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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이 지났다. 2017년 8월 10일, 실험을 마친 래트(Rat, 실험용 쥐) 20마리를 무모하게 구조했던 때가. 돌아보니 도움 준 분들이 많았는데 입을 싹 씻고 있었다. 행복하게 아이들을 추억하며 그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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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내가 동물실험윤리위원으로 있는 곳에서 약물 실험을 마친 래트 20마리를 안락사한다고 했다. 신체 일부를 추출하는 실험도 아니고 혈액 검사를 마친 래트를 안락사한다고 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승인 서류를 반려했다. 그랬더니 다른 방법이 뭐가 있냐며 반문했다.

'그간 한 번도 안락사 말고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입양 보내는 방법도 있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놀라 되물었다.

"래트를 입양해요?"

실험용 쥐 입양,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실험실에서 나와 임보 장소에서 편안히 잠든 래트.
 실험실에서 나와 임보 장소에서 편안히 잠든 래트.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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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찌해야 하나 백만 번을 고민했다. 데리고 나온 후에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일단 내가 데리고 나오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며 곤란해 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었다가는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입양처도 정하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데리고 나왔다. 아마 고민하면서 더 시간을 끌었다면 데리고 나오는 길은 막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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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데리고 나온 실험용 쥐들이 지금 행복하게 지낸다는 소식이 요즘도 종종 들려온다. 너희들이 행복해서 나도, 우리도 행복하다.

개, 고양이는 구조해서 입양을 보내 보내봤지만 래트는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래트를 키우는 사람이 실제로 있는 지도 몰랐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실험실에서 구조한 래트 20마리를 입양할 분을 찾는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부담감에 밤새워 뒤척이다가 아침 일찍 컴퓨터를 켰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래트 20마리의 입양처가 모두 나타난 것이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한 생명이라도 살려보자고 각종 동물 커뮤니티에 글을 나르고 가슴 졸였을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서 먹먹했다. 기적이 일어난 건 모두 평범하고 선한 그분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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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래트를 키우는 분들이 조금 있고 가끔 외국에서 실험을 한 래트를 구조해 입양하기도 해요."

기자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 <햄스터>의 저자 김정희 수의사가 용기를 줬다. 그 말에 덜컥 일을 저질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한 일이다. 그때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면 이 많은 생명이 지금은 없었을 테니까. 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막말에, 비아냥에... 욱했지만 참았다

구조한 래트를 옮기고 있다
 구조한 래트를 옮기고 있다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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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나는 래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햄스터> 책을 만들며 용품 이미지 도움을 받았던 '도리순이'로 달려갔다. 도리순이는 소동물용 용품을 파는 곳이다.

20마리나 되는 아이들이 들어가야 하니 케이지도 커야 하고 무엇보다 케이지를 아이들에 맞춰 개조해야 했다. 도리순이 대표님은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케이지를 순식간에 개조해 주시고 아이들의 먹을거리며 필수용품들을 다 챙겨주시고 돌보는 법도 속성으로 알려주셨다. 용품도 왕창 싸게 주셨다. 대표님도 유기된 래트며 햄스터며 소동물을 구조해서 입양해 주시곤 한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 도처에 동물 옹호자들이 있다.

래트 용품을 잔뜩 싣고 래트를 건네 받기 위해서 연구실로 달렸다. 어딘지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동물실험이 많은 곳 중의 하나. 실험동물인 래트를 살리겠다며 구조해 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지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했다. 물론 동물을 구하는 일을 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비아냥거리며 막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 일이 틀어져서 아이들을 못 데리고 나오게 될까 봐 성질 죽이고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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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가 일을 저지르면 도와주는 언니와 조카가 출동했지만 승용차 한 대로는 부족해서 장병권 대표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BK 인터내셔널은 국내외로 동물을 이동하는 일을 돕는 곳인데 대표님도 쥐를 운반하는 일은 처음이라며 신기해 하셨다. 그 덕분에 아이들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침내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평화로운 곳에 도착했다. 우리 출판사 디자이너의 작업실. 입양을 갈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장소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에서 임시보호를 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쥐를 보고 놀라 한동안 작업실에 나오지 않겠다는 작가도 있었고 이런저런 갈등도 있었다. 그럼에도 고민도 하지 않고 데리고 오라고 말해준 김희진 디자이너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도움주겠다'는 말만으로도 든든했어요

작가가 그린 래트
 작가가 그린 래트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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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물이든 구조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구조한 아이를 입양갈 때까지 둘 곳이 없으면 구조는 어려워진다. 디자이너 작업실로 아이들의 임시보호처가 정해진 후 비글구조네트워크(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견종인 비글을 구조하는 단체)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공간이 필요하면 비글구조네트워크에서 제공하겠다고. 실험동물을 구조하고 실험동물 문제를 알리는 단체이니 도움을 주겠다고. 입양자들이 금방 나타나서 바로 입양을 간 덕분에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도움을 주겠다는 말만으로도 든든했다.

평화로운 공간에 안착한 아이들은 몸을 돌돌 말고 새로운 장소를 탐색했다. 그리고 작업실에 잘 적응했다.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온 날 가족을 찾아간 아이들도 있었고, 최장 기간 있었던 녀석은 10일을 이곳에서 작업실 사람들과 동고동락했다. 이 기간에 작가들은 그저 실험동물이라고 알고 있는 또는 아예 몰랐던 래트라는 생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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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성화수술. 번식력이 좋은 설치류의 특성상 중성화 수술이 필요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기존에 래트를 키우는 분들에게만 보냈지만 종종 파충류에게 산 채로 먹이려고 설치류를 입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동물 수술을 잘 하신다는 원장님을 소개받았다. 일산 킨텍스 쿨펫동물병원의 노현진 원장님. 여러 아이들을 한꺼번에 수술을 해야 해서 걱정도 많았는데 모두 안전하게 수술해 주셨고, 수술비도 많이 깎아주셔서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수술을 마친 아이들은 작업실에서 여러 작가의 사랑을 엄청 받으면서 새로운 가족을 기다렸다. 케이지에서 나오겠다고 껑충껑충 뛰는 녀석, 물을 새로주려고 급수기를 뺐더니 물을 내놓으라고 주둥이를 내밀고 항의를 하는 녀석, 작가들이 임시변통으로 만들어준 종이 해먹을 탈출용으로 활용하는 똑똑한 녀석까지.

'무모한 입양작전'은 해피엔딩이지만...

래트 종이 해먹
 래트 종이 해먹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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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모하게 시작된 실험쥐 래트 입양 작전은 행복하고 유쾌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후 1년. 실험동물로 번식된 래트라서 사회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는데 다행히 입양자들이 보내준 사진이나 영상 속 아이들은 별 무리 없이 기존에 있던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래트 20마리를 실험실에서 모두 구조했던 무모했던 시도. 래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아이들의 입양처를 찾는 내 글은 그날 밤 수없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됐고, 20마리 아이의 입양처가 모두 구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날 밤 크지 않은 래트 커뮤니티에서는 이 소식을 전달하느라 분주했던 모양이었다. 한 아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탄탄해진 개인 활동가 중심의 구조 네트워크와 종별 커뮤니티가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무엇보다 남들은 징그럽다고 하는 꼬리가 길고 눈이 빨간, 영락없는 실험쥐를 소중히 안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아이들을 입양해 가는 분들에게 제일 고마웠다. 동물권 옹호 운동은 이런 많은, 평범한 반려인들에게 기대고 있다.

반면 실험동물의 입양 문제 등 개정될 게 많은 실험동물 ​관련 법안은 진척이 없다. 발의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래트처럼 작은 동물도 해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300만 마리가 넘는 실험동물이 한국에서 사용 후 안락사당했다. 그중 92%가 내가 구조한 래트와 같은 설치류이다.

실험기관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 3R 원칙(Reduction 감소, Refinement 개선, Replacement 대체)에 맞춰 동물실험을 줄이고, 실험동물에 대한 동물복지를 향상하도록 하고 있다지만 2016년(약 288만 건)에 비해 오히려 동물실험은 늘었다. 그 내용도 마취제 없이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동물실험이 전체 3분의 2나 됐다. 한국의 실험동물이 생명으로 인정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래트처럼 작은 동물은 더욱 더!

한 해에 300만 마리가 넘는 실험동물이 죽어 나가는 동물실험의 천국, 한국. 수많은 선한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안락사를 피해 지금은 누군가의 가족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20마리의 래트가 보란 듯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운영하는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블로그와 페북, SNS에 게재했다.



태그:#래트, #실험쥐, #실험동물, #동물실험, #래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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