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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빚어내는 데칼코마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절골에서.
 자연이 빚어내는 데칼코마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절골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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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이다. 더욱이 단풍이 물드는 가을은 아름다운 유혹이다. 나는 그 화려한 유혹에 기꺼이 퐁당 빠져들고 싶은 마음으로 지난 25일 청송 주왕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오전 8시 남짓 되어 마산역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주왕산국립공원 절골분소(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산지길)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10분께. 절골 계곡 따라 걸음을 옮기자마자 이내 눈 앞에 펼쳐진 빨간 단풍에 등산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산행 초입부터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 설렘을 선사한 절골의 가을 숲길은 마치 숨죽이며 보는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절골의 단풍에 가슴이 콩닥콩닥

    아름다운 절골에서 가을에 취하다.
 아름다운 절골에서 가을에 취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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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절벽이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는 절골은 옛날에 이곳에 절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걸어야 보인다더니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숲길로 들어갈수록 마음속까지 가을을 느끼게 되면서 마냥 행복했다. 계곡 위로 설치된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 모습이 자연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이 되기도 하고, 숲길을 걷다 햇살이 노닥거리는 듯 눈부시게 반짝이는 단풍잎들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계곡물도 어찌나 맑은지 화려한 가을빛으로 물든 나무들 그리고 자갈층 여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곡물에 대칭으로 비쳐 자연이 빚어내는 멋진 데칼코마니가 신비스러웠다. 절골의 가을 단풍에 취해 그렇게 1시간 40분 정도 걸었을까, 소박한 대문 다리에 도착했다.

    빨간 단풍에 가슴이 콩닥콩닥
 빨간 단풍에 가슴이 콩닥콩닥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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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다리에서 주왕산 가메봉(882m) 정상으로 가는 길은 계속 가파른 오르막이라 참 힘들고 몸이 고됐다. 그래도 한 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길이라 용기를 냈다. 그럼에도 몸이 너무 지쳐서 가메봉 사거리에 올라와서는 갈까 말까 하고 마음이 자꾸 흔들렸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왼쪽으로 200m 더 올라가니 정상 표지석이 나타났다.

가메봉 숲길서 가을을 만나고 대전사서 웅장한 기암에 감탄하다

    대전사 보광전(보물 제1570호)에서.
 대전사 보광전(보물 제1570호)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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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코스가 길어 점심을 거르기도 했고 힘겹게 올라온 탓에 후들후들 다리가 떨리면서 힘이 다 빠졌지만, 정상 표지석을 보고서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금도 가메봉 정상에 오른 그 기쁨이 잊히지 않는다. 가메봉 정상에서 후리메기 삼거리로 내려가는 길도 어떤 구간에서는 보들보들 폭신한 촉감이 전해지는 흙길을 밟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경사가 급해 아주 조심스러웠다.

조물주가 빨갛고 노랗게 화려한 색깔로 덧칠해 놓은 듯한 숲길을 걸으니 가을을 진하게 만날 수 있었고, 또 일상사에서 상처받은 마음마저 치유되는 것 같았다. 아울러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사라져 가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 그 황홀한 숲길은 자연만이 우리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메봉(882m) 정상
 가메봉(882m) 정상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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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색깔로 덧칠해 놓은 듯한 가을 숲길에서.
 화려한 색깔로 덧칠해 놓은 듯한 가을 숲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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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가슴속 퐁당
침묵의 소리
태고의 소리
이 가을 소리
가장 경건한 숨 속의 숨소리
퐁당!
나혜야
가슴이 온통 너로 단풍들고 있다
나혜야, 가을이다

- 김종석의 '나혜야, 가을이다' 일부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후리메기 입구까지 거리는 1km로 평탄한 길이다. 오후 3시 10분께 후리메기 입구로 내려왔다. 그런데 용연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300m 올라가야 했다. 이제는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진저리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용연폭포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용연폭포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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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폭포
 용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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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협곡에서.
 용추협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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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로 떨어지는 용연폭포를 보니 문득 10년 전 여기에 같이 왔던 친구 생각이 났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게 세상사일까. 둘이서 감상했던 폭포를 세월이 흘러 혼자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왠지 싱겁고 감흥이 덜하다.

산악회 하산 시간에 맞춰야 해서 용추협곡 쪽으로 서둘러 걸어 내려갔다. 한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감동을 주는 용추협곡은 거대한 기암절벽으로 신선이 노니는 선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는 한 폭의 그림같이 예쁜 용추폭포가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쁘다.

    주왕산 시루봉.
 주왕산 시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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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걸어 내려가면 시루봉이 나온다. 생김새가 보는 방향에 따라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 같아 보이기도 한다.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시루봉을 뒤로하고 나는 잰걸음으로 대전사를 향해 걸어갔다. 20분가량 걸어가자 대전사 보광전(보물 제1570호, 경북 청송군 부동면 공원길)에 이르렀다.

보광전 뒤로 주왕산의 상징적인 바위라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우람한 기암이 우뚝 솟아 있다.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한 형상으로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어 감탄스럽다. 상의주차장까지 가야 해서 급한 마음에 몇 발짝 걸음을 옮기다가도 나도 모르게 멈추기를 되풀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12.5km를 걸었던 긴 산행길이었지만 추억으로 남는 감동적인 하루였다. 지금쯤이면 더욱 선명한 색깔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을 주왕산의 단풍이 벌써 그립다.


태그:#단풍, #주왕산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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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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