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2억 명을 넘었고 1인당 영화 연간 평균 관람횟수도 4회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영화관람은 90년대 특별한 날에 찾는 일종의 이벤트성 문화생활에서 2000년대 들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찾는, 그야말로 일상이 되었다.

우리 영화 산업은 급격하게 성장해 대외적으로도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영화 홍보를 위해 일본을 다녀오면서 잠깐 서울에 들러서 눈도장만 찍고 가던 시대는 지났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시장이 됐고, 해외 영화의 아시아 프로모션을 한국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국내 영화 시장의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 영화 산업과 작품을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린 것은 바로 국제영화제다. 부산, 전주, 광주를 비롯 판타지 영화제를 개최하는 부천까지, 도시마다 규모와 장르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에서 열리는 행사 중 단연 손에 꼽히는 영화제였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영화를 상영했고, 수많은 국내외 스타와 감독들이 참여하는 레드카펫 행사는 또 다른 볼거리였다. 거기에 항구 도시 부산이 갖는 풍경과 먹거리는 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최근 부산의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얼마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가 분명히 나뉘었는데, 그 판단 기준이 '정치'라는 것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그 정치는 아직도 부산을 '자유와 권력', '부산과 서울'의 프레임으로 분리시켜 끝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한 편이 있다. 바로 김진혁 교수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이다.

해직 언론인들의 이야기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YTN, MBC를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YTN, MBC를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전주국제영화제


이 영화의 이야기는 오늘날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EBS <지식채널e>를 기획하고 연출한 김진혁 피디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진혁 교수가 됐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그가 지난 2년 동안 직접 기록한 해직언론인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진혁 교수를 만나면, 요즘 찍고 있다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는 걱정이 있어 보였다.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도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직언론인 이야기에 관심과 기대를 가질 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2년 전, 이경호 전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과 언론인들의 권유로 시작된 영화는 오는 28일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부분에 초청돼 상영을 앞두고 있다. 김진혁 교수는 지난해 10월 해직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영화 일부를 공개했는데 상영하는 동안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직언론인들의 눈물, 그 눈물의 의미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YTN의 노종면 기자와 언론인들

▲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YTN의 노종면 기자와 언론인들 ⓒ 전주국제영화제


"권력자에게 능히 손바닥 재떨이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저희들 손에 묻은 재를 주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로 닦아내는 법이다." - <노종면의 돌파> 본문 중에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YTN 구본홍 사장은 자신의 취임에 반대한 노종면 당시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했다. YTN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을 만든 노종면 기자와 수많은 해직언론인은 포기하지 않고 싸웠고, 결국 대법원으로부터 일부 기자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영하, 강지웅,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등 MBC 언론인들은 2012년 170일 파업 과정에서 해고됐지만, 법원에서는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이들은 MBC를 떠나 <뉴스타파> 등 대안 언론을 비롯 다양한 현장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목소리는 예전보다 크고 높아졌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예전만큼 못한 것이 사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도 수많은 시청자들은 지상파, 종편의 뉴스와 프로그램을 더 가깝게 보고, 듣기 때문이다.

김진혁 교수는 카메라 앵글 속 조승호 기자의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고 했다.

"지난 6년을 포기할지언정 내 기자생활 22년을 절대 스스로 부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조승호 YTN 해직기자)

해직됐어도, 그들은 여전히 언론인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김진혁 교수가 해직언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동안 매일같이 작품의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졌다. 세월호, 국정원, 언론 투쟁, 정치 비리... 뉴스 앵커들은 이 굵직한 사건들에 입을 닫았고, 엉뚱한 가십거리만 쏟아냈다. 그 와중에 MBC는 젊은 예능 피디 권성민에게는 해고를, 제 목소리를 내는 제작진들에게는 타부서 발령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만든 김진혁 교수 또한 해직언론인에 가깝다. 그가 만든 5분 분량의 <지식채널e>는 EBS라는 방송국의 이미지를 바꿔놓을 만큼 최고 히트상품이 됐다. 하지만 EBS는 비상식적인 정치, 사회 문제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던 그를 압박했고, 그는 더이상 EBS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의 감독인 김진혁 한예종 교수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의 감독인 김진혁 한예종 교수 ⓒ 김형규


불통의 시대에 김진혁 PD는 스스로 EBS를 나왔고, 그렇게 그는 김진혁 교수, 영화감독이 됐다. 그의 영화가 과연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을까? 서병수 부산시장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인은 부산시민을 비롯한 관객들이고, 시장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제는 영화를 보는 곳이지 눈치를 보는 곳이 결코 아니다. 영화가 정치를 다룬다고, 어찌 정치가 영화를 다룰 수 있겠나.

나는 기대와 걱정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마다, 늘 김진혁 교수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라면서도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패할 거라고, 가능성이 작다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해 봐야지 않겠어?"

영화에는 김진혁 교수의 이런 오랜 생각이 차곡 하게 담겨있다.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에 세상이 주목하고 기대해야 하는 이유다. 분명한 건 이 영화에도, 해직언론인들에게도 세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정보훈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hstyle84)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진혁 교수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전주국제영화제 지식채널E 예능작가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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