium, May 24th 2018).

우리측 여성들은 현재 세계여성평화연맹(WILPF), WCD(WomenCrossDMZ), 여성노벨평화상수상자회(Nobel Women's Initiative) 등 국제평화여성단체들과 함께 'Peace Treaty 2020' 프로젝트로 미국과 유엔을 상대로 한 한반도 평화협정체결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구체적으로는 12월 초 북측여성대표단도 참여하는 6개국 '동북아여성평화안보회의'와 2019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SW)를 전후한 여성대표단의 미국 방문 등을 확정해 실행 중에 있음을 북측여성대표단에게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회의 시간 내내 대북제재 해결이 없는 남측의 다양한 사업제안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나 한껏 부풀어 있던 마음이 가라 앉으며 착잡해졌지만, 10년간의 공백을 메울 시간과 노력이 서로 필요함을 다시금 절감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이튿날(4일) 쾌청한 가을 하늘 아래 남북여성들이 다같이 팔짱 끼고 맑은 삼일포 호수가를 돌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공존 방안을 함께 의논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만나야 평화고 만나야 통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김정애씨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입니다.


태그:#여성, #금강산, #한반도평화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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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시각에서 한반도 분단체제의 문제점과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고, 성평등한 한반도 평화공존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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