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그리고 참여연대가 '나는 자영업자다' 공모를 띄웠습니다. 자영업자의 절절한 속사정,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2016년 7월 9일 새벽 6시께, 37세 '돈가스 삼촌'이 생을 마감했다.
 2016년 7월 9일 새벽 6시께, 37세 '돈가스 삼촌'이 생을 마감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난 7월 9일 새벽 6시께, 서울 삼육대병원의 한 병동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아무개씨가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이 시대 자영업자들의 애환이 녹아들어 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간암이었다. 평소 간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그였지만, 군대도 다녀왔고, 전역 이후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을 만큼 건강했다. 아니, 건강해 보였다. 그가 간암선고를 받은 때는 5월 말. 이미 전이가 진행돼 수술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생이 한 달 정도 남았고, 그 전에 죽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은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가게를 내놓는 일이었다.

돈가스에 대한 열정... 근데 쌓이는 건 '빚'

포장마차와 알바를 병행하면서 모은 돈으로 그는 돈가스 가게를 차렸다.
 포장마차와 알바를 병행하면서 모은 돈으로 그는 돈가스 가게를 차렸다.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고등학교 졸업 후 지방대를 다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판단 아래 학교를 자퇴하고 자영업의 길에 뛰어들었던 이씨. 그는 20대 내내 포장마차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장사의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30대 들어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대출을 합해 가게를 차렸다. 야구장 근처에 닭강정 가게를 내면서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야구시즌에 얽매인 장사가 싫어 가게를 옮기고 돈가스 가게를 열었다.

돈가스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돈가스로 끝났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돈가스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친구들이 본인의 아이들에게 "돈가스 삼촌 왔다" 하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사회·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화두를 던져도 끝은 결국 돈가스였다.

그는 맛있는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실험을 진행했다. 특제 돈가스 소스를 개발했고, 거기에 고추장 소스를 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열정 덕분에 인근 가게들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깔끔하다 못해 예민한 성격 탓에 항상 반짝반짝 빛나는 가게를 보고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 수완이 늘고 손님이 늘어도 돈은 늘 부족했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대출금 상환 그리고 결혼 후 얻은 전셋집을 마련하는 데 빌린 돈을 갚아나가는 것, 거기에 세살배기 아이 육아에 대한 부담 등 그가 빚을 청산할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쉴 수 없었고, 아파선 안 됐다. 몸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검진을 받을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젊으니까'라는 마음 속 변명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병이 있을까 두려웠다.

맛집 옆에 있어서 호황... 그러던 중 마주한 청천벽력

그러던 중 호재가 터졌다. 케이블TV의 인기 음식 프로그램에 바로 옆 가게가 소개된 것. 갑자기 손님이 2배 이상 늘었다. 옆 가게에 늘어선 긴 줄로 인해 이씨의 가게를 찾는 손님이 늘어났고, 그러면서 옆집보다 더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옆 가게의 손님은 점차 줄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이씨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계속 늘었다. 몇 개월 사이 그의 가게를 소개하는 블로그 포스팅이 수십 개 이상 생겨났다.

이씨의 아내인 박아무개(37)씨의 말에 따르면, 평소보다 수입이 3배 이상 늘어서 그 많던 대출금을 수개월 내에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을 정도였단다. 그렇게 8개월간 거의 하루도 쉬지 못했지만 돈 버는 재미에 신이 나 장사를 하던 이씨는 오랜만에 가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급체해 병원에 가게 된다. 그리고 십이지장 궤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고, 잠시 가게를 닫고 요양을 하기로 했다.

요양 동안에도 그는 어서 나아서 가게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장사가 한창 잘되고 있었는데 가게 문을 닫고 누워 있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조금 쉬고 건강을 되찾아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2주가 지나도록 병은 더 악화되기만 했다. 그가 병원을 다시 찾은 것은 화가 나서 였다. 도무지 낫질 않는 몸이 야속하고 효과없는 약을 처방한 병원도 야속했다. 그러다 좀 더 큰 병원에 가보자는 가족들의 권유로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간암 말기. 앞서 받은 진단은 명백한 오진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들 경황도 시간도 없었다.

"아빠보다 멋지게 살아라... 장사는 하지 말고"

이아무개씨가 세 살배기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이아무개씨가 세 살배기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가족들은 백방으로 방도를 찾았지만 이미 온몸으로 퍼진 암세포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진단 결과, 암이 무려 10년 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나 아주 천천히 진행돼 수년간 거의 자라지 않았지만 장사가 잘되기 시작할 무렵 피로가 쌓이면서 급속도로 퍼진 것으로 밝혀졌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일만 했나 하는 후회도 소용없었다. 그는 세상을 뜨기 5일 전까지만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그가 그 시기에 남긴 말은 자신이 떠나고 나면 남겨질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는 세 살배기 아들에게 "네가 아빠보다 멋지게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장사하지 않고"라는 말을 남기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정신이 아직 맑았던 때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초등학교 3학년 때, 누나랑 엄마랑 살 때, 그때 같이 야구할 때…"라고 답했다. 그 말은 곁에서 간호하던 그의 작은 누나를 눈물짓게 했다.

그리고 사망하기 3일 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자 그는 그때 야구하던 소년으로 돌아가서 소리쳤다. "1루로 가! 누나, 쟤 아웃됐잖아! 빨리 나가라고 해! 계속 서 있잖아!" 그 후 세 시간 정도 그는 상상 속 야구를 멈추지 않았고, 점차 힘을 잃어갔다.

죽어도 편하게 눈 못 감은 자영업자

장사하는 사람은 아파도 안 되고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다. 잘 되면 돈 버는 재미에, 안 되면 빚 걱정에 죽어나는지도 모른다.
 장사하는 사람은 아파도 안 되고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다. 잘 되면 돈 버는 재미에, 안 되면 빚 걱정에 죽어나는지도 모른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제 말을 할 힘조차 남지 않았던 사망 하루 전, 눈망울에는 이미 초점이 없어졌다. 그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아주 조금씩 입을 움직이며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잘 부탁한다는 당부 정도로 여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숨을 멈추고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의 모친이 계속 눈꺼풀을 내려줬으나 이내 다시 들렸다. 그는 그렇게 편안히 눈을 감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가 남긴 돈가스 레시피, 그리고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를 인생 내내 괴롭혀 온 '빚'만이 남았다. 자신이 미리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그나마 먹고 살 수 있게 됐다며 씁쓸하게 웃던 이씨가 그 돈의 많은 부분이 빚 탕감에 쓰인다는 걸 알았다면 웃을 수 있었을까. 건강을 챙기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야 할 만큼 자신을 내던지지 않으면 자리조차 잡기 힘든 자영업자의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장사하는 사람은 아파도 안 되고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으며, 장사가 잘 되면 돈 버는 재미에, 잘 안 되면 빚 걱정에 제 몸 죽어나는지 모른다"던 그의 푸념에서 이 시대 자영업자들의 절망감을 봤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자영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자영업자, #간암, #돈가스
댓글3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인터넷 언론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사건에 함구하고 오보를 일삼는 주류언론을 보고 기자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로 찾아가는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으며 취재를 위한 기반을 스스로 마련 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정치, 사회를 접목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