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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의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습니다. ⓒ 조도춘
매년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광양 매화마을이다. 섬진강 줄기 따라 남촌에 이른 봄바람이 불어오면 매화마을은 한바탕 백옥 세상, 꽃눈으로 홍역을 치른다. 봄 그리고 매화, 매화 그리고 봄, 매화꽃이 피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직 봄이 아직 오직 않았다고 생각한다. 겨울 내내 차갑고 시퍼런 섬진강 줄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백운산 자락에 한 송이 두 송이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젠 봄이 왔구나!" 인정한다.
아버지는 오늘(4일)이 섣달 초이레(음력 12월 7일)라고 한다. 2017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눈 지가 엊그제였는데 아직 아버지의 달력은 2016년 12월 7일이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에도 들판에 보리는 파릇파릇하다고 한다. 이때쯤이면 농사철도 끝났고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절이라고 한다.
내일(5일)은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는 절기상 소한이다. 그런데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듯하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자연의 생태계에도 변화가 있는 모양이다. 작년 이맘때쯤 보았던 매화꽃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따스한 날씨 덕분에 매화나무 전지작업을 하자고 한다. 꽃도 보고 나무 가지자르기 작업도 하고 겸사겸사 딱 좋은 날이다.
과연 매화꽃은 피었을까?광양 매화축제로 유명한 섬진마을 모퉁이를 돌아 다사(多士)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이름이 참 재미있다. 훌륭한 선비를 많이 배출한 마을인가? 그래서 한 겨울에 홍매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닌지 싶다. 마을 길가에 차를 주차했다. 반신반의한 맘이 앞선다. 매화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서자 돌담 넘어 홍매화 꽃이 보인다. 작년에 아버지와 함께 개화의 기쁨을 누렸는데 올해도 똑같은 기쁨을 준다.

▲다사마을 홍매화 ⓒ 조도춘

▲광양 다사마을에서 매년 이때 쯤 홍매화가 피어 납니다. ⓒ 조도춘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가 우리를 반겨준다. 분홍빛 홍매화의 향기를 맡은 아버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날씨가 아무리 따뜻하지만 겨울이다. 아침 저녁 찬 기운을 이겨내고 고운 꽃잎을 피워낸 매화가 달리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 게다. 매화나무는 작년과 같지만 가지에서 환하게 터트린 분홍빛 꽃송이는 분명 새로운 만남이다. 그 향기 새롭게 느껴진다. 분홍치마 입고 봄나들이 가는 새색시 같다.

▲홍매화와의 만남에 기뻐하는 우리 아버지 ⓒ 조도춘
다사마을의 홍매화를 뒤로 하고 이웃마을인 소학정(巢鶴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는 분홍빛 매화가 아닌 하얀 매화꽃을 볼 수 있었다.

▲매화나무가 위치한 소학정 마을 입구 ⓒ 조도춘
기대했던 하얀 매화꽃이 피어있었다. 나무 전체로 개화하지 않았지만 나무 위쪽부터 부분부분 꽃봉오리가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비웃듯이 하얀 꽃잎이 눈부시다. 마을 이름처럼 하얀 학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듯하다. 매화나무 곁에는 쉴 수 있는 의자 하나가 있다.
포토존(photo zone)이라는 푯말까지 세워놓았다. 이 매화나무는 벌써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는 모양이다. 마을 어귀에 세운 커다란 소학정(巢鶴亭) 입석 아래 황인옥 작 <매향>이라 시구가 눈에 띈다.

▲하얀 꽃봉우리를 터트린 매화 ⓒ 조도춘

▲차가운 기운을 이겨내고 겨울에 피어난 매화. 예쁘지요! ⓒ 조도춘
섬진강(蟾津江) 기슭에 만월(滿月)이 비추고날리는 봄바람에 베어드는 매향(梅香)은스치는 금향(紟香)인가 선녀(仙女)의 숨결인가누각(樓閣)의 달빛마저 바위 곁에 취하도다
산기슭 백운(白雲)은 가지마다 흐드러져스치는 바람결에 나비인양 춤을 추니향기(香氣)는 매향(梅香)인데 풍경은 백운(白雲)이로다누각(樓閣)에 벗하나 낙수(落水)의 풍경소리인생(人生)을 술잔삼아 매향(梅香)을 마시노라지구 온난화로 계절을 잠깐 잊은 채 겨울에 피어버린 개나리꽃, 철쭉꽃 등 봄꽃들이 있지만 이 곳 홍매화와 백매화는 계절과 무관하게 춘심을 이기지 못하고 겨울에 피는 꽃인듯하다. 그러나 겨울에 피는 동백꽃과 다르게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