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산타가 있어야 하는 날이다."(박원순 서울시장)
"(빚 탕감이) 이 세상 빚쟁이에게 빛이자 선물이다."(이재명 성남시장)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 '하얀 눈'이 내렸다. 비록 인공 눈이었지만 가난한 채무자들을 오랫동안 옭아맨 부실 채권을 소각할 때 흩날리는 재를 연상시켜 더 반갑고 따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가난한 채무자들을 위한 산타클로스로 거듭났다. 주빌리은행(공동은행장 이재명·유종일)은 크리스마스이브 서울시청에서 '서울시와 함께 하는 산타주빌리' 행사를 열고 10년 넘게 장기 연체된 기업부실채권 290억 원어치를 소각했다. 덕분에 연대보증인 116명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랜 채무 독촉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성남FC 축구 선수들 3000만 원 기부에 FC서울도 동참
박원순 시장과 주빌리은행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업무 협약을 맺고 부실 채권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박 시장은 "우리 국민 가계 부채가 1200조 원이 넘는데 상당수가 악성 채무이고 고리대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악성채무 탕감에 앞장선 주빌리은행이 감사하고 서울시도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인 이재명 성남시장도 "크리스마스에 예수의 뜻을 이어 받아 <성경>에 나오는 '주빌리'를 하게 돼 반갑다"면서 "(소멸시효가 지난) '좀비 채권'에 시달리는 채무자에게 큰 꿈과 희망 주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주빌리은행과 서울시는 이날 업무협약을 통해 ▲부실채권 문제 관심 확산을 위한 홍보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한 저소득․금융취약계층 새출발 지원 ▲프로축구단 FC서울의 '빚탕감 프로젝트' 캠페인 참여 ▲채무자 우호적 금융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화 추진 등에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또 주빌리은행은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 채무자의 연대보증 채무 2240만 원(원금 440만 원)을 탕감하고 채무자의 재기를 돕기로 했다. 이어 서울시청광장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장기연체된 기업연대보증채권 290억 원어치(원금 약 107억 원)를 소각하는 행사를 열었다. 헬륨가스가 들어간 풍선에 매달린 부실 채권들은 하늘 높이 사라졌고, 대신 하얀 눈이 그 자리를 채웠다.
주빌리은행은 지난 3일 성남시와 함께 기업부실채권 545억 원어치(원금 235억 원)를 소각한 뒤로, 기업 연대보증 문제 해결에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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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남산업진흥재단 등에서 기부한 돈 2900여 만 원이 기업부실채권 매입에 큰 밑거름이 됐다. 이날도 프로축구단 성남FC 선수들이 모은 3천만 원을 부실채권 매입에 써달라며 주빌리은행에 기부했다. 경기도 성남시가 연고지인 성남FC는 지난 7월부터 '롤링 주빌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경기에 승리하거나 골 득점, 도움 횟수에 맞춰 일정 금액을 선수단 후원금으로 적립했다.
이재명 시장은 "주빌리은행은 성남FC의 공식 스폰서"라면서 "성남FC가 올해 (K리그에서) 5위 했는데 내년에 우승까지 하게 되면 기부금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동안 4000명의 빚 1400억 원어치 소각,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도
사단법인 희망살림은 지난해부터 미국 월가의 '롤링 주빌리' 운동을 이어받아 '빚 탕감 프로젝트'를 벌였고 지난 8월 27일 주빌리은행 출범으로 이어졌다. 50년마다 빚을 탕감해주던 <성경> 속 '희년' 전통을 되살린 것이다.
주빌리은행 출범을 계기로 소각되는 부실채권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주빌리 프로젝트를 통해 빚이 탕감된 채무자나 연대보증인은 24일 현재 모두 3964명, 채무 원리금으로 따지면 1400억 원에 이른다. 그동안 서울시와 성남시를 비롯해 서울 은평구, 광주 광산구, 경기도 시흥시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종교단체에서 적극 호응한 덕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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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과 함께 공동은행장을 맡은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4개월 전 출범식 때 못된 채권을 불을 질러, 비정하고 각박한 사회가 이웃을 돌보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는 불씨가 되길 빌었는데 그 사이 기대보다 큰 호응이 있었다"면서 "얼마 전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우리도 금리가 오르고 있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 내년 상황이 걱정인데 더 열심히 하고 법제도 개선해서 이런(가계부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년동안 주빌리 운동을 이끈 제윤경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이날 "일본계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에서 보유한 소멸시효가 끝난 3천억 원 정도라고 하는데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거절했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싸워서 내년에 1조 원 정도 태우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도 호응했다. 박병석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18일 이른바 '죽은 채권 부활금지법'(채권의공정한추심에관한법률 개정안)을 '주빌리법 1호'로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소멸시효가 지난 부실 채권을 추심하거나 양도․양수하는 행위가 금지돼 많은 장기 연체자들이 채무 독촉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정청래 새정치연합 가계부채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가계부채 문제가 민생 현안 중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을 1호법안으로 냈다"면서 "주빌리은행에서 갈고닦은 성과를 법으로 마침표를 찍는 건 국회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