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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전, 나는 동네 지인의 초대를 받아 결혼식장에 왔다.
 주말 오전, 나는 동네 지인의 초대를 받아 결혼식장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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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요. 민수야, 축하해."
"고마워요. 은우 엄마,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좋네요. 민수야 선생님 오셨네."

환하게 웃는 민수엄마를 마주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나와 맞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에 더 무거워졌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반짝이던 주말 오전, 나는 동네 지인의 초대를 받아 결혼식장에 왔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이 자리는 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올 상황이 아니었다.

큰아이는 휴학을 선언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중이다. 작년 이맘때 '올해 세 번째 시험을 마지막으로 떨어지면 미련 없이 복학하겠다'고 하더니, 한 번 만 더 하겠단다. 겉으로는 용기를 주었지만 속으로는 막막했다. 퇴직한 남편은 며칠 동안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니 새 출발을 축하하는 결혼식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오길 잘했죠?  이렇게라도 얼굴을 마주하면 좋잖아요. 그래도 나나 은우 엄마나 여기 토박이고 민수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 참, 은우 엄마는 민수 과외도 가르쳤잖아요."

동네 소식통으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하경엄마의 자잘한 웃음이 오늘은 좋다. 큰아이와 동갑으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민수. 모범생에 우등생으로 학급은 물론 학교 임원을 지냈던 큰아이와는 달리 민수는 공부보다는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 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가까운 친구보다는 동네친구로 지냈다.

민수는 그동안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공부를 가르쳤을 때만 해도 몸집도 크고 과묵한 편이었다. 엄마의 정성과는 달리 자신은 공부에 욕심이 없어 나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살을 많이 뺀 탓에 영 딴 사람이 됐고, 밝은 웃음이 보기 좋았다.

학교 운영위원회 일을 도맡아 하던 민수 엄마와는 모임도 함께하고 꽤 가깝게 지냈는데 아이들이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만남의 횟수가 줄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동네에서 가끔 얼굴을 마주칠 뿐, 별 다른 만남을 갖지 않게 되었다.

원래 성격이 단순하고 고지식하고 에둘러 말하지 못하다보니 주변과의 관계도 폭이 넓기 보다는 깊이 있는, 그래서 친구라 불리는 이들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지만 그 친구들 앞에서는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민수엄마와 맺진 못했다.

늘 힘들게 살아야 하는 나와는 달리 민수엄마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학교 운영위원을 했다. 취미로 골프를 하고 운동으로 수영을 하는, 흔히들 말하는 '타고난 좋은 팔자'였다. 내 쪽에서 일찌감치 선을 그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하경엄마를 통해 민수가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다닌다는, 군대에 입대했다는, 제대 후에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달, 느닷없이 걸려온 민수엄마의 통화로 민수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왜 이렇게 빨리 보내요? 서운하겠다."
"그렇게요. 둘이 좋다니 해야죠. 신부 될 아이가 여간 싹싹해서. 참 은우는 뭐 해요?"
"...응, 공부하고 있어."

이럴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게 정말 싫다. 다른 한편으론 누구는 결혼하는데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아이의 더딘 발걸음이 야속해지기도 한다.

"참, 그날 오면 수진이 엄마, 경철이 엄마랑 다른 엄마들도 만날 거예요. 우리 모임 엄마들도 오거든요. 오랜만에 만나니 좋잖아요. 꼭 와요."

마음 같아서는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참석했다. 결혼식 중간 중간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고 반가움 보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급기야 결혼식이 끝나고 한 자리에서 모여 식사를 하는데, 한 눈에 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에 반짝이는 치장을 하고 있어 부담스러웠다.

"민수는 신부를 잘 얻었어. 유치원 선생님이라는데 그렇게 성격이 좋다는군.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교감선생님이래요. 얼굴도 예쁘고."
"그래서 이번에 민수 엄마도 꽤 신경 썼대. 집도 2억 주고 아파트 전세로 얻어주고, 나름대로 절차 밟아서 할 건 다했대."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을 뿐, 달리 거들지 않았다.

"은우는 지금 뭐 해?"
"응, 공부하고 있어."

미리 준비한 것처럼 나는 무심하게 답을 했다.

"어디에서? 미국?"

원래 돈이 많아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부러움을 샀던 경철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외무고시 준비해요. 신림동에서."
"아"

순간 경철엄마의 목소리에서 가벼움이 느껴졌다.

"뭘 그렇게까지 한담. 내년이면 서른인데. 남자도 아니고 여자인데,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남자 잘 만나는 게 더 낫지."
"......."

갑자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더 이상 아무 것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 나 아는 이 딸은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고 담 쌓았다고 늘 걱정하더니 전문대학교 나와서 돈 많은 집 남자를 만나서 강남에서 살아. 그 집 시댁이 강남에서 큰 식당을 여러 개 한다는 거야.

그리고 고시공부라는 게 좀 어려워? 우리 사촌 동생도 10년 넘게 사법고시 준비하다가 결국은 그만두고 그 나이에 취업준비 하고 있다니까. 그렇다고 취업은 또 쉽냐고. 남자도 힘든 고시 공부를 여자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뭐해? 그냥 은우 엄마가 주변에 좋은 자리 있나 알아봐. 아니면 내가 알아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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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자신이 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로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됐다.
 큰아이는 자신이 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로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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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철 엄마의 타이르듯 하는 말을 들으며 큰아이를 떠올렸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질끈 동여맨 머리,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고시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해졌다.

큰아이는 자신이 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로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됐다. 재수, 삼수, 사수까지 네 번의 수능을 치르다보니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바심에 대학 생활도 팍팍했다. 조기졸업을 목표로 학업 이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외무고시를 봐야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무조건 반대했다. 다시 외무고시 시험을 준비하면 적어도 2년은 걸린다. 다시 또 늦어진다는 사실에, 또 수능 때처럼 한 번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시달렸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아이의 뜻을 따르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지 3년이 넘어가는데, 불안함이 점점 더 커져 요즘은 말조차 건네기가 어렵다. 다른 무엇보다 올해 시험을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했는데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해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거 같아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쩌면 남편과 나보다 아이가 더 불안하고 답답할지도.

남들처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바랐지만, 그걸 강요할 순 없었다. 자꾸 꿈에 대한 그리움이 고개를 들겠지.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던 아이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빨개진 눈시울도...

"너는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거야."

20년지기 친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시댁 어른들에게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게 가부장적이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 외무고시 공부하는 아이 뒷바라지까지.

가끔은 내가 봐도 이런 내가 답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런 답답함이 아이에게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공부 뒷바라지를 하는지도 모른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참아야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흑인으로서의 차별과 냉대를 이겨내고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부 장관을 롤모델로 삼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곁이 되어주겠다'며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는 여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인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고시 공부가 더 힘든 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는 게 힘든 것이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팔자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러니까 은우는 지금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은우가 돈 많은 남자 만나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공부하는 거고. 외무고시라는 게 기본적으로 언어가 따라줘야 시험에 응시를 할 수 있는 거 알고 있지?

은우는 기본적으로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깝고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도 수준급이라 돈을 벌려고 마음 먹으면 당장이라도 벌 수 있어. 그런데 경철이 엄마, 우리가 살아보니 그래도 돈보다는 꿈을 이루는 게 낫다는 거 잘 알잖아요."

"......."

이번에는 경철엄마의 답이 없었다.

"그리고 어디 가서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 하지마. 옛날이나 그랬지 요즘은 여자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사는데. 그런 거 잘 알면서."

"맞아.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지만 꿈은 이루면 평생을 가잖아. 그러고 보면 그렇게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은우가 대단하네."

어느 틈엔가 하경 엄마가 거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이야기의 중심은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바라는 삶으로 옮겨졌다. 답답했던 가슴 속이 후련해졌다.

결혼식장을 나오며 나는 휴대폰으로 아이를 불러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와 웃음이 든든했다.

나는 바란다. 좀 늦더라도 아이가 꿈을 이루어내기를. 20대를 오롯이 책상 앞에 앉아 보낸 만큼 앞으로는 그 어떤 일이 생겨도 잘 이겨내기를, 자신이 잘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창비·오마이뉴스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모 기사입니다. (공모 관련 링크 : https://goo.gl/9xo4zm)



태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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