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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6년 새해가 다가왔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새해를 맞아 '한국사회, 이것만은 바꾸자' 류의 기사를 생산하곤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시선을 당신에게 맞추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새해, '당신의 새해 바람'은 무엇인가요. [편집자말]

결국 이 노래를 듣는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남성들이 군대에 가기 전 <이등병의 편지>를 듣는 것처럼 서른을 앞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듣는다는 그 노래. 김광석 <서른 즈음에>.

나는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서른이 돼도 가슴 속에 많은 것을 채워가면 된다 생각했고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서른에 느낄 허무함과 쓸쓸함이 두려워서 이 노래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 노래를 매일 듣고 있다. 그리고 가슴에 콕콕 박히는 가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스물아홉의 1년을 보냈고, 결국 하루가 지나면 서른이 된다.

스무 살 그리고 서른 살

스무 살, 내가 본 세상은 장밋빛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단지 나이 하나만으로도 가능성을 인정받고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 기회는 당연히 주어지는 선물 같았고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달콤한 것이었다.

그때는 '서른 살이 나에게 언제나 오려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 나는 서른이 되면 모든 게 잘 돼 있을 줄 알았나 보다. 좋은 집에 살면서 멋진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하고, 무엇보다 아무 흔들림 없이 안정된 길 위에 서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보장된 미래를 향해 걸으며 가는 곳마다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하면서 그런 날들이 이어질 줄 알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조급하고 자만이 가득한 꿈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렇게 스무 살에 꿈꾸었던 10년 후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은 차이가 크다. 이사는 여러 번 했지만 집은 없고, 결혼도 아직이다. 직업을 몇 번 바꿨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끔 스무 살과 서른 살의 꿈과 현실의 간극을 느낄 때면 가슴 속에 찬바람이 분다. '좀 더 노력할걸'이라는 후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앞으로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맞닥뜨리게 될 일에 대한 걱정은 모든 '서른 즈음의 청년들'이 느끼는 것이다.

'설운 서른'

지난 12월 16일 서울시내 한 대학교 내 채용 정보 게시판에 관련 공고문이 붙어 있는 모습.
 지난 12월 16일 서울시내 한 대학교 내 채용 정보 게시판에 관련 공고문이 붙어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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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가진 의미는 상당하다. 10진법으로 우리의 삶은 10년 단위로 싹둑 재단되고 그때마다 평가되며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뭔가를 이루고 시작하길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분위기다. 특히 서른 살은 성인기를 처음 만난 20대를 지나온 시기라 사회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이뤄냈는지 증명하길 요구받는다.

서른이란 나이는 취업시장에서 "나이가 서른인데 왜 이것밖에 안 되나요?" 또는 "서른이면 이 정도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라는 반응을 통과의례처럼 거치게 된다. 30대 직장인이라고 사정이 무조건 나은 건 아니다. 구조 조정의 칼날은 점점 30대를 향하고 있고, 이직·재취업 시장에선 20대에 치이곤 한다.

연애도 쉽지 않다. 당장 결혼이란 문제가 결부되고 그 나이까지 왜 결혼을 못했냐는 말을 듣는 건 어느새 일상이 된다. 토이 수집을 취미로 삼는 30대가 있다면 '나이 들어 왜 그런 걸 하냐'는 말을 듣거나, 꿈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면 '나이를 생각하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공허할 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외친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엄격해진다. 사회의 시선을 견뎌내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계속 해야 하는 서러운 나이, '설운 서른'이다. 그래서 노래와 책 제목에 '서른'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게 되는가 보다.

받아들인다는 것

그렇다고 서른이 가장 힘든 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나이든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스무 살이라 불안하고, 누군가는 마흔 살이라 두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대는 무엇을 꼭 해야 하고, 30대는 이 정도는 해야 하고, 그다음은 더 높은 것을 이뤄내야 한다고 나이마다 규격화된 틀을 내세우지만 우리의 삶이 정말 그러하던가. 단 하루도 마음먹은 대로 다 되지 않는데 20대·30대를 원했던 대로 완벽히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살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 나이가 얼만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아닐까. 되돌아보면 스무 살이라고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스물셋엔 취업을 걱정했고 스물다섯엔 꺾인 나이라며 낙담했다. 스물일곱엔 이제 20대 후반이라고 불만스러워했고, 스물아홉엔 20대가 끝나간다며 불안해했다.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과거의 시점에는 또 그때의 고민과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른 살이라고 20대 때보다 덜 행복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의 첫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하나의 잣대로 상처를 주더라도 우리는 우리 나이 그대로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서른을 맞는 내게 필요한 것,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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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자기 자신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내년에도 나는 여전히 숱한 고민들로 밤을 지새우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것이다. 노력하는데도 잘 안될 수도 있다. 더 많이 실패하고 좌절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직은 서른이 두렵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작은 기회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20대는 지났지만 서른 살의 삶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이 나이엔 꼭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조금 더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나이를 떠나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기를, 그런 순간들이 쌓여 '행복한 서른 살'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1년이 더 지나 2017년 1월 1일 0시를 맞이할 땐 <서른 즈음에>를 더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부를 수 있기를 꿈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면.



태그:#새해소망, #서른, #30대,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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