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퍼디, 드디어 은메달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경기에서 미국 에이미 퍼디가 은메달을 차지하고 환호하고 있다.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에이미 퍼디는 지난 2016년 리우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춤을 함께 추면서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2018.3.12

▲ 에이미 퍼디, 드디어 은메달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경기에서 미국 에이미 퍼디가 은메달을 차지하고 환호하고 있다.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에이미 퍼디는 지난 2016년 리우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춤을 함께 추면서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2018.3.12 ⓒ 연합뉴스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 참가한 미국의 장애인 여성 스노보더 에이미 퍼디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19세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희귀병으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가 괴사하는 바람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맞이하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퍼디 역시 한동안 깊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퍼디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이었다. 퍼디의 어머니는 딸에게 "사람들은 너를 장애인이라고 부르겠지만, 여전히 난 네가 꿈꾸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격려했다. 아버지는 다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딸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줬고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재활을 묵묵히 함께하며 응원했다. 퍼디는 자서전 <스노보드위의 댄스>에서 "최대한 충만하게, 용기 있게,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이었다"라고 썼다. 퍼디가 걸어온 인생 여정과 가치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후 퍼디의 삶은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특별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의족을 달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스노보드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비영리 스포츠 단체인 어댑티브 액션 스포츠(Adaptive Action Sports, AAS)를 만들었고 직접 스노보드 대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서 2012년 5월 장애인 스노보드를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승인한 데 가장 앞장선 인물도 바로 퍼디였다.

장애 이겨낸 불굴의 의지, 다른 이들에게 울림을

에이미 퍼디, 하늘 높이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예선경기에서 에이미 퍼디가 질주하고 있다.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에이미 퍼디는 지난 2016년 리우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춤을 함께 추면서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2018.3.12

▲ 에이미 퍼디, 하늘 높이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예선경기에서 에이미 퍼디가 질주하고 있다.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에이미 퍼디는 지난 2016년 리우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춤을 함께 추면서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2018.3.12 ⓒ 연합뉴스


퍼디는 소치 패럴림픽에 스노보드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스노보드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6 리우 하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는 로봇과 함께 삼바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국 ABC 방송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18에 출연하여 의족을 차고도 놀라운 댄스실력을 과시하는가 하면, 영화 출연과 자기계발 강연 등을 통해 전 세계를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도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한 퍼디는 지난 12일 오후 강원도 정선 알파인스키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여자 크로스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2개 대회 연속 메달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두 다리는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어린 시절에 꿈꾸던 삶을 스스로 일궈낸 그녀의 인생 역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사실 평창 패럴림픽 무대에는 퍼디와 같은 스토리를 지닌 이들이 차고 넘쳐난다. 어쩌면 패럴림픽 무대에 참여한 전 세계의 선수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인간 승리'를 일궈낸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 노르딕스키 신의현 선수가 11일 오전 강원도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크로스컨트리 남자 15㎞ 좌식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장애인 노르딕스키 신의현 선수가 11일 오전 강원도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크로스컨트리 남자 15㎞ 좌식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평창에서 한국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된 신의현(노르딕스키)는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 슬픔을 겪으며 한때 세상을 등지고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재기에 성공했다.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에서는 한국 선수단 기수로 입장하기도 했다.

썰매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주장인 한민수는 어린 시절부터 관절염을 앓았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기로 유명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골수암이 전이 돼 왼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휠체어 농구 등 다양한 장애인 스포츠에 도전을 이어왔고 끝내 국가대표까지 됐다. 숱한 시련과 고비를 넘어 자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들은 자신과의,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인생의 승리자들이다.

어쩌면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매력은 그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이다. 우승이나 메달같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 안에 담긴 사연과 과정이 어떤 감동을 주느냐에 따라 스포츠의 존재 가치가 달려있다. 에이미 퍼디를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어준 것도 그녀의 국제대회 수상실적이나 메달 색깔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 역정이 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한국에도 퍼디 같은 같은 사연의 주인공들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퍼디만큼 주목받을 만한 기회가 없을 뿐이다. 심지어 자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 대회인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해외보다 국내 방송사에서 중계 편성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중계를 호소하는가 하면, 정작 대회를 보고싶은 국내 팬들이 '유튜브'에서 해외 중계를 찾아 경기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웃지 못할 장면도 벌어진다. 우리 선수들은 물론이고 지난 4년간 패럴림픽을 바라보며 땀과 눈물을 흘려온 전 세계 선수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감동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퍼디'들이 있을 텐데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차재관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차재관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 소중한


아직도 우리 사회는 스포츠의 가치를 '성과지상주의'의 편협한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금메달 몇 개이상'이라는 수치화된 목표에 집착한다거나, 메달 획득이 유력한 인기 종목-스타플레이어에만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비인기 종목이나 패럴림픽처럼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떨어지는 분야들은 소외당하는 풍토가 대표적이다. 이는 방송사의 '시청률 우선주의'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동계올림픽과 달리 패럴림픽이 방송사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도 인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아무래도 패럴림픽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만큼의 인기를 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패럴림픽은 소위 '프로급 전문 선수'들이 경쟁하는 인기 스포츠 이벤트와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장애인들이 한계에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강한 '아마추어리즘'이야말로 패럴림픽의 진정한 존재가치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국내의 미디어와 스포츠계가 패럴림픽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성과주의만을 추구하는 기존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동일선상에서 안이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더 이상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성적을 놓고 '국위선양'이라는 국가주의적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메달 획득 여부만을 두고 성공이나 실패냐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도 촌스러운 발상이다. 이는 올림픽이나 패럴림픽 같은 대회가 시작된 근본적인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패럴림픽에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이 평등하게 도전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서만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장애인아이스하키 한민수가 성화를 매고 점화대로 오르고 있다.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장애인아이스하키 한민수가 성화를 매고 점화대로 오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퍼디는 한 강연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대신 풍부한 상상력을 얻었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상상이란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패럴림픽의 주인공들은 신체적인 한계와 세간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해 왔다. 반면 이들의 다양한 창의성과 캐릭터를 담아낼 만한 우리 사회와 미디어의 상상력 부족은 대조를 이룬다.

'단지 한국에서 개최하는 대회니까', '우리 선수가 메달을 따야 하니까' 정도 외에는 패럴림픽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어쩌면 이것은 장애인의 권리와 처우 개선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단지 인기가 없어서 자국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 대회라면 과연 큰 비용을 치러야만 하는 패럴림픽은 왜 개최하고 참가해야 하는 것일까? 패럴림픽을 바라보고 달려온 수많은 선수들의 존재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패럴림픽의 진정한 목적과 스포츠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한 번쯤은 다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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