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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책표지.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책표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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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장르가 다른 3~6권 정도의 책을 한꺼번에 읽곤 한다. 특히 주제가 딱딱하거나 무거운 책은 그 한 권만 붙잡고 읽는 것보다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과 함께 읽어 나가면 그나마 덜 무겁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렇게 책을 읽고 있다.

올 초 <수상한 북클럽>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연애소설 읽는 노인>(열린 책들 펴냄)은 주제가 좀 무거운 책을 읽는 사이에 디저트처럼 가볍게 읽으면 좋겠다 싶어 구입해 의도대로 몇 권의 고발성 내용의 책과 함께 읽었다.

책을 통해 소개된 주인공 노인(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의 책을 읽는 모습이나 자세가 매우 인상 깊었다. (아마도)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군가의 책 읽는 이야기에 대개, 언제든 지치지 않고 끌리리라. 소설 속 노인이지만 그가 하필 연애소설을 읽는 이유가, 그토록 간절히 책을 읽게 된 사연이 무척 궁금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 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노인은 언제부턴가 책을 읽자고 오래 앉아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해할지도 모를 엉거주춤하게 선 모습으로 자신이 손수 만든 소박한 탁자 앞에서 책을 읽곤 한다. 노인의 책읽기는 매우 간절하다. 노인에게 책은 보석이나 종교보다 더한 존재 같다. 그러니 '책을 좀 많이 읽자', '책읽기의 필요성과 즐거움' 쪽으로 소개하리라.

그런데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묻는 책'으로도 읽으면 훨씬 많은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이 소설의 배경은 지구의 허파 같은 존재이나 무분별한 개발로 점점 황폐화되고 있는, 때문에 환경운동가들이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아마존 한 지역(엘 이딜리오)인데다, 일부 국가들의 민간인 이주 정책과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들과 인간들이, 원주민들과 문명인들의 마찰이 고조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밀림은 새로이 정착한 이주민이나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나워지는 것은 짐승들이었다. 조그만 평지를 얻고자 무차별하게 벌목을 해대는 바람에 보금자리를 잃은 매가 노새를 물어뜯고 번식기에 접어든 멧돼지가 사나운 맹수로 돌변하기도 했다. 코카의 원전회사에 근무하는 양키들까지 짐승들을 괴롭히는 것에 한몫했다. 그들은 마치 큰 전투라도 치를 듯한 화기(총)로 무장한 채 떠들썩하게 나타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가차 없이 갈겨댔다. 특히 살쾡이 사냥에 나설 때면 어미건 새끼건 가릴 것 없이 사살-무려 열 마리 이상을 죽인 적도 있었다-한 뒤에 그 가죽을 벗겨 말뚝에 걸어놓고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짐승의 가죽은 누군가 그것을 강으로 던지기 전까지 그대로 썩어갔고, 그 사이 살아남은 살쾡이들은 마치 보복이나 하듯 황소의 내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서

노인이 아마존유역으로 온 것은 수십 년 전. 노인은 아내를 사랑했다, 부부 사이엔 자식이 없었다. 인간적으로 동정할 일이다. 그렇건만 주변사람들은 수군대기 일쑤였다. 급기야는 '수많은 남녀가 질펀하게 술을 마신 후 전혀 모르는 남녀가 거리낌 없이 몸을 섞는 산 루이스 축제에 아내를 혼자 내보내보라'는, 아이를 얻을 수 있는 진심어린? 제안까지 받게 된다.

부부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는다. 마침 정부는 아마존지역으로 이주를 하면 일정 면적의 땅과 경작에 필요한 것들과 정착에 필요한 것들을 조건 없이 제공해준다는 이주정책을 발표한다. 부부도 이주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정부의 이주지역에 대한 정보와 제공하겠다는 것들이 현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사람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개간도 제대로 못하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그의 아내도 이주 첫해인 수십 년 전 그 첫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노인은 지난 수많은 세월동안 세상과 사람들을 경멸하고 외면하는 한편 자책하며 살아왔다.

이런 노인에게 삶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한 것은 아마존의 생명력과 신비, 그리고 자연과 바람직하게 공존하는 원주민 수아르족과의 만남이다. 이제 노인은 더 이상 자책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죽인 아마존에 더 이상 냉소적이지도 않다. 오래 전에 밀림을 깊이, 그리고 진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노인이 원하는 것은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달콤한 연애소설이나 읽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방해받는다. 그리하여 밀림의 황폐화를 진행시키는 이주민들과 양키, 노다지꾼들을 저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기도 했던, 와중에 생명을 위협까지 받게 된 노인은 자연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화난 맹수 (암)살쾡이를 찾아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가는데….

누군가의 불행을 사소한 즐거움으로 입에 올리는 것을 일삼는 사람들의 속성과 그런 그들이 사는 세계에 대한 묘사, 노인의 입을 빌려 전하는 아마존과 그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신비와 질서, 자연과 바람직하게 공존하는 원주민 수아르족과 대비되는 문명인들의 어리석음과 오만, 노인의 책에 대한 간절함에 대한 간결하나 생생한 묘사가 특히 인상 깊게 남고 있다.

작가는 왜 하필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을, 그것도 언제까지고 연애소설이나 읽고 싶은 노인을 주인공으로 했을까? 왜 하필 이와 같은 사연의 노인을 통해 아마존의 생명력과 신비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 그리고 아마존의 황폐화, 그 저지를 호소할까? 살아가려면 자연의 일부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우리 인간이 자연과 바람직하게 공존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없는 것일까?

삶의 패배를 겪을 대로 겪은 한 사람이 삶의 가장 큰 가치이자 행복으로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책읽기를 선택했다는 것에 비중을 두고 읽어도, 하필 그런 사람을 통해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아마존의 생명력과 황폐화를 호소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읽어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존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어도 저마다 강한 메시지와 감동을 주는 책이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작품과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남미 문학과 환경운동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중에 비해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덧붙인다.

이 책은 환경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작가가 바치는 소설임을 밝히고 있다. 작품의 의도와 작품의 배경인 아마존에 대한 시각은 작가의 개인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1949년 칠레 북부 오바에에서 태어나 자랐다. 피노체트 군사정권하에서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다 수감된다. 그리고 결국 당시 수많은 칠레의 지식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로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노체트의 나라에서 도망친다. 그 후 수년 동안 이 작품의 시작이 되는 남미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유네스코 기자 등으로 활동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가 살해된 후인 1989년. 이미 오래전에 아마존 유역에서 10여년 정도 살았고, 아마존 관련 작품을 구상했으나, 자신의 글로 역으로 아마존이 황폐해질 수도 있다는 염려로 쓰지 않다가 치코 멘데스 죽음 후 발표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피노체트 정권에서 탄압 받다가 칠레를 떠나야만 했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특히 환경 분야 고전적인 존재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은 이후 발표되는 작가의 여러 작품들 그 모태가 된다고 한다. (김현자)

덧붙이는 글 |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지은이) | 정창 (옮긴이) | 열린책들| 2009-11-30 | 8800원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열린책들(2009)


태그:#아마존 유역(아마존 강), #루이스 세풀베다, #스테디셀러, #지구의 허파, #수상한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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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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