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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까이 핀란드에 살면서 유모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식당을 본 적이 없다. "애 있는 가족은 못 들어오십니다"라고 '노키즈'를 써 붙인 식당이 있다면 "나 장사할 생각 없소"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네 사람들만 가는 피자가게나 햄버거집에도 아기용 의자는 한구석에 늘 놓여있다.

한국에서 아이의 출입을 금하는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이 엄마로서 1차적으로 분노가 일었다. 한국에선 아기의자나 기저귀 교환대가 구비된 백화점 말고는 아기를 데리고 다닐 만한 곳도 없는데, 자꾸만 아이들의 발 디딜 공간이 더 좁아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은 좌식(坐食) 형태의 식당이 많고, 뜨거운 찌개나 고기 그릴이 아이의 손에 닿기 쉬운 구조라 서양과 같은 기준으로 키즈 프랜들리(Kids friendly)환경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아이 발 닿는 곳 대부분이 키즈존이라면?
핀란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이 이유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핀란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이 이유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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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주는 아이와 함께 지인을 만나기 위해 내가 사는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에서 5시간 걸리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왔다. 볼 때마다 놀라는 건 고속도로 위 휴게소에 있는 아이 이유식을 발견할 때이다.

잠시 햄버거 하나를 사러 들른 휴게소에서 음료수와 함께 진열된 이유식을 발견했다. 몇 평 되지 않은 작은 공간에도 몇 개의 아기 이유식을 가져다 놓는 것은 기본이다. 아기 의자는 당연하고 놀이공간, 일회용 턱받이, 유모차 주차공간, 기저귀 교환대까지... 다시 말해 아이가 발 닿는 대부분 공간이 '키즈존'이 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 마련된 아이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 마련된 아이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
ⓒ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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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핀란드 슈퍼마켓에 가도 이유식 코너가 굉장히 큰 편이다. 다른 유럽국가의 수입 제품부터 핀란드 자체 브랜드까지 4개월, 6개월, 8개월, 1년... 연령별로 각종 병 이유식이 즐비하다. 어떤 것은 밥과 감자, 고기를 갈아 넣은 메뉴부터 토마토 마카로니 볶음, 연어 브로콜리 등 다양한 완제품을 판매한다.

한국처럼 대형마트에만 이유식을 파는 것이 아니다. 지역 마켓은 물론이고 키오스키(KIOSKI)편의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처럼 이유식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아이스박스나 보온통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실온보관이 가능한 시판 병 이유식을 하나 들고 외출해서, 식당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아이의 그릇에 담아내면 그만이다.


핀란드 슈퍼마켓에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시판 이유식을 많이 판매한다.
 핀란드 슈퍼마켓에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시판 이유식을 많이 판매한다.
ⓒ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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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택에 핀란드에 이주한 후 우리 가족은 아이와 외식할 때 단 한 번도 큰 불편을 겪은 일이 없다. 아이 식사야 시판 이유식 하나 꺼내 주면 그만이고, 아기의자는 늘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는 데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집 바깥에서 식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 덕택이다.

핀란드인들은 '노키즈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에서 핀란드인들은 '노키즈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핀란드에서 8개월 여아를 키우는 헨리 유하니 린드루스(31세)씨는 "아이에게 유해한 환경이라면 노키즈존을 만드는 것은 업주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또 50일된 남아를 키우는 마르코 꼬물라이넨(42)씨는 '우릴 원하지 않으면 그곳에 안 가면 된다'라며 한술 더 떴다. 

나는 그들의 답변보다 이 나라의 사회적 배경에 주목했다. 한창 다루기 힘든 돌 미만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서 저런 여유는 어디서 나왔을까. 특정 가게가 아이를 출입 금지를 한다 해도 핀란드에는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든지 많다. 그리고 아이의 안전 목적을 위한 처사라면 업주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태도도 깔려 있다. 

오울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한국을 자주 오가는 한국계 핀란드인 레오 리(38)씨는 의미 있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미 한국은 출입구부터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굳이 종이로 써 붙이지 않아도 노키즈존인 곳이 투성이다"라고 말이다. 이어 "물론 외국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이나 공연장에서는 나이 제한을 두기도 하지만 한국의 노키즈존은 그 이유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키즈존'은 가장 쉬운 '차별'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노키즈존'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저지르는 차별이 될 수 있다. '키즈' 대신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의 단어로 치환해본다면 더 명확해 진다. 같은 방식이라면 누군가의 '불편의 대상'은 또 다른 '금지의 대상'으로 무한정 파생될 수 있다. 공존을 고려하지 않고 금지라는 쉬운 방법을 택한 점주들의 선택이 아이 엄마로서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아이와 함께 기분 좋게 외출한 엄마들이 현대판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암묵적으로 가게마다 번지는 현상도 무척 우려스럽다.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찾아 들어간 피자집에도 아기의자는 늘 준비돼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찾아 들어간 피자집에도 아기의자는 늘 준비돼 있었다.
ⓒ 김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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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아이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노키즈존' 가게 앞에서 "엄마, 왜 나는 이곳에 못 들어 가나요?"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해 줄 자신이 없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핀란드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아이 이유식 병을 한 손에 들며 또 한 번 생각한다.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 함께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핀란드인들의 배려를.


태그:#노키즈존, #노키즈, #핀란드,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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