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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사람을 사람을 사랑한 변호사> 신지영 글, 권용득 그림, 한겨레아이들 출판
 <조영래, 사람을 사람을 사랑한 변호사> 신지영 글, 권용득 그림, 한겨레아이들 출판
ⓒ 한겨레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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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사람을 사랑한 변호사>는 어린이를 위한 인물 평전이다. 평전은 한 인물의 어두운 면은 삭제하고 좋은 점만 부각시키거나 강조하는 어린이용 위인전에 비해 좀 더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면을 요구한다. 근거와 사실관계가 바르지 않고 지금도 이해관계자가 살아 있다면 누군가는 시시비비를 가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평전이란 단어를 함부로 쓸 수 없다.

사람은 관 뚜껑을 닫은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죽은 후에도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1990년 12월에 인권 변호사 조영래를 떠나보낼 때 많은 사람들이 남긴 추도사는 그렇지 않았다.

생전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거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마저 존경을 담아 애도를 표했다. 특별히 보수 논객 조갑제는 조영래 변호사를 '법을 아는 전태일'이라는 유명한 말로 압축해서 평했다.

"우리의 조영래는 억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가 바로 '법을 아는 전태일'이었다." -124쪽

조영래 변호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사법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굵직한 사건들을 맡았던 인권변호사다. 힘없고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던 그는 지금도 법대생이나 법조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항상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이 책은 조영래가 변호했던 굵직한 네 건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망원동 수재 사건,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증 사건으로 알려진 법정 공방들이다.

이 사건들은 온갖 차별과 악습이 만연했던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 판결 결과 오늘날 우리 국민 모두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빚진 자의 마음으로 그 사건들을 짧게 살펴보면 이렇다.

망원동 수재 피해 보상 소송은 우리나라 최초 집단 소송이었다.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건으로 작은 권리를 한데 모아 거대한 국가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오늘날 소비자 주권운동이나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집단 소송 등은 조영래 변호사가 문을 열었다고 봐야 한다.

[관련기사 : 쓰레기와 똥 버려지던 망원동 바꾼 '역사적 사건']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사건은 여성의 정년을 25살까지로 보던 차별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사건이다. 교통사고로 실직하고 피해보상 소송을 했던 여자의 패소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고 조영래는 이 사건의 항소를 맡아 승소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권리를 위해 무료로 재판에 뛰어든 그의 헌신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그 덕택에 우리 딸아이는 최소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25살에 조기정년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살지 않아도 된다. 조영래는 항소하기 위해 사건 당사자를 설득하며 차별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소송을 하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절차이지 결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사건은 이경숙씨 혼자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 나라 모든 여성들의 권리가 달려 있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들의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 이 판결에 승복하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75쪽

온 국민이 그 이름을 모르는 채 성만으로 알고 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 조영래는 경찰과 군사정권의 하수인이었던 검찰,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법부와 힘겹게 싸워야 했다.

이 사건으로 조영래는 대한민국 인권변호의 지평을 열었다. 정의를 실현할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던 사법부가 문귀동을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인 권인숙을 처벌하기로 결정 내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만행의 진상이 공개되고 그 관련자들을 모조리 처벌하기 전까지는 이 나라의 모든 국민과 산천초목까지도 결코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96쪽

조영래가 권인숙의 무죄를 호소하며, 사법부의 양심을 비판했던 이 사건은 6월 항쟁 이후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권인숙은 석방되고, 문귀동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연탄 공장 근처에서 살던 평범한 여인이 진폐증에 걸렸을 때, 사상 최초로 소송구조 제도를 끄집어낸 조영래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 환경권을 끄집어냈다. 이 소송은 이름뿐이었던 환경권이 국민 기본권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봉동 진폐증 소송 재판의 승리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국민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권리를 현실로 인정받은 점이야. 오염된 환경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거지." -110쪽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제도를 바꾸기 위해 헌신했던 조영래는 미국 연수 중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배경으로 있는 엽서를 아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엽서 글에서 그는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인생'을 살라고 썼다. 그다운 주문이었다.

"아빠는 네가 이 건물처럼 높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다.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119쪽

조영래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들과 그 결과들을 놓고 보면 열등감을 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바닥까지 낮추고, 드러내지 않아서 빛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고, 인간성에 모든 신뢰와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가 변호사라는 삶을 택한 이유는 권력이 없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죄를 증명하고 판단하는 건 내 몫이 아니야. 난 가난해서 피해를 입고도 변호사를 구할 수 없는 사람이나 어렵고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돕고 싶어." - 55쪽

'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법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해 낸 진정한 법조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조영래는 나이 마흔 셋,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조영래, 사람을 사랑한 변호사>는 조영래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가 맡았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단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 인간의 됨됨이를 살피며 가슴 울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드문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닌데도 재미있고, 울림을 준다.


조영래, 사람을 사랑한 변호사

신지영 지음, 권용득 그림, 한겨레아이들(2017)


태그:#조영래, #인권변호사, #민주주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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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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