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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에 서 있던 수십년 생 밤나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은 지난 15일 고민 끝에
 밤나무를 잘랐다.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에 서 있던 수십년 생 밤나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은 지난 15일 고민 끝에 밤나무를 잘랐다.
ⓒ 안경호 유해발굴공동조사단 발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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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지 아래에 뿌리를 내린 수십 년 생 밤나무가 끝내 잘렸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아산 배방읍 중리마을 뒷산 폐금광에 암매장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에 서 있던 수십 년 생 밤나무를 고민 끝에 제거했다.

1951년 1월께, 이곳에서는 인민군 점령 시기에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경찰과 치안대 등이 민간인 수백 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애초 공동조사단과 유가족들은 암매장지 인근에 서 있는 밤나무를 보존하기로 했다. 희생자의 시신을 양분 삼아 자란 것으로 보여 희생자의 넋이 담겨 있는 상징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2일부터 발굴을 시작하자마자 일부 희생자 유해가 밤나무 뿌리에 엉겨 붙여 있음이 확인됐다. 두 줄기로 자란 밤나무는 전체 뿌리의 30%가량이 희생자 암매장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공동조사단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유해를 감고 있는 뿌리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발굴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땅속 상은 처음 예측과는 달랐다.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자 그 아래 또 다른 유해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바닥 층까지 약 2미터 가까이까지 유해가 묻혀 있었고 나무 뿌리도 깊게 뻗어 있었다. 뿌리가 드러날수록 나무가 뽑혀 넘어질 위험도 제기됐다.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에 서 있던 수십년 생 밤나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은 지난 15일 고민 끝에
 밤나무를 잘랐다.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묻혀 있는 곳에 서 있던 수십년 생 밤나무.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은 지난 15일 고민 끝에 밤나무를 잘랐다.
ⓒ 안경호 유해발굴공동조사단 발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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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희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아래쪽에서도 유해가 드러났다. 지난 달 22일 부터 발굴을 시작해 18일 현재까지 약 90 여구가 발굴됐다.
 18일, 희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아래쪽에서도 유해가 드러났다. 지난 달 22일 부터 발굴을 시작해 18일 현재까지 약 90 여구가 발굴됐다.
ⓒ 안경호 유해발굴공동조사단 발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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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은 고심 끝에 원활한 유해수습을 위해 지난 15일 밤나무를 밑동을 자른 뒤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18일 현재까지 90여 구가 발굴됐는데 밤나무 뿌리 아래에서만 30여 구가 나왔다.
박선주 단장은 "밤나무 뿌리 쪽에서 발굴된 30여 구 대부분이 두 살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와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급적 밤나무를 살리려 했는데 부득이하게 자르게 돼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이곳 아산시 배방읍 중리마을 뒷산 폐금광에는 200~300명의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동조사단은 발굴 범위를 희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아래쪽까지 넓혔다. 조사단은 이달 말까지 발굴을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 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아산 부역 혐의 희생 사건'과 관련 "단지 부역했다는 이유로,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반인권적·반인륜적 국가범죄에 해당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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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산, #폐금광, #공동조시단, #밤나무, #국가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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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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