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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콘크리트 옹벽과 주차 차단기가 A 아파트단지 입구를 막고 있다.
 높다란 콘크리트 옹벽과 주차 차단기가 A 아파트단지 입구를 막고 있다.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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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외부와 아파트단지를 막아서는 건 까마득히 높은 콘크리트 옹벽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 A 아파트는 일반도로와 아파트단지를 잇는 입구에 주차 차단기 5개를 설치하고 통행료 2천 원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아파트 입주민과 인근 지역주민이 갈등을 빚었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차단기를 둘러싼 주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A 아파트는 4천여 가구가 사는 거대 단지로 최고 21층 아파트 31개 동이 들어서 있다. 단지에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 교육시설과 쇼핑몰, 스포츠센터 등 편의시설이 있다. 아파트단지 주변에는 초등학교와 여중, 고교 등 교육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 인근에 살며 앞서 언급한 교육시설과 편의시설을 이용하던 지역주민들은 아파트 주차 차단기 설치로 통행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지만 일부 아파트 입주민은 주차 차단기 설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내부자료 제보자와 인터뷰에 응한 취재원들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주민 안전과 재산 보호를 위한 마땅한 권리 행사"

"실제 차단기를 설치하고 나서 출•퇴근 시간 제가 다니는 도로에 차량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차선이 1차선이라 차량이 많으면 지체도 많이 되고 경사도 매우 가팔라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일반도로 교통지체를 피해 단지를 통과해 다니던 차들이 줄어들 필요가 있는데 이를 사유지에 대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파트 입주민 ㄱ씨는 "학교 등하교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단지내 도로를 지름길로 여겨 출입하는 차량으로 정체가 생겨 불편했다"고 토로했다. 주차 차단기 설치는 이 아파트에서 지속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된 안건이다. 과거 두 차례 차단기를 설치해 운영했지만 주먹구구식 운영과 입주민 사이 이견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그러나 다시 차단기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지난해 6월 통행료 2천 원 징수와 함께 차단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A 아파트 입주민이 <단비뉴스>에 제보한 자료로 지난해 6월 개정한 주차규정이다. 외부차량이 차단기를 통과하려면 ‘별표5’에 따라 2천원을 납부해야 한다.
 A 아파트 입주민이 <단비뉴스>에 제보한 자료로 지난해 6월 개정한 주차규정이다. 외부차량이 차단기를 통과하려면 ‘별표5’에 따라 2천원을 납부해야 한다.

입주민 ㄴ씨는 아파트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주차 차단기를 설치하면 좋은 점으로 "장기 불법주차와 외부차량에 의한 주차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부차량 통제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으며 우리 단지가 조용해지고 품위를 갖춰 단지의 금전적 가치도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ㄷ씨는 차단기 설치 연구자료를 직접 자유게시판에 올리며 "단지 내 외부차량 진•출입으로 인한 매연, 소음, 진동 등의 환경저해 및 교통사고 원인을 해소하고 외부차량의 무단주차를 근원적으로 차단하여 주민 삶의 품격을 향상시키는 데 (주차 차단기 설치)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차단기 설치와 통행료 징수는 자기 편의만 생각한 이기주의"
   

"아파트단지가 여기 지어지지 않았다면 지역주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도로였을 텐데,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는 이유로 오늘처럼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렇게 자기 편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서로의 통행을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해요."

A 아파트단지 인근에 사는 ㄹ씨는 "지역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아파트단지 통행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며 "(외부 차량에 의한) 사고 위험성은 단지 내 차량속도 제한이나 다른 안전장치를 강화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 입주민 ㄱ씨는 "차단기를 설치해 외부 차량을 통제하는 것은 좋지만 통행료까지 징수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A 아파트에 거주하다 이사한 ㅁ씨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중에 이사를 하면서 차로 아이들 통학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차단기로 길이 막혀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 아파트는 무려 5천여 세대에 육박하는 거대 아파트로 인접 주민이 교통 접근상 피해가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했으면서도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아파트 단지 내로 마을버스가 다니고 학교시설이 있지만 단지 인근 지역주민이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통행료를 납부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내로 마을버스가 다니고 학교시설이 있지만 단지 인근 지역주민이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통행료를 납부해야 한다.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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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 ㅂ씨는 "차가 많이 다니면 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아파트 주민의) 우려도 이해하고 사유재산 인정도 중요하다"면서도 "이는 운전자 계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 차단기를 설치하는 것은 과도한 조처이며 공익을 위한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파트단지 인근 주민들은 단지 안에 마을버스가 다니고 학교 등 교육시설과 오랜 시간 이용하던 편의시설이 있어 아파트 주민만의 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두 손 놓고 방관하는 법과 행정

이 아파트단지에 지난해 6월 주차 차단기가 설치된 뒤 계속하여 민원이 제기되고 아파트 입주민과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은 깊어지고 있지만 법과 행정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북구청 민원실 담당 공무원은 "사유재산이고 단지 내 도로가 구나 시에서 관리하는 법적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제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청에서 의견을 낼 수 있으나 입주민과 지역주민이 듣지 않아 중재가 불가능해서 주민들에게 우회하라고 말한다"며 "아파트 입주민에게 무조건 길을 개방하라는 건 그들에 대한 횡포"라고 말했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현행법의 허점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보행공간은 단지를 설계할 때 공공보행통로와 같은 도시설계가 있어 외부인 통행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지만 차량도로 같은 경우는 법적 장치가 없어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과 행정이 무능력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지역사회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두 손 놓고 있는 동안 사이 좋던 이웃사촌은 철천지원수로 전락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두 손 놓고 있는 동안 사이 좋던 이웃사촌은 철천지원수로 전락했다.
ⓒ MBC/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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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기성 도시 조직을 가로질러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융합하지 않은 채 성처럼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규모 단지가 입지함에 따라 주민들이나 차량이 단지를 우회해서 지나갈 수밖에 없다면 단지 내에서 도시계획 도로가 가로질러 갈 수 없는 현행 규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또 "외부 차량의 과도한 통행이나 출입으로 입주민 안전에 위험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위한 곡선 주행이나 요철 도로 등의 시공이 필요할 수 있다"며 "입주민들이 새로운 통행으로 위험 가중과 추가 비용 부담으로 반발할 경우 구청 등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민참여 예산 등의 형태로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아파트, #차단기, #서울, #성북구, #돈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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