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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어언 3개월이 지나간다. 이렇게 지낼 줄은 나도 몰랐다. 결혼하면서 처가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여차저차 이유를 댔지만 사실 집을 얻어 사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출 안 받고 신혼을 시작하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 딴에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아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대가족이라 하기에는 뭣하지만, 엄연히 두 가정이 모여 사는 것이니 중가족 정도는 될 거다. 중가족 정도라도, 장인 장모 부부나 우리 부부나 방에 꼭 박혀 생활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고 해도, 은근히 부딪히는 것들이 많다. 속으로만 삭히고 있는 것들도 많을 거다. 그래도 이정도면 남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편이다. 나름 괜찮다.

다만, 장인 장모의 진짜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게 조금 걸린다. 우리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하시진 않을지. 편할 리는 없을 테지만, 너무 불편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다. 이제 나가서 살면 또 다른 신혼 생활이 시작될 거라 가슴 벅찬다. 다른 가족들은 어떨까? 대가족이 북적북적이면 불편하기도 재밌기도 할 것 같다. '오늘만은 무사히'를 외치는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예담)의 류타로, 하루코 부부의 대가족을 들여다보자.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표지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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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의 류타로, 66세의 하루코 부부는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린 92세 장모님 다케를 모시며, 30세 히키코모리 장남 가쓰로와 함께 살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히키코모리 아들은 좀 그렇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존재감이 없던 아이니까. 신경이 쓰이지만 속 썩을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노후가 아닌가, 싶은 부부.

그런데 순식간에 함께 사는 가족이 두 배로 늘어났다. 첫째 딸 가족과 둘째 딸이 들어오게 된 거다. 자신이 운영하던 치과 의원을 물려줄 사위를 바랐던 류타로의 기대와 다르게 증권맨과 결혼한 첫째 딸 이쓰코. 사업을 시작해 잘 나간다 싶더니, 급기야 빌려간 돈까지 다 말아먹고 사업에 실패한다. 그렇게 딸이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까지 대동한 채 집에 들어와 살겠다는 것이다.

둘째 딸 도모에는 더욱 가관이다. 잘 사는 줄 알았더니, 이혼한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해서 나타나 집에 들어오겠다고 한다.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걱정 없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거기에 아이 아빠가 전 남편이 아니라 열네 살 연하의 미래가 불투명한 신인 개그맨이라니.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막장 드라마의 시초 같은 이 스토리는, 그러나 이 시대에서 아주 아주 흔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극심한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회병리에 희생되어, 경제심리사회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회가 이들을 지켜줄 수 없으니 비빌 언덕이 그나마 가족인 것이다. 자기 앞가림하기도 빠듯한 대부분의 가족들에게는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도태되면 곧 나락이다.

가족을 그림으로써 맞는 소설적 재미, 그리고 문제점

류타로, 하루코 부부는 괜찮게 사는 편이다. 그래서 돌아온 탕아들을 포용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할 수 있었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이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아쉬운 부분도 바로 그것인데, 사회에서 도태되어 돌아오려는 이들의 상황은 보편적인 게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돌아오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과연 보편적이냐, 하는 점이다. 절대 그렇지 않을 거다.

약간의 아쉬운 부분을 뒤로 하고,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거의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 힘의 대부분은 작가 특유의 문체에서 비롯되었는데, 스토리나 그 안의 사건 사고들은 크게 별다를 게 없어 더욱 그러했다. 그러며 여러 생각 거리들을 던져 놓으니 대단하다고 할밖에.

책은 편편이 가족들 각자의 시선에서 이루어졌는데, 확실한 결말을 내지 않고 마지막에서 대단원으로 정리한 것도 상당히 괜찮았다. 그럼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더욱 고찰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사회가 할 일을 가족에게 떠 맡기고 있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을 가족의 의미를 드높이며 무마시키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아니면 사회를 비판하며 오히려 가족에겐 힘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건지. 여하튼 씁쓸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예담 펴냄, 2016년 6월)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예담(2016)


태그:#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대가족, #사회, #도태, #재미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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