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검사 여진욱 역할의 배우 윤현민

ⓒ JS픽쳐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배우 윤현민은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이다. 스스로 말하기를 아마추어 야구를 하면서 성과도 좋았고 유망주였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프로를 꿈꾸었다. 노력을 거듭한 끝에 프로로 발돋움한 그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꺾을 수 없는 선배들의 벽이 너무 컸다. 그러다 보니 계속 위축이 되고, 주눅이 들고, 부상도 찾아왔다. 부상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없었고 그래서 그만두었다."

윤현민에게 야구는 인생에서 있었던 가장 큰 실패고 그래서 아픔이라지만 어쩌면 그 실패가 있어서 우리는 오늘날 브라운관에서 연기하는 배우 윤현민을 볼 수 있게 됐다. 그가 야구선수 다음으로 꿈꾼 직업이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OCN <터널>에 이어 KBS 2TV <마녀의 법정> 속에서 여진욱 검사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윤현민은 "배우로서 한 해 한 해 살면서 잘 되는 작품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며 "그런 작품을 올해 두 개나 만났다는 건 실력보다 운이 더 따랐던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한 해 소감을 밝혔다. 지난 5일 서울 강남에서 <마녀의 법정>을 마친 배우 윤현민을 만났다.

"이 작품 거절하는 배우는 바보"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검사 여진욱 역할의 배우 윤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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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아동 범죄를 소재로 한 법정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마녀의 법정>은 분명 시의적절하고 신선한 기획이었으나 남자 배우에게 쉽지 않은 드라마일 수도 있었다. 배우 윤현민은 "대본을 읽었는데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이걸 거절했다가는 바보 같은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마녀의 법정>의 남녀 주인공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전복된 캐릭터들이었다는 점도 그에게는 좋은 요소로 작용했다. 행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정려원(마이듬 역)의 캐릭터에 비해 윤현민이 맡은 여진욱 검사라는 역할은 정려원의 행동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쪽이었다. 드라마는 뜰 수 있어도 자칫 배우 개인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마녀의 법정> 대본을 쓴 정도윤 작가는 그래서 당연히 윤현민이 이 역할을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윤현민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지점은 다른 쪽이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소재였고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소재였고 시청자 분들이 힘들게 퇴근을 해 TV를 켰을 때 편하게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불편해서 뒤로 물러서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나 또한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건들이 많았다. 그런 부분에서 나만이 아니라 제작진 모두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이렇게까지 표현해도 될까? 해봐도 될까? 사회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피해를 입으셨던 분들이 더 다치지 않게 노력을 기울였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같이 공분해줬다는 점에서 마음이 너무 좋더라."

특히 윤현민의 마음을 움직였던 회차는 아동성범죄를 다룬 5부였다. 그 전까지 윤현민은 아동성범죄 기사는 어른으로서 마음이 좋지 않아 기사 제목만 읽고 넘기기도 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5부에서 마주치게 된 소재인 아동성범죄는 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윤현민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고 이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 중에 혹여나 한 번 더 상기시켜 피해를 입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어떡할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감독님께서 '우리 좀 쉬었다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시며 훅 우시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감정이 뭔지 알 것 같아 나 또한 울컥했다. 감독님이 왜 우셨는지 그 이유는 말씀을 안 해주셨는데 내가 느낀 건 연출자로서 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울컥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부는 힘들었지만 드라마의 방향성이 '진정성'이라는 판단을 정확하게 내린 회차이기도 하다. '같이 아파하고 너무나 화가 나는 그 감정을 갖고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검사의 입장으로 연기하면 되겠구나' 그때 감을 잡았다."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검사 여진욱 역할의 배우 윤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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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윤현민은 여진욱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대본에 나온 행동을 수정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드라마를 볼 때 확 벽에 밀쳐서 뽀뽀하는 것과 여성의 팔목을 잡는 것 같은? 그 모습을 박력 있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의 한 명인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 지문을 한 번 바꿔 봤다."

그가 마이듬의 팔목을 잡고 돌려세우는 대신 선택한 다른 행동은 마이듬이 가는 방향 앞쪽으로 팔을 뻗는 것이었다. 윤현민은 그것이 여진욱 검사의 행동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를 찍고 나서 여성·아동 범죄에 대한 관심이 더 늘었다.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왜 형량은 이것 밖에 안 되는지 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간으로서 한 단계 발전시켜주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내 안에서 사회적인 사건들을 대하는 태도가 명확해지는 게 있는 것 같다. 어떤 게 흑이고 어떤 게 백인지 나이가 먹으면서 점차 선명해진다."

"배우가 평생 직장이었으면"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검사 여진욱 역할의 배우 윤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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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민은 <마녀의 법정>으로 첫 미니시리즈 주연을 경험해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집에서 며칠 생각을 해봤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이름 없는 정말 조그만 역할을 맡아 했을 때도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소화하지 못하면 다음 작품은 없다는. '더 큰 역할이기 때문에 잘 해낼 거야'라는 생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마녀의 법정>은 시청자들이 '시즌 2'를 열렬히 원할 정도로 성공한 드라마가 됐다. 윤현민에게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고 철거되는 세트가 아까워 드라마에 사용됐던 소품들을 집으로 따로 챙겨왔다. '검사 여진욱'이라고 새겨진 명패와 사원증과 법복 그리고 여진욱 책상에 놓여있던 몇 가지 소품들을 모두 챙겼다. 그 소품들은 지금 그의 집 냉장고에 보관돼있다.

그는 배우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 직업은 평생직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유명한 연예인을 꿈꾸지 않고 꾸준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털어놓았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건 마흔쯤 됐을 때 이름 석 자 알리면서 일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좀 더 빠르게 가고 있다.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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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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