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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들어 부쩍 학교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선생님을 진심으로 따르고 꿈을 키워나가는 제자들이 만들어 가는 교실 속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과 교직 생활 동안 경험한 교실 속 작은 희망의 이야기들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기자말

오랜만에 제자에게 안부 문자가 한 통 왔다. 초임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인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단다. 이제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그 착하고 애교 많았던 제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참 궁금했다.

"OO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중에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선생님이랑 꼭 한 번 만나자!"
"선생님! 저도 선생님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아직 조금 부족해요. 꼭 1등한 다음에 선생님 찾아갈게요!"

제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몇 년 전 우리반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기놀이를 하고 피구를 하며 밝게 웃던 제자가 1등 하면 나를 만나러 오겠다니... 씁쓸했다.

아마 중간고사 기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과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주는 압박감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물론, 1등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꼭 1등이어야만 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슬픈 현실로 내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무엇이든 조금씩 부족했던 나의 과거
 
나의 그 미숙하기만 했던 일상생활에 희망을 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나의 그 미숙하기만 했던 일상생활에 희망을 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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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나도 학창시절에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1등은커녕 무엇이든 조금씩 다 부족하기만 했다. 글씨는 워낙 악필이라 알림장을 써가도 부모님이 읽기가 힘들 수준이었고, 어찌나 책을 잘 잃어버리는지 학기말이 되면 교과서 중 절반이 없었다. 열심히 다른 반에 가서 교과서를 빌려다 공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쇼핑몰 내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내 미숙함은 정말 아직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다. 

당시 그 음식점의 대표메뉴인 순대볶음은 둥글고 큰 접시에 담겨 있어서 배달용 철가방에 쏙 들어가지가 않았다. 절반 정도만 들어가 있는 순대볶음을 들고다니다가 얼마나 그릇을 많이 떨어뜨렸는지 음식만 다시 배달한 게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또, 겨울철에는 시장의 가게에 등유를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힘도 부족하고, 사회생활에도 미숙한 나는 일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너무 나가기 싫어서 일방적으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해 사장님에게 크게 혼이 난 기억도 있다.

다 잘 할 필요는 없어, 원하는 것을 하면 되

하지만, 나의 그 미숙하기만 했던 일상생활에 희망을 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아마 내가 지금 부족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때의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식당 사장님이 식당을 접고, 내가 살던 동네 주변에 라이브 카페를 열었다. 고로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실직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미숙하긴 하지만 성실했던 나를 잘 봐주셨던 사장님은 라이브 카페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홀 서빙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사장님이 갑자기 분주해지셨다.

"현진아, 오늘 노래부르러 오기로 한 가수가 갑자기 못 온단다. 큰일이다 야."

그때, 나는 갑자기 어디선가 자신감이 솟구쳤다. 지금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사장님, 무슨 노래 불러야 되요? 저 옛날 노래 많이 알아요. 제가 불러 볼게요."

그렇게 나는 용기를 냈고, 사장님도 내가 노래를 부른다 하니 신기했는지 한 번 불러보라고 힘을 실어주셨다. 당연히,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가수처럼 잘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를 계속 일하게 해 주신 사장님에 대한 보답이랄까?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10명 남짓의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과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이 노래는 지금도 나의 소중한 노래들 중 하나이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후 나는 노래 부른 장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 부끄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감쌌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노래를 다 듣고, 테이블 앞에 있던 아저씨 한 명은 나에게 와 말을 건넸다.

"우와! 젊은 학생 같은데, 이런 노래도 부를 줄 아네. 듣기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못 불렀죠? 다음엔 훨씬 더 잘 부를게요."
"아니에요. 지금보다 더 잘 부를 필요는 없어요. 듣기 좋으면 된 거죠. 다음에 또 불러줘요."


나는 나도 모르게 다음에 더 잘하겠다고 의지를 다졌지만, 노래를 들은 아저씨는 자기가 듣기 좋으면 됐다며 나를 격려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아저씨의 따뜻한 말은 미숙한 나를 부끄러워 했던 것, 잘하는 것이 아니면 시도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 이런 마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줬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꼭 1등이 될 필요는 없단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공부도 크게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꼭 1등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골고루 열심히 해서 초등학교 교사 양성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고, 많이 부족하지만 재미있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도 쓰고, 교육 관련 글도 꾸준하게 쓰고 있다. 나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바둑을 두는 것인데 바둑 역시 그렇게 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바둑 책을 들여다보며 누구보다 열심히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나를 일깨워 준 노래는? 그 이후 노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주춧돌이 되었다. 노래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열심히 부른다고 강조해서 축가도 여러 번 불러주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집안 일 때문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지역 축제 노래 대회가 있어서 '벚꽃 엔딩'으로 접수까지 했을 정도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 온 사랑스러운 제자와 지금도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담금질을 하고 있을 청소년들을 위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힘든 현실에서 위로 받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1등을 할 수는 없단다. 한국 사회가 너희들을 무한 경쟁 사회로 내몰고 있지만, 반드시 잘해야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그래도 익숙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혀 보기 바란다. 어른들은 언제나 너희들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태그:#교실 속 희망 이야기, #사랑이 지나가면, #스승과 제자, #1등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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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이 가득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교육이야기를 전하고자합니다. 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빠로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바둑과 야구팀 NC다이노스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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