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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의 나까프'에서 '나까프'는 '나쁜X 까발리기 프로젝트'를 줄인 말입니다. 여기서 'X'는 '놈'일 수도 있고, '짓'일 수도 있습니다. '나까프'의 대상은 공인 중의 공인인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급 공직자들입니다. 나아가 무력을 가진 군과, 공권력을 가진 이른바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그리고 갈수록 힘이 세지는 대기업 회장들도 당연히 '나까프'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편집자말]
☞'신(新# 김기춘뎐' #3# : 김기춘 위기에 빠트린 사건 세 가지의 결말

MBC 해직 언론인 출신 최승호 PD가 만든 영화 <자백>은 탈북화교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40개월 추적해 만든 다큐멘터리다.<자백>의 도입부는 유씨를 보위부 간첩이라고 허위 진술한 여동생 유가려씨에 대한 검사의 법정 심문 장면으로 시작된다.

"오빠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보위부에 맹세했지요? 오빠가 건넨 USB메모리를 보위부에 전달했지요?"

이시원 검사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유씨에 대한 심문을 이어간다. 강압으로  피의자를 다그치는 검사상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나긋나긋한 검사의 목소리가 낯선 친절함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 낮은 목소리의 이시원 검사와, 함께 공소 유지를 담당한 이문성 검사는 유우성 간첩사건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가 각각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영화<자백>과 간첩조작 검사들, 그리고 '악의 평범성'

유우성 씨 재판 공소 유지를 담당한 이시원(오른쪽), 이문성  검사(왼쪽).
 유우성 씨 재판 공소 유지를 담당한 이시원(오른쪽), 이문성 검사(왼쪽).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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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거조작 사건을 재수사한 검찰의 결론은 국정원이 협조자를 통해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문서를 제출했음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이 위조문서임을 알고서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을 탐사취재한 <뉴스타파>에 따르면, 두 검사는 국정원에 5천만 원이 들더라도 출입경기록을 입수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국정원이 협조자에게 돈을 주고 문서를 입수한 사실과 영사확인서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문성 검사는 이 사건을 맡기 전에 국정원 안보수사국에서 수사지도관을 지냈다.

'정의의 표상'이라는 검사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가정보원의 '흑역사'를 다룬 필자의 책(<시크릿파일 국정원>)과 최승호 감독의 영화가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나와 지난해 북-영화토크를 수 차례 함께 했다. 그때 필자는 최 감독에게 "감정이 실리지 않는 검사의 낮은 목소리에서 '악의 평범성'을 느꼈다"면서 "의도된 연출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최 감독은 의도된 연출은 아니지만 자신도 궁금해서 알아보니 검찰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검사이고 성품도 착한(?) 검사로 알려져 놀랐다고 했다.

'악의 평범성'은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썼다. '악의 평범성'은 이 책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이 체포되자 사람들은 그가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악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을 검진한 정신과 의사들도 매우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한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두 검사와 마찬가지로 <자백>에 비친 주연 배우(?) 김기춘 역시 평범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그도 두 후배 검사와 마찬가지로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수 있다. 우리에게 낯익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 사례를 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김기춘, 정형근, 홍준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셋 다 경상남도 출신이다. 세 사람은 법대 재학중 혹은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다. 셋 모두 검사 시절에 정보기관에 파견돼 경력을 쌓은 뒤에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김기춘-정형근-홍준표의 공통점은?

이처럼 3인은 지연과 학연, 그리고 직연(검찰-정보기관)으로 얽혀 있다. 김기춘은 거제, 정형근은 거창, 홍준표는 창녕 출신이다. 다만, 홍준표는 창녕과 가까운 대구에서 영남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김기춘-정형근은 고등학교(경남고)와 대학(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3인은 평범한 검사보다는 '정치검사'의 길을 걸었다. 3인 모두 정보기관 파견 경력을 쌓은 뒤에 96년에 나란히 15대 국회에 입성해 3선 이상의 다선 의원을 지냈다.

김기춘은 정보기관에 파견되어 출세한 검사의 원조다. 법무부 검사 시절 유신헌법 초안을 기초했고, 유신의 한 복판인 70년대 중-후반 중앙정보부에서 대공수사국장으로 5년간 근무했다. 업무능력이 치밀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엘리트 검사 김기춘은 서슬 퍼런 유신 시절 검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5공 시절 권력의 눈밖에 나 옷을 벗을 위기에 처했으나 후배 박철언 비서관에게 구명을 요청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3선 의원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나 현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이다.

정형근은 5공 시절인 83년에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수사국에 파견되어 수사2단장, 대공수사국장, 수사차장보, 기획판단국(1국)장, 국내담당 1차장을 역임했다. 드물게도 친정(검찰)보다 시집(안기부)에서더 오래 근무하면서 출세한 특이한 케이스다. 안기부에서 남한조선노동당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으나, 고문 수사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의 '지방선거 연기검토' 문건이 공개되어 차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듬해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정치인으로 변신해 3선의원을 지냈다.

홍준표는 '공안류'인 두선배 칼잡이와 달리 '강력류'였다. 김영삼 정부 초기 사정개혁 드라이브를 걸 때, 노태우 정부 시절 김영삼의 정적이었던 박철언을 구속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수통이 아닌 강력통 검사가 거물 정치인을 구속한 것은 드문 일이다. '대어'를 낚은 뒤에는 사정 드라이브가 시들해져 별로 할 일이 없던 그를 안기부(수사지도관)로 이끈 검찰 선배가 정형근이다. 4선 의원을 거쳐 경남도지사에 재선되었으나 '성완종리스트'와 관련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상태다.

김기춘도 정형근-홍준표와 함께 96년 김영삼 총재로부터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나란히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정계 입문 경로로 보면, 3인 모두 '김영삼키즈'인 셈이다. 다만, 노태우 정부에서 검찰총장-법무장관을 지낸 김기춘의 정계 입문 과정은 두 사람에 비해 한결 더 극적이다.

'인생의 전환점' 된 초원복집 사건... '우리가 남이가'로 100만표 더 얻어

앞서 법률 도적, 즉 '법비'(法匪) 김기춘에게도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때마다 김기춘은 '법꾸라지'라는 말을 들을 만큼 법망을 빠져 나가는 데도 '선수'였다. 첫 번째 위기는 5.16장학금과 검사 임명장, 그리고 대공수사국장 직위를 안긴 후견인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두번째 위기는 대선 직전 한 복국집에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불법선거를 모의한 사실이 폭로되어 찾아왔다. 세번째 위기는 돈 준 사람 이름과 액수를 적은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위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후견인과 스폰서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어찌 보면 불가항력으로 엄습한 위기였다.두 번째 위기는 달랐다. 그는 초원복국 사건이 터지기 불과 얼마 전까지 선거사범을 단속-처벌하는 법무장관이었다. 그랬던 그가 중립 선거내각이 출범한 상황에서 기관장들을 모아 공공연하게 불법선거를 획책한 것이다.

그것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그는 아무런 공직도, 당직도 갖지 않은 민간인 신분이었다. 그렇다면 민간인 신분이었던 그가 어떻게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기에 바쁜 기관장들을 한 군데 불러 모을 수 있었을까? 초원복집 녹취록을 보면, 그는 대구에서도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비슷한 모의를 했다. 김기춘이 김영삼 후보의 고향(거제시 장목면) 및 고교(경남고) 후배라는 특수관계를 배제하면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선거법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으로 법망을 빠져나가 면죄부를 받았다. 그뒤에 집권당 국책자문위원을 거쳐 이듬해 김영삼 총재로부터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고향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하게 된다. 결국 신한국당 공천은 그가 초원복집에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라고 지역감정을 부추긴 '공로'에 대한 보상이었다.

법치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오히려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집권 여당은 불법선거 모의 사건을 불법도청 사건으로 국면을 전환시켜 버렸다. 김기춘도 2005년 7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고 "(초원복집 사건으로) 100만표가 더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자신의 공을 숨기지 않았다.

김기춘의 지역주의 : "우리 검찰-경찰에서도 양해할거야"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로 회자된 초원복집 사건은 한국 사회 지도층의 위선 속에 가려진 원초적 본능과 추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다. 대선을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김영환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교육청 교육감,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김기춘은 이들에게 "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며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고 노골적으로 불법선거를 부추겼다. 특히 이들이 정서적으로 공유한 지역감정과 언론관은 충격적이었다. 불법선거를 모의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느끼는 공직자들의 대화와 번죽거리는 웃음은 지금 들어도 섬뜩하다. '악의 평범성'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다. 당시 공개된 녹취록의 주요 대목을 옮기면 이랬다(아래 인용문의 굵은글씨는 필자 강조).

김기춘 : (부산에서 YS 지지율이) 70%되니 안 되니…믿을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다. 사실여기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저는 이제…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 (일동 웃음) 이해해 주세요.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 나는 (부재자)투표해서 중립을 못지키겠다. 이제 저는 마음대로 해도 돼요. 장관님하고는 다릅니다.

김기춘 :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야당에서는 (선거운동에 대해) 상당히 강경하지만, 아 당신들이야 지역발전을 위해서이니 하는 것이 좋고…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웃음)

김기춘 : (부산에서) 호남 사람이 많이 보면은 한 17∼18% 보는데….
김영환 부산시장 : 우리가 볼 때에 약 70만으로 보는데, 호남향우회 이야기는 한 80만 된다고 하는데… 13대 대통령선거 때 DJ한테 9.2% 갔습니다…YS가 저기(호남)서 받은 0.5%에 비하면 이는 엄청난…10% 이거는 무조건 고정푭니다. 그리고 박찬종(신정당), 그외 군소정당이3∼5%, 나머지 85% 가지고 그중에 정주영씨가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서 나머지가 YS 표인데, 15%를 가져간다면…은 끝난 것이고 그렇게 가져가면 (YS 지지율이) 60%대로 떨어지니까 (정주영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려야 됩니다.

김기춘 : 도지사가 하겠습니까, 검사장이 하겠습니까, 시장이 하겠습니까? 천상 민간단체에서 야 이번에 제대로 부산놈들본때 못보이면 다…과연 그런 어떤 감정이 우러나게 불 붙여야….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 최근 (검찰이) 현대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지금 국민당으로서는 한풀 꺾였습니다. 기가많이 죽었는데, 전에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조선일보>가 그걸 다 해주는데…… 아직까지도 없는(가난한) 사람들 정주영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지 돈 지 쓰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산일보>하고 <국제신문>이말입니다. 지역신문이 더 단결하면….
김영환 시장 :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놈들이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 하고 있는데….

김기춘의 언론관 : "광고주들 모아 기자놈들 돈 주면서…"

김기춘은 지역감정을 불 붙이는 관권선거를 획책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느꼈는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선전선동에 언론을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기관장과 경제인에게 광고로 언론사에 압력을 넣고, 돈을 주고 기자들을 매수하라고 노골적으로 '채찍과 당근'을 제시했다. 그는 초원복집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도 법조기자 30여 명에게 고급양주를 돌리다가 적발되어 망신을 샀다. 그의 머릿속에 언론은 여전히 회유와 매수의 대상일 뿐이었다.

김기춘 : 지역신문에 <광주일보>다 <무등일보>다 이런 것은 자기네 고장사람 대통령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부산일보>나 <국제신문>이… 신문사 사장이랑 한 번 밥이나 사먹이면서 고향 발전을 위해 너희가 해달라고 해보십시오. 관리들은 하기가 곤란하니까…업계에서 말입니다.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 저희들 바람은 오히려 호남쪽에 유세 가서 (YS가) 두들겨 맞고 오면… 대구-경북도 '에이' 하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어.

김기춘 : 지난 87년 우리 대통령(노태우) 각하, 전주 가서 한번 두들겨 맞고 와서는 (경상도 민심이) 홱 돌았잖아요.

박남수 회장 : 우리 차 안에서… 기억하시는가, 내가 전주하고 이리에서 유세를 보냈다고… 그때 그런 소동이 나서 그렇게 돼버리면 경상도표가 모이는데 그것도 안되고.

김기춘 : 언론에서 좀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 그 말은 못하니까 전부 부도덕한 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해서… 이래 은근히 지역주민을…해줘야 지역언론으로서, 지도 어디 언론이고?… 부산경제가 잘 돼야 <부산일보>, <국제신문>이 잘 되지, 부산 상공업계가 다 망하고 부산이 망하는데 신문인들 온전하겠어요? 그런것을, 이 광고주들 있잖아요, 경제인들 모아가지고 신문사 간부들 밥 사주면서 은근히 한번 좀….

김영환 시장 : 사장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밑에 평기자들이… 국장도 괜찮은데….

우명수 부산시 교육감 : 부산언론은 안 좋게만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김기춘 : 쥐약 주는 사람은… 상공인들과 업계에서 일단 광고주 아니오? 그러니까 좀 모아 가지고 서울을 죽이고 우리를 살려야지, 너희들은 고향 애향심도 없는 놈들이냐? 지금 광주 가봐라. <무등일보>다, <전남일보>다, 김대중이 욕하는 것 있는가. 어쩌든지 자기고장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너희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강 회장, 좀 한번 바쁘더라도… 편집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이런놈들 뭐…(돈) 주면서…돈 걷어 뭐 할라요? 명세서 끊어주면서…(일동 웃음) 이게 운동이라. 지역이 잘돼야 상공인이 잘 되고 그래야 신문도 잘 될 거 아닌가 말이야.

이규삼 지부장 : 그런 부분에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 언론계통에는 제가 제일 강하게 얘기하는데… 같은 세대, 거의 친구들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밑에 기자 얘들 때문에….

김기춘 : 배짱이 있으면 미다시 뽑을 때 편집국이나 편집국차장이 할 텐데, 데스크보는 애들이 괜히 밑에 놈 핑계댄다고. 나는 하려 했는데 애들이 말을 안듣고… 그러나 통솔력이 있는 사람은 합니다. 아, <조선일보>는 과격한 기자 없나? 있지만 전부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니까 합니다. 나가는 논조 보세요.

김기춘의 '피해자 코스프레'와 '자화자찬의 끝판왕'

정상적인 국가라면 김기춘은 초원복집 사건으로 감옥에 가야 했고, 더는 공직을 맡아선 안되었다. 다른 공직자들도 더는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검찰은 초원복집에 모인 기관장들을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만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정홍원-김진태 검사는 그와 동향이었고, 면죄부를 받은 그를 공천한 신한국당 총재 김영삼도 동향이었다. 하동출신 정홍원은 그로부터 20년 뒤에 '유신공주'의 부름을 받아 국무총리가 되었다. 사천 출신 김진태는 유신공주의 노여움을 사서 쫓겨난 채동욱 검찰총장의 후임 총장이 되었다. 92년 선거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살아남은 '법비 김기춘'은 2013년 일흔다섯의 나이에 '윗분의 뜻을 받들어' 다시 등장했다.

그의 지역주의와 언론관은 2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그가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의 권모술수와 파렴치는 더 노회해졌다. 그의 밑에서 민정수석을 지내면서 '長'(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업무일지에 기록한 고(故) 김영한 수석의 비망록이 이를 입증한다.

그의 비망록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할 것이 아니라 ex. 산케이 잊으면 안된다 – 응징해줘야 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국정원을 팀 구성토록"(8월 7일)이라고 돼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밀회설'과 결부시킨 <산케이> 가토 지국장에 대해 응징, 추적, 처단 같은 섬뜩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10월 2일)할 것을 지시한 것도 유사하다. '블랙리스트' 대응은 전형적인 공안적 시각이다.

10년 전 그가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악의 평범성'이 엿보인다. 그는 초원복집 사건에 대해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라면서도, "나는 달밤에 깨끗한 비단옷 입고 가는 아낙네였는데 구정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 뒤집기의 달인다운, 가해자의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다.

오히려 그는 "그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 두 개의 법이 제정되거나 바뀌었다"면서 "하나(제정법)는 도청을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이고, 다른 하나(개정법)는 누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포지티브 선거운동시스템이 된 것"이라고 자신의 공로(?)를 역설했다. 제 한 몸 구정물을 뒤집어쓴 덕분에 국민이 도청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누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뒤집기의 신공'이자 '자화자찬의 끝판왕'이다.

아이히만도 가정에선 자애로운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세상에는 '악법도 법'이라는 사람과 '악법은 법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법 기술자 김기춘은 늘 전자였다. 그러나 법이 자신을 겨냥하자 태연하게 후자로 돌변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같은 선거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처벌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 "당시 내가 경남 분들이 표를 몰아줘야 한다고 얘기는 했지만 호남을 비방한 적은 전혀 없다"고 우겼다. '영남 단결'이지 '호남 차별'은 아니라는 얘기다.

앞에서 밝히지 않은 김기춘-정형근-홍준표의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 3인 모두 처가가 전라도라는 점이다. 지역감정 비판에 대한 3인의 항변도 '내 처가가 전라도인데 내가 전라도를 차별하겠는가'이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차별을 했다.

김대중 집권 후에 경상도 공장을 전라도로 뜯어가 우리(경상도) 자식들이 일자리가 없다,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는 전라도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호남인들의 한풀이 때문에 선거에 졌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들이 했던 말이다. 아이히만도 가정에선 자애로운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다음 편에는 <김기춘의몰락과 '72년 체제'의 종언>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가정보원 대외비 자료와 직원 인터뷰를 토대로 '국정원 흑역사'를 파헤친 <시크릿파일 국정원>(메디치미디어, 2016)의 저자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을 지냈다.



태그:#아이히만, #정형근, #홍준표, #자백,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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