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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20 16:34최종 업데이트 16.07.20 16:34

페미니스트가 징병제 하자고 그랬나?

[주장] 제대로 된 남성운동을 하고 싶다면 변화를 모색해야

 며칠 전 한국일보에 게재된 남권운동 논란 기사.
며칠 전 한국일보에 게재된 남권운동 논란 기사. ⓒ 한국일보 갈무리

얼마 전 한국일보에 게재된 기사 '"왜 여성만 우대" 꿈틀대는 남권 운동 논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고 떠올랐던 것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참 많이 변했다'라는 생각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나는 '남성으로서 나의 사회적 위치'를 고민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남성'으로서 내가 사회적 제약을 받거나 일상에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어린 시절, 결혼을 해서 사직서를 쓴다는 사촌 누나를 보며 '결혼을 했는데 회사를 왜 그만두지?'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또 '너는 남자니까 그런 옷은 입으면 안되고 어떤 것은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충고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남성이라는 성별에 기반을 둔 채 나를 돌아보고 사회를 바라볼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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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하나의 성별을 가진 인간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고 '운동'까지 펼치겠다는 남자들이 등장했다. 내가 남성임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고, 당연히 젠더적 차원에서 아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던 때를 생각한다면 작금의 변화는 어떤 측면에선 유의미하다(하지만 이 유의미함이 운동에서 내재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 운동이 정말 '운동'으로서 기능하고, 나아가 긍정적인 변화를 성취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면, 나의 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나는 기사에 등장한 남권 운동은 '운동'도 아니며,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권운동',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이 운동은 전혀 정확하지 않은 인식과 분석에서 출발하고 있다. 가령 기사에서 남성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성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한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가령 이들이 사례로 드는 '여성 할당제'를 살펴보자.

이 정책은 누군가가 남성이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같은 고위직 공무원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말하자면 젠더에 근거해 남성들을 특정 직위에서 배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 할당제는 충분히 유능한 여성들이 많음에도,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그나마도 이 제도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해, 아직도 한국은 여성 국회의원 17%에 불과하며 기업 고위직 여성 비율은 11%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수치가 '남성으로서 고위직에서 차별받는 현실'을 드러내는가.

둘째는 엉뚱한 운동 대상의 설정이다. 가령 기사에서 양성평등연대의 김동근 대표는 남성 역차별의 원인으로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권한이 과거보다 급격히 상승'한 것을 든다. 그리고 매우 식상하게도,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이유로 '극단적 페미니즘'을 지목한다. 이들은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가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국가에 바친 남성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남성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국가에 바친 것'이 과연 '극단적 페미니즘' 때문인가. 이와 관련하여 문승숙은 책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에서 흥미로운 분석을 펼친다.

저자는 본격적인 '징병제' 도입의 배경으로 해방 후 한국이 한국 전쟁과 분단을 겪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가 남한 정부의 안정성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국가 모델'을 채택한 것을 언급한다. 즉 첨예한 대치의 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군사주의와 근대화의 과정을 통합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징집 대상이 아니었냐고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답은 성별화된 시민성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에게 공적 공간에 등장하고, 노동을 통해 생산을 하는 성별은 '남성'이었다. 이들에게 여성은 사적 공간에서 재생산에 힘쓰는, 쉽게 말하면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남성들을 보조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성별에 따라 다른 시민성이 부여된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여성은 애초에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여성은 집밖에서 노동을 할 필요도, 공적 공간에서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는 존재였다.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징집은 이 같은 차별적인 젠더 의식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권한이 과거보다 급격히 상승하면서 오히려 20~30대 남성들은 군대와 결혼비용 마련 등의 문제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이 같은 주장은 징병제가 도입된 맥락과 역사를 모두 무시한 채, 마치 여성 권리의 신장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양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성차별이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여성들이 '남자들의 일'이라 여겨지는 곳에 조금씩 진출하는 동안 달라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다. 바로 병역을 여전히 '정상'적인 남성 시민의 조건이자 의무로 규정한 국가다.

때문에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국가에 고스란히 바친'게 불만이라면, 그러지 말자고 국가에 따지면 될 일이다. 아주 쉽게 이야기 해보겠다. 당신들이 지겹도록 호명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징병제 하자고 그랬나?

'남권운동'은 운동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말하는 '남권 운동'이 운동조차도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사전적으로 운동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힘쓰는 일이나 활동'을 의미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운동은 '이동(movement)'을 의미한다. 특히나 당사자 운동의 경우, 이 이동의 의미가 더욱 강해진다.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위치와 조건으로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것이 운동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다. 어떤 운동을 하는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똑같다면, 위치의 전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인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위치 전환은 결국 권력의 재배치를 의미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의 개편을 의미한다. 때문에 많은 사회 운동가들이 성찰과 배우기를 계속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남권 운동에는 이 같은 운동의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남성으로서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주체로 성장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이들은 사회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이 촉구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회귀다. 페미니즘이 등장하기 전에 남자들은 잘 대우받고 살았는데, 왜 여자들만 대우해서 남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냐는 식이다.

결국 이 같은 목소리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적 조치들을 폐기하거나 극단적인 성별 권력 불균등을 다시 유지하자는 쪽으로 가 닿을 수밖에 없다. 다시 나빴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움직임과 변화가 있는가. 이들은 그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부당한 배당을 늘려달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남권운동'이 아닌 '남성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

여성운동은 여성들이 '더 이상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남성중심사회의 부당한 차별 아래서, 여성운동은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회적 위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에 기반을 두고 기성의 것과는 다른 이론적인 틀을 구축했고,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나아가 그 변화를 사회적으로 관철하고자 했다. 이것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이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다. 여성주의는 지금과는 다른 삶과 사회를 꿈꾸고 있고, 그 새로운 지점을 향해 지금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기성 여성운동과 이론에 대한 평가와 성찰 또한 꾸준하다.

지금의 '남성운동'이 정말 운동이 되고 싶다면, 정확히 같은 일을 하면 된다. 남성으로서 자신의 삶과 위치를 고민하고, 지배적인 남성성을 해체함과 동시에 탈피하며 대안적인 남성성을 구상하면 된다. 책 '남성성/들'에서 R.W.코넬은 특정 형태의 남성성(주로 기성의 지배적 남성성)에 기반을 두고 있고 남성 집단의 실질적 이해관계를 탈피하지 못한 남성운동의 실패를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대신 저자는 남성성들의 새로운 배치 형태와 변형을 가져올 새로운 정치를 주문한다. 하지만 지금 등장하는 '남권운동'은 이런 형태의 운동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암울하다.


#여성주의#남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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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살고 있는 50대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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