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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이야기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제주로 이사 갔어야 했다'에서 이어집니다.)

아내의 마음속에 제주 이주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하니 두 번째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매뉴얼에 맞춰 준비하던 평범한 결혼식 계획을 폐기하고 그 무대를 제주로 옮기는 것이었다.

당장 제주로 이주를 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내 결혼식 사진 배경이 OO웨딩홀 A동 1호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결혼식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거리는 것도 정중히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장소는 제주여야만 했다.

응원과 질투가 섞인 제주 결혼식

 지금에야 연예인들의 작은 결혼식 덕에 제주에서의 결혼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하얏트 채플웨딩홀에서의 결혼식은 꽤나 신선한 도전이었다.
지금에야 연예인들의 작은 결혼식 덕에 제주에서의 결혼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하얏트 채플웨딩홀에서의 결혼식은 꽤나 신선한 도전이었다. ⓒ 이영섭

제주 하얏트 호텔 채플웨딩홀에 작은 결혼식 일정을 최종 확정한 뒤 뒤늦은 프러포즈를 하던 날, 아내는 그동안 병원을 오가며 쌓인 두려움과 긴장이 그제야 풀렸는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함께 청첩장을 제작하고, 결혼식에 초대할 가족들과 소수의 지인들을 위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마침내 모두에게 결혼식 계획을 알리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왔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말을 남겨주신 분들도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당시 직장 상사 중 한 분인데, 윗선으로부터의 받는 실적 압박 때문에 세상 모든 사물을 "내 실적에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곤 했다. 그분은 내 결혼식 소식에 "일도 바쁜데 결혼식을 굳이 해야 하나? 제주도? 와이프가 제주도 사람이야? 쯧, 휴가 오래 가겠네"라는 강렬한 말씀을 남기셨다.

그다음 주인공은 일가친척 중 한 분이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는데, 결혼식 초대를 하는 아내에게 축하한다는 말 대신 "너희 로또 맞았니? 요즘 돈 많이 쓰네"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신 바 있다.

이렇게 어떤 분들의 축하와, 어떤 분들의 시기를 받으며 우리는 그해 12월 조금 늦은 결혼식을 올렸고 한참 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제주에서 집 구할 때... 바다 방향 피해야 하는 이유

 따가운 햇살이 온 몸을 달구는 제주의 여름, 우리는 바닷가가 아닌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를 찾는다. 한 여름에도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계곡물을 즐길 수 있다.
따가운 햇살이 온 몸을 달구는 제주의 여름, 우리는 바닷가가 아닌 돈내코 계곡의 원앙폭포를 찾는다. 한 여름에도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계곡물을 즐길 수 있다. ⓒ 이영섭

난생처음 경험한 제주의 겨울은 예상외로 춥고 혹독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성판악에서 출발해 관음사로 내려오던 날, 크리스마스트리의 원류가 한라산 구상나무(Abies koreana)임을 처음 알게 됐고, 함덕 바다를 바라보는 숙소에서 경험한 겨울바람의 혹독함은 제주 집을 고를 때 바다 방향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다.

흰 눈과 억새가 어우러진 산굼부리에서의 커피 한 잔은 내 인생에 최고의 향기로 남아있으며, 모든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날, 살갗을 얼리는 차가운 공기에 기겁하며 "제주도 춥긴 하지만 서울 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긴 호흡으로 제주 이주를 준비하다

 산굼부리의 진면목은 가을이 아닌 겨울, 그것도 막 초입에 다다른 12월에 볼 수 있다. 흰 눈과 억새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산굼부리의 진면목은 가을이 아닌 겨울, 그것도 막 초입에 다다른 12월에 볼 수 있다. 흰 눈과 억새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 이영섭

결혼식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후,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 긴 호흡으로 제주 이주를 준비하기로 합의했다. 용감한 사람들처럼 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어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떠나는 건 우리 성격상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버렸기에 신중하고 긴 호흡이 필요했던 것이다.

먼저 모든 여행에 드는 예산과 시간을 제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제주에 머무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집을 보러 다니는 데 사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에서 집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한 셈이다.

 제주에 집을 보러 갈 때마다 들렀던 구좌읍 어느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제주 구옥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리모델링 솜씨에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제주에 집을 보러 갈 때마다 들렀던 구좌읍 어느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제주 구옥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리모델링 솜씨에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 이영섭

제주 부동산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익히 아시겠지만 육지와 달리 제주의 매물정보는 일반적인 부동산 누리집에 올라오지 않는다. 오로지 <오일장신문>과 <교차로>, 이 두 곳에 제주 부동산 전체 매물이 집중되고 있다.

다행히도 이 두 생활정보지는 온라인 서비스를 지원하며 심지어 '신문 바로보기' 기능까지 지원한다. 서울에서도 제주 현지와 동일한 매물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집 사진과 가격, 대략적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번지수는 기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들의 집 찾기 모험은 시작됐다.

2012년 겨울의 이야기다.


#제주이주#제주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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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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