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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기자 말

조성환(31)씨와 박다비(27)씨는 2013년에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무작정 제주로 내려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또 기대하며 살 때였다. 다비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두어 달 늦게 입사한 성환씨는 처음부터 다비씨가 맘에 들었단다. 느린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착한 성품을 눈치 빠른 그가 잘 캐치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며 여러 계절을 보냈고,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인도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주에 가서 살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아주 옛날부터 제주에서 살고픈 막연한 꿈이 있었거든요. 처음엔 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딱 한 달만 살고 오겠다고 안심시켜드렸는데, 벌써 제주에 산 지 2년이 되었네요. 제주 갈 때도 부모님이 걱정 많으셨는데, 이번엔 거기서 만난 남자랑 같이 살겠다고 해서 경악하셨죠."

졸업식 때문에 육지에 올라간 김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은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되셨나보다. 내친 김에 상견례도 하자고 하셔서 가족이 모두 만났다. 부모님의 욕심은 또 끝이 없다. 내친 김에 결혼식도 육지서 올리고 내려가라고 하셨다.

무리하지 말고, 내 삶에 맞게

"하지만 결혼식은 저희에겐 다른 의미였어요. 번갯불에 콩 볶듯 하는 결혼식은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없는 돈을 쏟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현재 저희가 가진 것은 전부 모슬포에 있는 농가 하나에 쏟은 터였어요. 그렇다고 부모님의 손을 빌려 하는 결혼식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나중에 하게 되더라도 지금 무리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혼인신고만 하게 되었어요."

2015년 3월 14일, 정안수 한그릇 떠놓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 결혼 2015년 3월 14일, 정안수 한그릇 떠놓고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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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5년 3월 4일 혼인신고를 한 날, 한창 두 사람이 고치고 있는 대정읍 집 앞에서 정안수를 떠놓고 둘 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로의 형편이, 서로의 마음이 "이제 됐다" 하는 날,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올릴 마음도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새롭게 변해가는 집 앞에서 웨딩촬영도 하는 중이다.

공사 중에 틈이 나면 집 앞에서 웨딩촬영을 했다.
▲ 웨딩촬영 공사 중에 틈이 나면 집 앞에서 웨딩촬영을 했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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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 달에 한 번씩 웨딩촬영을 해서 사진첩을 만들고 싶었어요. 나는 사진 앞에서 어색하지만 다비를 찍어주는 건 좋더라고요. 그런데 그간 집 고치느라 바빠서 몇 달 빼먹었어요. 저는 사실 저희의 이런 삶 자체가 결혼이고 의미 있는 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비는 저희 집 마당에서라도 조그만 예식을 하고 싶어 해요. 적당한 때가 나타나면 요란스럽지 않은 예식 하면 좋겠죠."

집도, 삶도, 우리의 손으로

성환씨는 손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사실 제주에 내려오는 이주민들 중엔 손으로 하는 일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내려온다. 그도 역시 제주에 와서 단기간에 목수 일을 배웠고, 사진도 찍는다. 다비씨도 경영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손으로 하는 일에 꽤 재능이 있다. 

100년 된 농가를 둘만의 힘으로 보수했다.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 집고치기 100년 된 농가를 둘만의 힘으로 보수했다.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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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을 많이 팔아 작년에 모슬포에 있는 100년 된 농가 하나를 샀다.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낡고, 키가 제법 큰 성환씨와 다비씨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낮았다. 산 직후부터 지금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이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집을 고쳤다. 없는 벽을 세우고, 지붕을 들어 올렸으니, 사실상 집을 다시 지은 거나 진배없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우리가 살 집을 고쳤다
▲ 반년의 집공사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우리가 살 집을 고쳤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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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자갈도 손수 하나하나 심었다.
▲ 둘이 함께 고치는 집 마당 자갈도 손수 하나하나 심었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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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이나 표선처럼 이주민들이 많지 않은 곳이라 주변엔 온통 한집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저희는 그래도 공사하는 동안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우리 두 사람밖에 안 사는데, 농사지은 호박이며, 매번 엄청 갖다 주시기도 하고…. 할아버지들은 이웃 간의 경계 같은 개념이 없으셔서, 공사 중에 그냥 집에 들어와 둘러보고 나가는 분들도 많았죠. 처음엔 많이 당황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여기 집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데다 높은 건물도 없고, 저녁엔 캄캄해져서, 자식 집에 놀러오셨다 길 잃은 육지 아주머니가 집에 들어와 도움을 요청하신 적도 있어요.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많은 추억이 생겼어요."

누구보다 고민 많은 애어른 부부

사실 나는 인터뷰 중엔 나이를 묻지 않는다. 이름조차 모를 때가 있다. 한참 뒤에 기사를 쓸 때에야 문자메시지로 물어보곤 하는데, 이 두 부부의 나이는 참 궁금해졌다. 서른하나와 스물일곱. 제주엔 사실 매일 축제와 잔치로 정말 휴일처럼 지내는 이주청년들도 많은데, 이들은 6개월 동안, 더더군다나 73년 만에 찾아왔다는 제주의 불볕더위 아래 에어컨도 없이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100년 된 농가는 두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바뀌었다.
▲ 완성된 집 100년 된 농가는 두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바뀌었다.
ⓒ 조성환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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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단계일 때 집을 찾아갔는데 참 놀라웠다. 두 청년의 손길로 지어진 100년 된 농가는 예쁘게도 다듬어져 있었다. 물론 앞뒤맥락을 모르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다비씨의 블로그를 통해 미리 알고 보는 집의 변화는 내 입에서 계속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반 년 동안 땀 흘리며 수고한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저희가 정말 애정하며 사랑하며 싸워가며 힘들여 고친 집이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집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거든요. 원래 이 집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죽고 나서도 그 자리에 있을 집이니까요. 둘 다 동물을 많이 좋아하지만, 섣불리 키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집착하고 몰두하지 않으면서 집을 사랑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요즘 무작정 제주로 내려가는 모양새를 보며, '책임감 없이 자유만 누리려 한다', '계획 없이 충동적이다' 걱정 섞인 참견을 해대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책임을 다하지 않는 청춘들도 세상엔 많지만, 오늘 만난 이들은 '애어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많은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또 실천하는 아름다운 부부였다. 귀신도 무섭다고 뛰쳐나올 것 같은 집을 6개월 동안 함께 고치며 60년 같이 산 부부의 마음을 배우지 않았을까?

땡볕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두 사람의 길을 진심으로 축복해요.
▲ 두 사람 땡볕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두 사람의 길을 진심으로 축복해요.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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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손수 만든 집엔 사랑채도 있어 숙박시설도 곧 운영할 계획이다. 그들 부부의 집 이름은 '맨도롱또똣' 얼마 전 한바탕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비씨가 무려 2년 앞서 지어놓은 그녀의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가 먼저다. 앞으로 그들 집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놓고 치러질 그들의 결혼식도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진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skdream.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나다운결혼식, #결혼식, #박진희박,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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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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