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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박성원의 소설 <하루>의 한 구절이다. 그래서일까. 전시 사진을 찍은 고경태는 저서 <1968년 2월 12일>의 머리말에서 '그 날 퐁니·퐁넛 사람들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세상을 모두 알 수 있을까?' 질문한 뒤 '그저 그날 하루를 통해 1968년의 세계와 그 너머를 어슴푸레하게나마 보려고 했다'고 밝힌다.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과 학살의 희생자, 유족·친지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려는 그의 열망의 결과물이다.

다음 달 1일까지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
 다음 달 1일까지 ‘고경태 기록전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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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나무가 본 그 날을 기록하다

베트남전 이전과 전쟁 그 이후를 기록한 고경태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를 찾았다. 나무문을 밀고 전시장에 들어서니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 이파리 무성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은 나무 한 그루가 관람객을 맞는다. 사진 속 나무 이름은 야유나무.

전시 리플릿은 야유나무를 베트남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우리의 당산나무 같다고 설명한다. 야유나무 옆에는 마을 사당이 있고 그 안에 세워진 비석에는 죽은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빗돌에 이름이 새겨진 이들은 대부분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야유나무가 그 자리에 오롯이 서서 바라본 그 날, 1968년 2월 12일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을 처음으로 맞는 사진은 그 자리에서 마을을 기억하고 있는 야유나무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을 처음으로 맞는 사진은 그 자리에서 마을을 기억하고 있는 야유나무다.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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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48년 전 벌어진 사건 현장을 촬영한 미군 해병대 본(J.Vaughn) 상병의 사진으로부터 출발했다.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부대가 다낭 인근 퐁니·퐁넛 마을로 진입한 뒤 74명이 죽고 17명만 살아남았다. 오후에 미군이 마을에 들어왔고 한 병사가 현장 사진을 찍었다.

공터에 널린 10여 구의 주검, 쓰러져 신음하는 여성과 아이들을 담은 스무 장의 사진은 '타 버린 집들' '가슴이 잘린 채 살아있는 여자' 같은 모호한 설명과 함께 묻혀 있었다.

사진들은 2000년 6월 1일 기밀기한이 해제되었고 당시 <한겨레21> 기자이던 고경태에 의해 처음 국내에 보도됐다. 이후 그는 6차례 퐁니·퐁넛을 찾아 주검들의 이름을 확인했고, 살아남은 가족·친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부상당한 16세 소녀 쩐티드억의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본 상병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 중의 하나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부상당한 16세 소녀 쩐티드억의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본 상병은 “여성들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 중의 하나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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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개의 목소리

전시장엔 그가 만난 열일곱 명의 주민 사진과 이야기가 걸려 있다. 사진 아래 기록된 저마다의 사연은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돼 있다. 무표정한 표정에 슬픔이 묻어있는 응우옌싸(1938~2006)는 말한다.

"나는 남베트남 민병대원입니다. 나는 한국 군대의 동맹군 병사입니다…불타는 마을을 목격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형수와 조카들을 구하려고 했어요. 미군 장교가 말했습니다. 한국 군인들이 흥분했다고, 당신도 위험하다고. 불길이 꺼진 뒤 마을에서 부상당한 조카 2명을 찾아내 헬기로 보냈습니다. 나머지 조카들과 형수는 처참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어요. 나는 베트콩을 반대하는 남베트남 군인이에요. 나는 전의를 상실했어요. 1년 뒤 정찰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았어요. 오른쪽 발목을 잘라냈습니다."

크게 프린트된 사진 속 눈동자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기록된 목소리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젖가슴과 왼쪽 팔이 도려내진 열아홉 살 소녀 응우옌티탄(1949~1968)의 시신 사진, 아들을 잃은 쩐티드억(1927~) 할머니의 쓸쓸한 표정을 여덟 줄로 정리된 목소리와 함께 읽으면 먹먹함을 넘어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전쟁의 고통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해 참혹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전쟁의 희생자'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고통은 이야기로 기록되고 증언되면서 그들이 겪은 비극은 역사의 장면으로 부각되고 다시 베트남전은 새로운 역사로 기억된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다.

전시 첫날인 지난 9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전시 첫날인 지난 9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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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희생자 열일곱 명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에는 희생자 열일곱 명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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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티탄의 생전 모습(가운데)과 그의 어머니 팜티깜(오른쪽 위), 그의 동생 응우옌 티엔칸(오른쪽 아래)의 사진. 왼쪽 아래는 응우옌티탄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하는 생존자 쩐티투언의 사진.
 응우옌티탄의 생전 모습(가운데)과 그의 어머니 팜티깜(오른쪽 위), 그의 동생 응우옌 티엔칸(오른쪽 아래)의 사진. 왼쪽 아래는 응우옌티탄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하는 생존자 쩐티투언의 사진.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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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쩐티드억은 말한다. “나는 귀가 어두워요. 눈도 침침해요.... 그날 나도 총을 맞고 쓰러졌어요. 하늘이 도와줘 살았지요. 남들은 나보고 치매라지만 건강해요. 채소도 심고 닭도 돌보며 살거든요.”
 아들을 잃은 쩐티드억은 말한다. “나는 귀가 어두워요. 눈도 침침해요.... 그날 나도 총을 맞고 쓰러졌어요. 하늘이 도와줘 살았지요. 남들은 나보고 치매라지만 건강해요. 채소도 심고 닭도 돌보며 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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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레딘먼(1967~)은 말한다. “엄마 덕분이에요.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에도 날 지켜주셨어요. 난 그때 갓난아기였어요. 엄마 품에서 젖을 먹고 잠이 들었죠.... 우리 엄마한테 왜 총을 겨누셨나요? 엄마는 내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고요.”
 어머니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레딘먼(1967~)은 말한다. “엄마 덕분이에요.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에도 날 지켜주셨어요. 난 그때 갓난아기였어요. 엄마 품에서 젖을 먹고 잠이 들었죠.... 우리 엄마한테 왜 총을 겨누셨나요? 엄마는 내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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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개조한 전시장은 'ㅁ'자 구조로 한 바퀴 돌아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작은 규모지만 사진 속 인물들과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퐁니·퐁넛 마을 주민들은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역사 기록은 삶을 대하는 태도

전시장 한 편에는 퐁니·퐁넛의 지난 역사를 기록해온 그간의 과정들이 전시되어 있다. 퐁니·퐁넛 사건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보도한 2000년 11월 23일 <한겨레21>의 표지와 본문을 읽을 수 있다.

당시 퐁니·퐁넛에 들어갔던 해병대 사병이 기사를 읽고 보낸 엽서가 눈길을 끈다. '양민학살에 대한 기사를 읽고 32년 전의 생각이 생생히 떠오른다'며 '언젠가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 현지를 찾은 기자가 취재 후에 남긴 기록들이 펼쳐져 있다. 빼곡한 메모로 가득한 여러 권의 노트와 카메라, 필름에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제대로 기록해야겠다는 기자의 사명감이 전해진다. 기자는 말 그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자'인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보도한 <한겨레21>과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엽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보도한 <한겨레21>과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엽서.
ⓒ 유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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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기자가 지금껏 6차례 퐁니·퐁넛을 찾으며 남긴 기록.
 고경태 기자가 지금껏 6차례 퐁니·퐁넛을 찾으며 남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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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 한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과 그에 대한 기억을 수집해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수십 명의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기억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회를 사진전이 아니라 '기록전'이라고 제목 붙인 것처럼 기록은 우리에게 역사와 기억에 대해, 타인의 고통에 어떤 자세를 가질지 묻는다.

1968년 2월 12일 하루에 일어난 사건과 그로 인한 퐁니·퐁넛 마을 사람들의 변화된 삶을 바라본 전시를 보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할지 고민하는 이유다. 기록전은 다음 달 1일까지 무료로 서울 안국동 아트링크에서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와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 (http://mediahub.seoul.go.kr/)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고경태 기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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