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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화법에 있어 그들은, 경청보다는 자신의 위대한 업적이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구구절절 풀어서 구술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내 이야기 좀 들어줘' 내지는 '나 대단하지'였다.

대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끝나고 헤어지면 아쉬움 보다는 해방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돌이켜 보면,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그랬다.

"아, 이 사람과 함께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하거나… '한마디'에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배어 있다. 즉 상대를 소중히 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자기중심의 삶의 방식임을 알게 되는 한 마디로 … 발언을 컨트롤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수 있다.…실언을 하지 않도록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실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몸의 무늬다."(396~397쪽)

그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말이다.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말과 생각 그리고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성공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일본 전국에 1400곳이 넘는 츠타야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적 저명인사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한번쯤은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을 둘러보고 싶어 한다.

마스다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마스다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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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Culture Convenience Club, 약어 CCC)를 운영하면서 그 곳 사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비전과 자신의 가치관을 전하고 싶어 작성한 블로그의 내용을 골라 정리한 게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이다. 10여 년을 작성한 글 중에 CCC 사원이 아닌 일반 독자들도 알면 좋은 영업 비밀이란 대관절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맥도날드의 햄버거는 먹어도 맥도날드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타벅스의 커피는 가끔 마셔도 스타벅스와 동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츠타야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츠타야의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어떤 매력이 고객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것은 저자 마스다가 오랫동안 간직한 철학에 있는 것 같았다. 책에 적힌 그의 기획 구상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이 '지금 무엇이 필요하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자문답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르바이트 생도 오고 싶은 직장, 엘리베이터에서 매점 문까지의 거리 계산, 비가 오면? 택시를 타려면? 60대 노인들은 언제 시간이 편할까 등이 그렇다.

이런 구체성을 갖고 고객에게 접근하다보니, 성공은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스다의 삶이 주는 교훈은 성공이 아닌 그보다 더 값진 실패를 반면교사 할 줄 아는 정신에 있었다. 

"성공 체험만 갖게 되어 똑같이만 하면 간단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41쪽)

"경영의 본질은 실패의 허용"(61쪽)

츠타야 매장은 히라카타에 1호점을 만들고, 두 정거장 떨어진 고리엔에 2호점을 열었다. 결과는 대 실패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1호점을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그저 성공 패턴을 하나 더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었고,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그에게 2호점은 아르바이트 한 명이나 한 사람의 고객에 대한 응대를 위한 겸손한 자세가 아니었다. 수익창출을 위한 데이터로서만 사람을 판단했다.   

마스다는 실패를 분석하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것처럼 "사업이 제일 쉬웠어요"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말을 우리가 쉽게 믿지 않는 것처럼 마스다가 본질로서 접근한 이와 같은 자세도 쉽게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마스다가 살아 온 삶이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시사점은 분명히 있다. 그에게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원칙이 있다.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는 낙관을, 사람과의 신용을, 일에 대한 각오 등의 기준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각과 반성이 빨랐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기획으로 이어졌다.

"아웃풋이 있으면 데이터나 다른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는다.… 자신의 데이터나 자신의 프로그램 따윈 특별할 게 없다고 겸손함을 가질 것. 그래서 마스다는 항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써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167쪽)

"지금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편이 기획의 질을 높인다."(197쪽)

그는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표현했다. 그러면 그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자문을 구할 기회를 더 늘렸다는 것이다. 완벽주의로부터의 탈출이었다. 내 생각과 네 생각의 결합이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우리가 '준비'라고 하는 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획은 준비가 길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면서 수정하는 것이었다. 또 기획 후에도 수정은 언제나 가능해야 했다. 그것을 문제 사항을 대하는 '집념'이라고 그는 책에 썼다.

"집념이 없는 사람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집념이 있는 사람은 가능성을 논의한다. 이 말은 거의 같은 의미다.(44쪽)

집념이 있으되,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겸손을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의 사고가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비슷한 업계끼리의 경쟁이 아니었다. 내 안에 가치를 발견하려는 자세였다. 상품 값을 깎는다고 고객은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한번쯤은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고객이 물건을 구입할 것이라는 믿음은 애초부터 버려야 한다.

지역의 상가를 돌아보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등에서 마스다의 생각을 반추했다. 골목 상권이 살아야 된다고 입을 모은 것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역에서 인친척의 관계, 학연의 관계를 이용한 배짱 영업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지역 경제 부흥이라는 거시적 안목이 아니라, 시설 이용자를 위해 매장은 어떤 서비스를 지불했는가는 판단도 들었다. 지역 상가의 주차장은 고객을 배려한 시설이 아니었다. 가게 업주들의 전용 주차장이었다. 오늘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굳이 지역의 매장을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골목상권에서만 보였던 사람 사이의 정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사회가 각박해지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객 입장에서 점점 불편해지고 가기 싫어지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할 듯하다. 

마스다가 책에 밝힌 대로, 사원에게는 일하고 싶은 환경을, 고객에게는 가고 싶은 매장을 이라는 철칙과 그에 따른 시설 정비, 기획도 나름 매력은 있었다. 하지만 더 매력 있는 것은 마스다의 철학에 맞게 책의 제본도 출판사가 신경 썼다는 것이다.

일반 책들은 대개 무선제본을 한다. 책을 펼쳤을 때, 손으로 누르지 않으면 다시 접히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사소한 불편함일수도 있겠지만, 책을 보고 인용문을 적거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책은 흔히, 실제본 또는 누드제본 형식으로 책을 묶었다. 마치 대학 노트를 스프링철 한 것처럼 책이 술술 잘 넘어가고, 책을 펼쳤을 때도 앞장이나 뒷장으로 와락와락 넘겨지지도 않았다. 다른 출판사들도 책을 이런식으로 제본해서 시중에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갑질'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권력의 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부당하게 행하는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는 용어다.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갑질이 싫다고, 무례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서 갑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울트라 갑질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게 되었을까.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문화를 기획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만큼은 절대로 갑에게 자리를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갑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상대를 찍어 누르는 폭력이 있다. 배려라는 말 보다는 허가라는 말로 우리를 위축시킨다.

하지만 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겸손할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 준다. '어떻게 하면 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고리를 잇게 해준다. '그것이 기획이다'고 말하는 마스다는 고객을 향해 을의 자세를 취한다. '고객이 왕이다'식의 식상한 말이 아니다. 경영하는 사람도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가족과의 시간도 보내며 자신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타야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원, 그 지역의 주민의 개별 취향을 존중해 주고 가급적 그것을 영업에도 반영한다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가 아닌 생활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방식이 바로 영업 비밀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은 영업, 혹은 창업을 하기 전에 봐야 할 트레이닝 교본 같았다.

덧붙이는 글 | 마스다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위즈덤하우스/2017) 값, 17,800원.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혁신의 아이콘 마스다 무네아키 34년간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위즈덤하우스(2017)


태그:#마스다무네아키,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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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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