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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선거에서 박근혜씨 지지했던 사람들 이번에는 어떻게 투표할 거 같아요?"

요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호기심 섞인 질문들이다.

"그거 알면, 제가 이렇게 촌구석에 박혀 있겠습니까? 한 자리 깔았어도 크게 깔았지."

시골 사는 촌부도 비교적 자주 접하는 궁금증이고 질문이니, 하물며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타칭 정치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을 법하다.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들을 두루 살펴보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박근혜씨를 지지했던 그룹이 어떤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줄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려는 의도의 설문 같은 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과학은 여론조사와 관계없이 그 표가 어디로 갈지를 대략은 알고 있다. 왜? 우리 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과반일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정치는 과학'인 까닭이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선거판에 유전자를 들이밀면 황당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쯤 되면, 즉 정치학이나 사회학 혹은 통계학이나 조사방법론, 역사, 인문지리 등을 얘기하면서 한국 정치와 선거, 여론조사 결과 등을 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헌데 정치판에 유전학이라?

정치학과 유전학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좀 에둘러서 접근해 보자. 한국 사람이 프랑스 사람, 혹은 영국인이 일본인을 보면 최소한 서로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라는 걸 안다. 딱 보면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무엇이 결정할까? 두말 하면 잔소리, 유전자이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생김새, 체형 등만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생물일까? 정의하기가 다소 애매모호하지만 이른바 '심성',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특질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농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안에서 '누구누구는 외탁*해서, 혹은 누구누구는 제 아버지를 닮아서'라는 등의 얘기를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생김새나 체질, 성질 따위가 외가 쪽을 닮음)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살아있는 유전자 실험의 피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일란성 쌍둥이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도 타인에 비하면 서로 훨씬 닮았다.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성격이 비슷한 거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이뤄진 방대한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젖먹이 때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도 성향이 비슷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는 시대상황이 주무르는 듯하지만, 정치의 주체인 주권자 개개인의 정치 성향이 사실 한 집단 혹은 공동체의 정치 지형을 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시민 구성원들 가운데 보수적인 성향이 많으면, 그 사회의 정치는 보수 우위이고 진보적 성향의 구성원이 많다면 진보가 주도하는 정치 지형이 탄생할 수 밖에 없다.

유전학에 문외한이 정치분석가들 가운데도 정치 성향을 일종의 '기질'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사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기질이다. 기질이란 문자 그대로 타고난 '기품과 성질'인데, 타고났다는 건 유전자를 그리 받았다고 해석해도 그다지 틀릴 게 없다.

과학적으로 정치학과 유전의 관계를 구명한 논문의 예를 들자면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연구팀이 500명 이상의 쌍둥이에 대해 투표 성향을 조사한 결과, 투표 성향의 차이는 최소 60%가 유전자의 영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달리 말해, 환경이나 상황 변화 등 기타 요소를 다 합쳐봐야 4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는 최근 상당히 진척돼 구체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지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의 다른 특질도 그렇지만 정치 같은 고도로 복잡한 인간 특유의 행동이나 성향은 한두 유전자보다는 여러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정치 유전자' 가운데 최근 학계의 주목을 받은 건 'DRD4'라는 유전자이다.

싱가포르 대학의 전문가들이 조사한 DRD4와 보수 혹은 진보적 성향간의 관계에 따르면, 이 유전자의 특정부분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가가 보수 혹은 진보의 정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조사에서 스스로 '매우 보수적'이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에게서는 DRD4의 특정부위가 4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62.5%에 달했다. 반면 '매우 진보적'이라고 답한 층에서는 4번 반복되는 예가 37.9%에 그쳤다.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부위는 앞으로도 연구에 따라 계속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더 지목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유권자 개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이 인생 전반을 통해 바뀔 확률은 안 바뀔 확률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은 자명하다. 타고난 성격이, 예를 들면 급한 성질이 교육이나 훈련에 의해 느긋한 성격으로 바뀌고, 예민한 사람이 어느날인가부터 무뎌지는 등의 변화는 쉽게 초래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탓이다.

정치 성향은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흔히 말하듯 극우에서 우, 중도, 좌, 극좌와 같은 식으로 연속적인 경향을 보인다. 우측이든 좌측이든 이게 기질이라면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중도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얼추 말해, 중도 보수에서 중도 진보에 이르는 그룹들은 이른바 진보와 보수 후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계층일까? 잘해야 중도부터 강경보수 혹은 수구층에 이르는 유권자들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중에서 중도 혹은 중도보수를 제외하곤 진보쪽 후보에게는 이번에도 표를 주지 않을 확률이 대단이 높다. 이들 즉 보수와 강경보수 수구 성향의 유권자들은 박근혜씨의 사례를 겪고 나서도 또 박근혜씨와 비슷한 부류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씨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번 대선의 후보는 예를 들면, 70% 득표 같은 압도적 승리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한때 적어도 80% 이상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촛불 민심 같은 게 선거판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다자구도든, 양자구도든 박근혜씨와 대척점의 후보가 60% 안팎을 거둬들인다면 '겁나게' 많은 득표를 한 것이고, 절반만 넘겨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한 사람 가운데 그와 대척점에 있는 후보에게 넘어올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유권자들이 막연히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전자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도 민주화 확산과 정착에 일조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렸습니다. 마이공주 닷컴은 충남 공주의 시골 커뮤니티 포털로 생활정보, 법률, 부동산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태그:#박근혜, #대선, #진보, #보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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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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