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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과 수현, 그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앞집에 살면서 10년 가까이 친한 이웃으로 지내던 부부였다. 그들이 이제 그만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결정을 지인들에게 알렸다. 성실하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어디에서 살아야할지 살펴보러 간다며 며칠씩 훌쩍 떠나 우리나라 곳곳을 무진장 쏘다니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연고가 있는 곳도 없고, 먼저 내려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귀촌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많아서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더듬거리며 자신들이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귀촌이었다. 그럼에도 그이들은 평온했고 의지는 결연했다.

어디론가 떠났다 돌아오면 한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이들을 만났다. 혹여나 내려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귀촌을 접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심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옆에서 이웃으로 더 있어주길 바라는 속좁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허허, 그러나 그이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이번에 다녀온 곳에서 본 산과 들, 계곡,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마음에 들어찼는지 이야기하기 바빴다. 지금에야 고백하자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귀기울였지만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 주저앉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간신히 억누르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이들은 내가 도시에서 사귄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삭막하다고 도리질을 하는 도시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적당한 단절이 평화로운 해방감 같은 것을 전해 줬다.

나는 산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집요하리만치 꼬치꼬치 간섭하는 초밀착형 인간 관계에 넌더리가 난 터였다. 도시에 살면서는 이웃끼리 지킬 것은 지키고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두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던 차에 맺게 된 이웃지기니 더 각별했다.

서울에 살 때 혜원이는 일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월간지 만드는 일을 하는 출판 노동자였고, 다달이 돌아오는 마감이면 며칠 동안 야근을 했고,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런데 집에서 밥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이들이 사는 빌라에서 만날 때는 대부분 맥주와 안주, 주전부리가 상 위에 올라왔었다. 오히려 주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건 혜원의 옆지기였다.

그랬다. 혜원이 성정은 털털하고 작은 일에도 마음을 잘 내어주고 사람 좋아하는 기질이 다분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구조적으로 '먹고사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돈 버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짜여져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끼니를 대충 해결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농사일을 해본 적도 없다. 동네에서 지인들과 꾸리던 텃밭에서조차 그녀는 좀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귀촌을 하다니! 그러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은 전북 장수군 천천면이었다. 어떻게 이런 곳과 연이 닿았나 싶을 정도로 동네에서 한참 벗어난 외딴 집이었다.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 산지니

집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고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둘레가 온통 자연이다. 이러니 자연과 친해질 수밖에 없지. '천천이'라는 강아지 한 마리가 가족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꾸려갔다. 손전화와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산골짜기였다. 지금은 번암면으로 삶터를 옮겼다. 열 가구 남짓 되는 마을로 드디어! 입성한 것이다. 

이 책에는 성공적인 귀촌을 위한 안내나 근사한 자연 요리법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뀌는 계절에 따라 자급자족하는 삶에 대한 충실한 일상이 담겨 있다. 도시쟁이였던 그녀가 봄내음을 맡으며 냉이, 취, 잔대, 머위니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뜯고, 숲에서 자라는 버섯을 따고, 뽕나무 잎이나 찔레꽃을 덖어 차를 만들고(나는 덖는다는 말이 참 예쁘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슬근슬근 톱질을 해서 박을 가르고, 벌레가 야무지게 뜯어먹어 구멍 숭숭 뚫린 망사 배추를 만나고, 고라니한테 당근을 반강제로 내어주고, 메주를 띄우고,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하는 김장을 하고, 도끼질을 하게 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나물을 비롯해서 대봉감, 무우, 호박, 박이며 가지가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말라간다. 겨우내 식량이 될 귀한 녀석들이다.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이토록 알콩달콩하게 펼쳐지다니.

 책에는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책에는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조혜원

오히려 시골살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경험이 없어 순수한 호기심과 자유로움이 깃든 모양새다. 그게 참 좋다. 텃밭 농사를 하고 들과 산으로 다니면서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는 모습이 신통방통하고 재미나다.

읽다보면 정말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다람쥐처럼 부지런하게 오가면서 씨 뿌리고 김매고 보살피고 거두고 보관하고 말리고... 끝없이 이루어지는 노동! 그래서 마련한 밥상은 따뜻하고 정겹다. 가끔은 서툰 농사꾼, 살림꾼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실패담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세월 동안 웃음만 있었겠는가. 멀리서 보기에는 시골살이가 단순한 것 같아도 하루도 쉴 날 없이 이어지는 육체 노동에 이웃끼리 벌어지는 감정 노동과 부대낌에 마음 고생도 제법 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는 마을 터줏대감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젊은 일꾼으로 생각하기 쉬웠을 거다. 그래도, 웃으며 묵묵히 살아간다.

뿐인가. 삶의 터전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찾아드는 건 변함이 없다. 서울 살던 빌라에서는 술상이 차려졌지만, 장수에서는 자신들이 가꾸고 채취한 재료들로 만든 자연 밥상이 차려진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장수로 간다. 아무일이 없어도 가고, 휴가라서 가고, 심심해서 가고, 큰일을 앞두고 가고, 큰일을 치르고 가고. 우리들의 쉼터가 되었다. 나도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옆지기와 장수에 갔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지방선거를 앞둔 후보에게 더덕더덕 표가 붙으라고 직접 담은 더덕주를 안겨주고, 산에 가면서 눈여겨봐 둔 더덕을 직접 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밥상을 차리고, 맞춤한 그림들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웃으며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찔끔 눈물이 난 이야기 하나. 서울 살 때는 시어머니가 보내준 먹을거리를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냉장고에 턱 넣어두고, 먹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생각 없이 하나씩 버리곤 했단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보내주는 택배 상자를 소중하게 받아들고는 꾸러미 보따리들을 열어본다. 그 모습이 울컥한다. 먹는 것을 챙긴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책을 보면서 시골에서 살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지어 먹을거리를 보내주는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혜원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맞장구 칠 일도, 웃을 일도 많다. 그러면서 그리움으로 콕콕 들어와 박혔다. 나이가 들면서 시골살이에서 겪었던 불편한 마음도 잦아들었고 어쩌면 나도 언젠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 것만 같다.


#귀촌#장수군#먹고사는 일#시골살이#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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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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