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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 [편집자말]

서울 노량진동, 신림동, 안양시 관양동과 비산동, 서울 포이동, 개포동, 명륜동, 흑석동, 미아동, 휘경동, 논현동, 동숭동, 부천시 괴안동, 서울 중계동, 쌍문동…


스무 살 때 혼자 서울에 올라온 후 십여 년 동안 내가 살았던 동네들이다. 같은 동 안의 다른 집에 살기도 했기에 세어보니 이사를 무려 스무 번이나 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내면서 방값까지 감당할 수 있는 집을 찾다보니 주거난민처럼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그렇다고 아무 집에나 살 수는 없었다.

나는 특히 '창문결핍'이 싫었다. 채광, 통풍, 전망은 생활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문이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청년에게 창문은 사치품인가?

채광, 통풍, 전망은 생활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 생활 내내 '창문'은 사치품이었다.
 채광, 통풍, 전망은 생활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 생활 내내 '창문'은 사치품이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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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살게 된 노량진 하숙집 내 방의 창밖은 옆집 벽으로 거의 막혀 있었다. 대학 재수를 하는 나를 위해서 부모님은 제일 좋은 방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들어간, 그 하숙집의 최고급 방이었다. 다른 방들은 아예 창문이 없었다. 그때 노량진 재수생들의 현실처럼 사방이 막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처음 얻었던 학교 근처의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3만 원짜리 작은 방은 '나쁜 창문'이 있던 곳이다. 집주인이 더 많은 학생을 입주시키기 위해 큰 방 중간에 벽을 설치해 둘로 나눴는데 창문도 그렇게 두 방이 나눠쓰게 된 구조였다.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어버리면 옆방 청춘의 창은 닫혀버리게 되는, 싸움을 부르는 창문이다. 지금 취업전선 위 청춘들의 현실처럼 말이다.

'창문전투'를 피해 다른 방을 알아보러 학교 앞 부동산을 찾았다. 내 통장에서 지불 가능한 월세에 맞는 방을 소개받았다. 옥탑방이었다. 누워서 기지개를 켜면 발과 손바닥이 양쪽 벽에 닿는 작은 방에 싱크대가 신기하게도 들어와 있는 곳이었다. 창문을 열자 그 방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못이 있는 큰 저택이 보였다. A그룹 부회장의 별장이라고 부동산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택 거실 통유리로 햇살이 축적되고 있는 게 보였다.

보통의 청춘들에게 창문은 사치품인가? 나는 창문을 포기하기로 하고 반지하로 향했다. 그나마, 다니던 대학 근처에서는 저렴한 방을 구할 수 없어서 버스로 한 시간 가까이 떨어진 휘경동으로 이사했다. 거기서 살던 지인이 나에게 방값이 싸다며 물려준 월세 12만 원짜리 방이었다.

가장 먼저 어둠에 들고 가장 나중에 아침이 찾아오는 반지하. 나는 반지하라는 주거형태를 꼭 빠른 시일 안에 역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이야기로 만들고 싶다. 그해 여름 그 동네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인근의 중랑천이 범람하면서 그 일대 수많은 반지하 가구들이 수해를 입은 것이다. 내 방 역시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반지하인지 반지옥인지 모를 냄새가 몇 주간이나 방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나가야 했다.

제대로 된 창문있는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할 수 있는, 최저임금 정도만 주는 보통의 아르바이트로는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 신념 중 하나를 버리기로 했다. 창문이 있는 삶을 위해서 하고 싶지 않던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창문이 있는 삶' 위해 신념을 버렸다

나는 평일에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서 논술강사로 일했다. 벌이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햇빛샤워가 가능한 창문 밖으로 서울의 미세먼지를 조망할 수 있는 방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월급의 3분의 1이나 되는 돈을 월세로 내야 했다. 원래도 많이 안 좋던 학점은 학원 강의 준비 때문에 더 나빠졌다.

부족했던 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원강사를 잠시 그만둔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왔다. 대치동에서는 나같은 평범한 강사의 전화번호도 학부모님들 사이에 돌아다녔던 것 같다. 과외 요청이 들어왔다. 별로 내키지 않아서 '과외 안 합니다'라고 하려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과외비로 큰 액수를 부르면 학부모님 쪽에서 먼저 안 하겠다고 말하시겠지?'라는 생각에서 나름 거액을 불렀다. 그런데, 하시겠다고 했다.

과외 받기로 한 학생의 집은 타워팰리스에 있었다. 입구에서 주민증을 맡기고 경비원이 집주인과 통화한 후에 들어가야 했다. 뭔가 입국심사 같았다. 어쩌면 입국심사인지도 모른다. 학생은 중학생이었는데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나에게 국어를 배웠다. 국제학교 한 학기 등록금은 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학부모님께 하사받은 과외비만으로 월세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일주일에 두 번 그 곳에 입출국하면서 내가 어느 나라쯤에 살고 있나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대학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직종은 사교육기관이다. 10명 중 1명의 비율이고 나도 그 안에 잠시 포함됐었다. 그리고 사교육 기관에 종사하는 많은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다른 직종을 준비하는 동안의 생계유지다.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강사들이 원치 않는 입시경쟁 속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불편한 상황이 싫어 나는 학원강사를 그만 두었다. 지금은 한참 동안 유예되었던 바람을 좇아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환경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감당 가능한 월세' 찾으러 120곳을 돌다

수입이 줄어들자 가장 먼저 집을 옮겨야 했다. '감당 가능한 월세방'을 찾아서 무려 120곳을 돌아다녔다. 히말라야 같은 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하는 한기 가득한 방도 부담스러운 월세가 매겨져 있었다.
 수입이 줄어들자 가장 먼저 집을 옮겨야 했다. '감당 가능한 월세방'을 찾아서 무려 120곳을 돌아다녔다. 히말라야 같은 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하는 한기 가득한 방도 부담스러운 월세가 매겨져 있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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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이 많이 줄어든 만큼 가장 먼저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 집이었다. 감당 가능한 월세방을 찾아 다녔는데, 나중에 메모지를 보니 방문한 집이 120군데나 됐다. 히말라야 같은 경사각의 계단을 오르면 산맥의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한기가 가득한 방도 부담스러운 월세가 매겨져 있었다.

방을 찾는 대장정은 10여 년 전 잠시 살았던 옥탑방이 있는 미아동에서 마무리되었다. 결국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 동네에는 빛깔 좋은 아파트도 들어오고 대형마트도 생겼다. 하지만 겨울이면 스키장이 되어버리던 골목 언덕은 그대로였다.

나는 스키장 출발점에 있는 작은 빌라 꼭대기층에 지금 살고 있다. 옥탑인 듯 옥탑 아닌 옥탑 같은 방이다. 여기 출발점에서 작년 여름, '김영동 프로젝트'라는 팀명으로 청년문제를 다룬 <노량진 육교>라는 노래를 데뷔곡으로 만들어 발표했다.

그 8월, 질긴 폭염의 와중에 나는 통증의 끝판왕이라는 대상포진에 걸렸다. 어르신들이 주로 걸리는 병인데, 요즘은 스트레스와 영양부족 등으로 젊은층도 많이 발병한다고 했다. 더위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럴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절대 안정이 필요하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권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음원 홍보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마냥 옥탑에 은둔해야 했다. '열악한 집은 병을 키운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집에서 내 삶은 안녕할 수 있을까?

지금의 청춘들은 미래를 향한 자그마한 창문을 갖기 위해 서로 싸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창밖은 미세먼지같은 현실의 농도가 '매우 나쁨' 단계이고, 허리까지 차오른 등록금빚과 생활빚과 스펙빚들이 살인적 냄새를 풍기는 반지옥에서도 탈출해야 한다.

반지옥의 늪을 특히 깊게 만드는 것이 높은 집세 부담이다. 저렴한 방을 찾아 청년들은 지옥비(지하방, 옥탑방, 비주택) 속을 살고 있다. 그 곁에서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절대 다수의 주택이 민간 임대시장에 맡겨져 있어 고비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공공주택도 저렴하지 않다. 게다가, 여러 불리한 입주조건 때문에 청년들의 공공주택 입주비율은 극히 낮다. (20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율은 3%다)

청년들은 무엇이 좋다고 이 나라에 계속 세금을 내며 살아야 할 것인가. 탄핵된 대통령의 빈 집에 청년들의 꿈이 입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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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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