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차별화한 콘텐츠로 동네서점을 살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서점의 생존을 고민해온 동네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시작된 '서울서점주간(서울특별시 주최·서울도서관 주관)'은 '제3회 서울서점인대회' 기념식과 컨퍼런스로 그 시작을 알렸다.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이날 컨퍼런스는 진주와 구미, 서울에서 오랜 기간 동네서점을 운영해온 서점인들의 서점 운영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서점인이 말하는 서점의 변화'라는 주제로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김기중 구미 삼일문고 대표, 정성훈 서울 관악구 북션커뮤니케이션 대표가 발표를 맡았다.
올해로 3회째인 서울서점인대회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 서점인들의 네트워크 형성 및 정보 교류를 통해 각 지역의 서점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됐다. 서점인들의 고충을 듣고 해법을 마련하는 자리다.
문소리 아나운서의 사회로 시작된 서울서점인대회는 김의수 서울서적조합장 등의 축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상인사, 서울서점인상 시장 표창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공간과 내용의 변화를 고민하는 동네서점
본격적으로 '지역서점 진주문고, 현재에서 미래를 찾다'라는 주제로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가 발표를 시작했다.
여 대표는 지금까지 책을 파는 공간은 일상적 공간이었지만, 어느 때부터 특별한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책도 특별한 물건이 됐고, 책을 사는 사람은 귀한 사람이 됐고 책을 파는 공간도 특별한 사람이 와서 한 권을 사야 역할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며 "정답은 없고 해답만 난무한 세상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진주문고도 해답 중 하나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해온 그는 지역서점 위기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구절벽에 따른 독서인구의 절대 감소, 대기업 프랜차이즈서점과 온라인서점의 무차별적 독과점 체제, 책보다는 속도와 정보로 대표되는 영상 세대의 사회 주류 편입 등을 지적했다. 내부적 요인으로 그가 발견한 문제점들은 그의 서점 리뉴얼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문제점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직원과 경험이 공간에 녹아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리뉴얼 원칙은 있는 책을 줄이진 않고 있는 공간을 현대에 맞게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진주문고는 공간을 더 늘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525평 규모로 1~3층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층마다 차별화한 주제가 있다.
1층은 '진주콘텐츠관'이다. '진주문고에 왜 가야만 하는가'하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여 대표는 "우리만 취급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와야만 살 수 있는 것에 착안했다"며 "지역에 있는 작가들과 함께 진주콘텐츠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관련 도서뿐 아니라 지역작가들이 만들어낸 수제 아트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여 대표는 "'진주커피'라고 하는 책을 품고 있는 건강한 일상 수다 공간도 만들었다"며 "책을 안 사도 서점 와서 차 한잔 즐기면서 책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2층에는 '여서재'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매일 강연이나 공연, 전시 등이 이뤄진다. 거의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여 대표는 "서점 생존에 어떤 역할을 할까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며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도 꼭 참고서가 아닌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책들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청소년 전용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3층은 진주문고의 핵심이다. 기존 여러 가지 고민을 총체적으로 풀어낸 공간이다. 여 대표는 10진 분류법으로 도서를 분류하지 않는다. '장르별 서가' '주제별 서가' '문학존' '청년존' '지혜존' '감성존' '기획존' 등으로 분류한다.
그는 "공간의 구체적 변화에 따라 내용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며 "판매되는 책뿐 아니라 앞으로 판매될 책들과 판매돼야 하는 책들을 제시하는 공간이야 한다는데 변화의 중심을 뒀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등서가 방식에서 책 표지를 중심으로 각 장르별 혹은 주제별로 책을 제안한다"며 "표지 서가와 평대의 주기적인 순환을 통해 서점을 찾는 이들이 더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서가를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독특한 점은 진주문고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책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 대표는 서점원 역량 강화가 필수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책과 상관없는 직원들에게 책을 읽히기 시작했다"며 "면접을 통해서 한 달에 2권의 책을 읽어야 된다는 의무를 주고 'yes'하는 직원만 뽑았다"고 말했다. 직원 독서토론회도 있다. 고객에게 진열하고 판매하고 소개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초기 기계적이었던 직원들도 지금은 적극적이다.
서점 존립 문제와 연관하기 때문에 정가제 판매를 벗어난 적 없다는 진주문고는 대신 그날 와서 책을 사지 못한 고객들에게 택배나 직접 배달, 인센티브 쿠폰 제공 등의 서비스를 한다. 서점에 다시 오게 하려는 노력이다.
도시 변화의 시작을 기대하게 하는 동네서점
다음 발표자인 김기중 구미 삼일문고 대표는 '지속가능한 서점에 대한 모색'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서점이 지속 가능한가'하는 고민은 처음 그에게 '짐'이었다. 구미 지역에서 서점은 지속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구미에 있던 큰 서점이 없어졌을 때 김 대표는 서점이 문을 닫은 것이 과연 서점만의 잘못인가, 방관하고 있던 나는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대구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며 "그런데 이 행복을 더 이상 구미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모르고 자라겠지, 구미 시민들은 시간을 내서 멀리 오지 않으면 행복을 경험할 수 없겠지 하는 생각에 슬펐다"고 했다. 김 대표가 서점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서점을 하면 똑같은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 뻔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서점을 모색하기 위해 3년간 전 세계 서점과 도서관, 북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찾아다니며 답을 찾아갔다.
많은 고민 끝에 김 대표가 내린 나름의 답은 3가지다. '공간', '북 큐레이션', '지역 문화사랑방'.
먼저 아름다운 서점, 편안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좋은 공간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으로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목수한테 찾아가고 건축가를 만나 3년 정도 프로젝트를 했다"며 "공간 만들 때 3가지 포인트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째로 감동과 위로를 주는 편안한 공간이다. 그래서 삼일문고는 하얀 불빛 대신 노란 불빛을 선택했다.
두 번째는 책 성격에 따른 개성 있는 공간 구성이다. 작은 동네 서점들이 모여 있는 형태로 공간을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책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서가다. 서가 간격을 조절하고 책 표지가 많이 보일 수 있게 하거나 서가에 리듬감을 주기도 했다.
'북 큐레이션'에도 신경 썼다. 독자 입장에서 책을 많이 봤던 김 대표는 도서를 분류하는 10진법을 몰랐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 큐레이션을 하다 보니 '기획' '대상' '이슈' '전시' '문맥' '미디어' 등의 분류가 완성됐다. '기획'은 데이터를 끌어모아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명사가 사랑한 책 200선'은 포털과 신문 등에서 데이터를 모아 선정하고, 책마다 책갈피를 넣어 추천인과 추천사유를 담아 진열한다. '생일책' 코너도 있다. 생일이 같은 작가 책 가운데 선물하기 좋은 책을 포장해 선물하게 좋게 해 놓은 곳이다. '재미있는 소설' 코너는 공장지대가 많은 구미에서 남자고객들이 책을 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는 코너를 만들어 쉽게 책을 고를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역 문화사랑방' 역할도 하는 삼일문고는 작가와의 만남, 영화감상, 인문학 프로그램, 시리즈 구미 사람을 만나다 등의 문화행사를 연다.
삼일문고만의 서비스는 '유료 멤버십'을 통한 할인과 적립이다. 또 '중고서점 buyback서비스'가 있다. 삼일문고에서 판매한 도서를 1년 내 가져오면 25% 마일리지 적립으로 중고매입을 하는 것이다. '그림책도서관'과 '만화도서관'도 서점을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어 줬다.
김 대표는 삼일문고 덕분에 주변에서 도시재생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이 들어갈 자리는 아니지만 그 자리에 하게 됐는데, 방치된 곳들이 농사를 시작하고 큰 병원 생겼다"며 "(서점이)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어 도시 변화의 시작이 궁금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독자들이 서점이 없던 곳에 서점이 생겨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한다"며 "아이들이 서점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문화행사 열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 등이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고 덧붙였다.
지역 문화 전초기지로서의 동네서점
마지막으로 정성훈 북션서점 대표가 '변화하는 서점의 형태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션서점은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 있는 서점으로 2013년 문을 열었다.
북션서점은 원래 광장서점이었다. 광장서점은 관악구 외 다른 지역에도 있었던 꽤 크고 영향력 있는 서점이었다. 그러한 서점이 2012년 문을 닫았다. 정 대표는 "관악구 고시촌에 서울대 앞에 제대로 된 서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준비 없이 서점을 해보고 싶은 생각을 했다"며 "8개월 정도 준비했는데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션서점이 '지역 문화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처음 운영 목표는 지역과 함께 하는 서점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며 "기능적으로 책을 많이 팔면 좋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강하게 형성되는 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북션서점에서는 '고시촌 영화제'가 열린다.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출품받아 상영하는 영화제다. 북션서점이 영화제 공간을 제공한다.
북션서점은 '마을관광사업'도 한다. 고시촌은 1987년 6월 항쟁의 시발점 역할을 한 박종철 열사의 흔적이 있는 공간이다. '박종철 기념관' '박종철 거리' 조성 추진과 함께 북션서점은 서점 내 민주주의 관련 도서를 비치해 '민주주의 체험 운영 공간 1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고객지향주의 서점과 공간에 대한 투자도 강조했다. 그는 "공간은 대형서점들이 잘 돼 있고 트렌드를 잘 반영한다"며 "이 시대 사람들 욕구를 반영해서 아름답게 꾸며 지역서점이 서비스에 관해서는 탁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디테일하게 반영했다"고 했다. 정 대표는 "고시촌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까다롭고 요구사항도 디테일하다"며 "그걸 뛰어넘자는 취지로 공간에 대한 투자와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북션서점은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정 대표는 "책만 판매하는 공간이어야 하는가 고민했다"며 "지역 특성을 감안해 전국 고시생들 대상 온라인 서점을 운영해봐야겠다 해서 거기에 대한 투자를 했다"고 했다. 현재 전체 매출의 38%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이와 더불어 서점의 여유 있는 공간을 활용해 사무실, 강의실, 회의실 등을 만들었다. 지역주민들이 와서 회의를 하거나 학생들이 스터디를 할 수 있는 공간 등으로 개방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정 대표는 공부법 전문 서점 콘셉트로 가기 위해 공부법 관련 책들을 모으고 있다. 그는 "서점은 책을 공급하는 기능이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대신 어떻게 공급하느냐 하는 부분은 저희한테 가능성이 열려 있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찾아오고 싶은 서점이 되기 위한 노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내 손안에 서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