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13일 앞둔 27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대에서 바라본 올림픽파크 뒤로 해가 지고 있다.

▲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13일 앞둔 27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대에서 바라본 올림픽파크 뒤로 해가 지고 있다. ⓒ 연합뉴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직접 경기에 나서는 선수나 그 가족이 아니라도, 1988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15년 만에 한국에서 치러지는 글로벌 이벤트에 설렘과 기대를 안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열기를 마냥 신나게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지상파 교양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는 A씨. A씨가 일하는 방송은 올림픽으로 30분 축소 편성됐다. 1시간짜리 방송이 반토막 나자, 제작비도 70%로 줄었다. 이렇게 되면 작가 중 최소 두 명이 쉬어야 한다. 쉬게 되는 작가들은 사실상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받게 되는 상황이다. 서로 빤한 처지에 한두 사람에게 책임을 모두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 작가들은 '모두 출근하고 다 같이 원고료의 70%만 받자'고 합의했다. 이후 A씨는 CP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작가 두 명 쉬면 되지"라고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올림픽으로 일반 방송 축소·결방 ... 작가들은 '보릿고개'

지난 2017년 9월,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숲'은 방송제작스태프 2007명을 대상으로 '방송제작스태프 계약실태 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8.4%(971명)가 프로그램 회당 임금을 지급 받는다고 답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A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 내가 일하는 방송이 축소 편성되면 어쩌나, 결방되면 어쩌나, 당장 그 달의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때문에 방송계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상담 받는 '방송계 갑질 119' 카톡창에는 최근 '평창 보릿고개'를 걱정하는 고민들이 오가고 있다.

"평창 때문에 걱정입니다. 강제로 쉴 수밖에 없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네요." 
"안 그래도 2월은 짧은데, 2주 결방 되면 진짜 최악입니다." 
"세계인의 축제라는데 저희는 보릿고개네요." 

시차가 큰 나라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이라면 새벽 중계가 많아 결방이라도 적을 텐데, 국내 경기라 낮 시간대 대거 결방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 대부분 회당 페이를 받는 처지라 위클리 방송이 1회만 결방돼도 수익의 1/4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MBC 프로그램 스태프들은 지난해 72일 파업으로 두 달 가량 페이를 받지 못했다. 올 겨울 보릿고개가 유난히 힘든 이유다.

방송이 결방되는 2주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수 있는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 방송이 결방돼 돈을 받을 수 없는 데도 일은 그대로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올림픽 직후 방송될 아이템 취재 등을 완전히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작가 B씨는 이를 "방송사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별도 '인건비'로 책정하지 않고, 제작비 안에서 지급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신규 런칭되는 프로그램이나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편성이 되지 않으면 약속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이때 등장하는 게 최근 문제가 된 '상품권 페이'다.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 약속한 페이를 제대로 주지 못하게 될 때, 알음알음 구해온 '상품권'이 현금을 대신해 지급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사비로 지출한 경비가 상품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B씨는 "그래서 어떤 PD들은 상품권으로라도 페이를 주는 것을 나름의 선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 줄 수도 있다거나 안 줘도 되지만, PD로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방으로 인한 올림픽 보릿고개도, 상품권 페이도, 노동자의 노동을 제작비로 충당하는 관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을 악습이다.

올릭픽 방송으로 밤샘해도 방송 작가들은 야근·연장수당 없어

 방송작가가 참여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 현장 ⓒ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작가가 참여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 현장 (*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이 쉬지 않는 한 휴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때나 여행을 갈 수 있어 괜찮다거나, 적어도 2주 동안은 잠이라도 푹 잘 수 있겠다는 웃지 못할 반응도 나온다. 그나마 결방으로 인한 생계 곤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소수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는 C씨는 2월 14일로 예정된 올림픽 기간 북한 응원단의 공연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설 연휴 내내 일을 해야 한다. 예년이라면 명절 중 하루 이틀 정도는 집에 갈 수 있었지만, 14일 공연을 제때 방송에 내보내려면 이번 명절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올림픽과 북한 응원단 공연이라는 아이템 특성상 미리 찍어둘 수도, 방송을 미룰 수도 없다. 설 연휴 내내 밤샘 근무가 예정됐지만, 주말 수당, 야근 수당을 기대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번도 지급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방송제작 스태프 계약실태 조사'에 응답한 2007명 중 오직 19.5%만이 계약서에 휴일 및 휴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일하고 있는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많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방송 스태프 중 절대 다수가 휴일, 휴가 등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마이뉴스>에 제보한 한 스태프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를 쓰는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늘 제작비 부족을 이유로 대지만, 진행 비용이나 대관료, 출연료 등으로 나가는 비용을 보면 초과 수당 다 챙겨준다고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현실'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다른 작가는 "이런 시스템이 부당하다, 최소한의 생활비만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팀장이 '지금까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사람 많았다. 하지만 결국 바뀐 건 그 사람뿐이었다'더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오마이뉴스>에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를 덧붙였다.

"6년 동안 작가 일을 하면서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쓰고 나면 한 달에 고작 20만 원 정도가 남는 삶을 삽니다. 20만 원에 건강과 열정을 방송에 가져다 바치고 있습니다. 건강도 정신도 피폐해졌는데, 당장 올림픽이 있는 이번 달 생활비가 걱정돼 잠도 못 잡니다. 

매일 사람들에게 '부당한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라며 제보를 받지만, 제가 받는 부당한 대우를 알릴 곳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제보한 사실이 알려져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슈가 되어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처우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 냈습니다." 

평창올림픽 방송계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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