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자신을 구해준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를 칼로 찌른 마르쿠스 브루투스(BC85~42). 그에겐 명분이 있었다. 공화정을 지지했던 그에게 대세를 거스르며 황제가 되려 한 카이사르는 '다수의 의지로 합의된 다수의 행복'을 거부한 배신자였다. 조금 넓혀 해석하자면 브루투스는 일찍 깨달은 민주주의 지지자.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뭘까? 한마디로 그 개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불특정다수 대중의 딱한 형편을 연민의 눈길로 살피고자 하는 시스템에 다름없다.
지구 위에 근대 국가가 생성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바로 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얼마만큼 삐걱거림 없이 작동되고 있느냐로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그 좋은 예다.
너나없이 우리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 우체국 택배 배송 시스템이 얼마나 '비민주적 제도'로 운영되는지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관련 기사:
택배 운송할 수 없는 택배기사 "너무 억울하다").
'우체국'이란 이름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공신력과 인지도는 그대로 받아 안아 활용하면서도, 우체국 택배 배송 시스템의 최하층에서 이용자들에게 택배물품을 전달하고,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지역으로 택배물품을 운송하는 노동자들의 인권과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본부-지방 우정청-지방 우체국이란 공식적인 라인이 아닌, 우체국 물류지원단이라는 산하단체를 만들어 그 단체가 재하청을 수행하는 영세 운송업체와 물류 운송 계약을 맺게 했다. 그 때문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에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탄탄하게 만들어 놓은 '우정사업본부 물류지원단의 행태'.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설계하자'는 철학자들의 명제를 여기다 굳이 가져다 붙일 생각은 없다. 그건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비춰질 수도 있으므로. 그러나 우정사업본부와 우체국 물류지원단을 취재하며 든 아래와 같은 느낌은 굳이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앞서 언급된 카이사르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칼을 들고 제 앞에 나타난 측근에게 이렇게 탄식한다. "브루투스, 너마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변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타자의 고통과 슬픔을 연민하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효율을 위해 인간적 연민과 공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정사업본부. 힘없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기관이면서도 '최대의 잉여자본 획득'을 지상과제로 하는 사기업 이상으로 하청-재하청을 통한 '극대화된 이익'만을 추구하며 '역사를 모르는' 그들에게 국민은 어떤 말을 해줘야할까. "우정사업본부, 너마저?"가 아닐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