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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법무부와 검찰 스스로 과거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난 1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 출범에 즈음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김갑배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한 말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국가기관의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국가가 해야 할 조치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이며, 검찰의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은 과오를 스스로 시정하는 자정 능력이 있느냐 여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하였다.

검찰청은 스스로 인권침해와 불공정 기소 등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되는 과거사건을 스스로 정리하고자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고안을 수용하여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발족하고 검찰 업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을 발족시켰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년의 활동 기간 동안 ▲ 재심 등 법원 판결로 무죄확정된 사건 중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된 사건 ▲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의혹이 상당한데도 검찰이 수사 및 공소를 거부하거나 현저히 지연시킨 사건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우선 대상 사건을 선정함에 있어 사회적 관심과 파장이 컸다고 판단되는 사건들, 특히 권위주의 정권 시절 시국사건과 함께 2008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 배임 수사와 2009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 <PD수첩> 제작진 수사 등과 같은 사건이 조사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앞서 지난 9월 17일 대검찰청은 태영호 납북사건 등 6개 사건 18명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재심청구 사건 중 하나인 태영호 납북사건 어부에 대해 전주지법 정읍지원(재판장 이민형)은 서해에서 어로 작업 도중 북한에 나포됐다 풀려나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태영호 어부에게 "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 행위가 있었던 만큼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과 진술에 증거 있다고 볼 수 없다"며 4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과거사 반성은 선언적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특히 태영호 납북어부 사건에서 보듯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법원의 판단을 빌어 자신의 과거사를 정리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귀순했던 이수근, 형장의 이슬이 돠다

1967년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씨는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망명했다. 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거액의 정착금을 받았다. 유명세도 치렀다. 이씨는 곧바로 대학교수와 결혼했고, 중앙정보부 직원으로 특채됐다.

하지만 남한의 체제 선전 활동에 이용되는데 점점 지쳐갔다. 1969년 1월, 이씨는 처조카 배경옥씨와 함께 홍콩으로 출국했다가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중앙정보부는 같은 해 2월 이씨를 위장한 이중간첩이라고 발표했고 법원은 이씨와 배씨에게 사형을 선고, 이씨는 그해 7월 2일 사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반공강연하는 이수근
 반공강연하는 이수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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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수근 사건은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이씨의 간첩혐의는 조작된 것이었으며, 억울한 사형을 당했다는 결정을 받았다. 이씨의 공범으로 함께 처벌받아 옥살이를 했던 처조카 배경옥씨는 2008년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죽은 자에게는 재심을 제기할 권리조차 없다"

공범이었던 배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주범이었던 이씨는 불법감금, 고문, 사건 조작 등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상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나 그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형사소송법 제424조 4항).

2016년 8월 광화문에서 1인 시위 중
 2016년 8월 광화문에서 1인 시위 중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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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검찰을 상대로 1인 시위를 하며 재심을 신청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던 배경옥씨와 이를 지원한 시민단체 '지금여기에'의 오랜숙원이 마침내 이뤄졌다. 지난 9월 29일 마침내 서울중앙지검이 고 이수근씨에 대한 재심을 신청한 것이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스스로의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기 위해 '셀프'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검찰은 재심청구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와 그 결과를 기초로 한 배경옥의 재심 무죄판결에서 확인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고, 피고인 이수근의 처조카인 배경옥이 피고인 이수근이가 그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청구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직접 재심을 청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다. 무고한 피해자를 구제하고 훼손된 사법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 스스로 무고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먼저 구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애초 검찰이 스스로 기소하기 전 불법적 수사나 법률적 오류는 없는지를 살폈다면 억울한 죽음과 옥살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이수근 사건의 진실을 올바로 밝혀 떳떳한 사법 정의를 세우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법치주의 수호에 솔선하는 기관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경기도 벽제의 차가운 합동묘에서 자신의 진실을 기다리고 있을 고 이수근씨는 국민과 함께 이 재판의 끝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재소자공동묘지에 위치한 합동묘. 270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묻혀있다.
 재소자공동묘지에 위치한 합동묘. 270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묻혀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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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금여기에, ##이수근 , ##검찰과거사위원회, ##배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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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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