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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바간은 파고다의 숲이다. 한낮 그 위로 뙤약볕이 쏟아진다. 땡볕이 절정을 치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수 비가 부른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노래를 옹알거리고 있었다.

미얀마의 햇빛은 송곳이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내리쬐는 자외선이 날카롭다. 특히 바간의 햇빛은 창끝처럼 날카로웠다. 양곤에서 한참 북쪽인 만달레이, 삔우린 같은 곳은 괜찮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곳도 오전 중에는 잠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했으나 정오가 넘어가자 내리쬐는 햇볕은 따갑다. 이런 따가운 햇빛 속에서는 몇 걸음만 걸어도 금세 등줄기에 땀이 고인다.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든 여행자는 미얀마 햇빛 아래 지치기 십상이다.

바간의 한 낮 뙤약볕은 송곳 같다.
▲ 바간의 땡볕 바간의 한 낮 뙤약볕은 송곳 같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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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숲에서 바라본 바간의 땡볕하늘
▲ 바간 하늘 파고다 숲에서 바라본 바간의 땡볕하늘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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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나라 사람들은 더위를 안 탈까?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운 나라를 가게 되면 궁금증이 든다. '매일 이런 날씨에 어떻게 살지?' 피부에 와 후덥지근한 감각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참 우문(愚問)이다. 우리가 더위나 추위를 느끼게 되는 것은 피부에 있는 감각점 중 냉점과 온점에 의해서다. 이 감각에 의해 체온조절 중추가 있는 시상하부에 전해지면 자율신경에 의해 주어진 기온에 적응하도록 한다. 36.5도라는 인간의 정상 체온이 더운 나라 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는데 왜 더위를 못 느끼겠는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남녀 간에는 더위를 느끼는 지점이 약간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위를 더 많이 느끼는데 그 이유는 근육량이 많은 남성이 피부로 가는 혈류량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혈류량이 적은 여성보다 더위를 더 많이 탄다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미얀마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마른 편이라 근육량이 적을 것이라는 가설 하에 더위를 덜 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을 적용한다 치더라도 혈류량에 의한 온도차이는 1~2도 정도라 하니 미얀마 기온을 감안하면 맞지 않는다. 미얀마는 고온 다습한 열대성 몬순기후다. 년 평균기온은 27~8도이고 낮에는 대부분 30도를 넘는다. 또한 우기가 시작되기 전 3월~5월 평균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다.

그러니 미얀마 사람들이 더위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 오래 살면서 적응력이 생겼을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는 그 사람의 사는 모습이 들어 있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면 걷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도 그들의 삶이 묻어 있을 것이다.

한낮 만달레이 재래시장 구경을 나섰다. 만달레이 땡볕도 바간 못지않다. 시장을 반 바퀴쯤 돌았는데 등줄기에 땀이 고여 잠시 쉬기 위해 나무그늘로 피해 들었다. 미얀마 사람들이 이렇게 날 선 햇빛에 어떻게 견뎌내는지 궁금증이 도졌다.

한참을 땡볕 아래 걷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들 걸음걸이에 작은 규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빨리빨리 습관으로 다리와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걷는 우리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힘을 뺀 상태로 흐느적거리듯이 걸었다.

전통복장인 론지(Longyi-롱지라고도 발음한다)를 입어서 그런지 보폭도 짧았고 될 수 있으면 작은 그늘이라도 그쪽으로 몸을 들였다. 햇빛 아래서도 서두름 없이 물 흐르듯 낭창낭창 걷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팔팔한 젊은이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낭창낭창한 걸음걸이였다.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했다. 뙤약볕에 물건을 나르면서도 낭창낭창 걸었다.
▲ 만달레이 재래시장 사람들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관찰했다. 뙤약볕에 물건을 나르면서도 낭창낭창 걸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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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Eureka)! 밝혀진 미얀마식 걸음걸이의 비밀 

미얀마식 유유자적 걸음걸이의 진수를 보게 된 것은 '마하시명상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날따라 양곤 땡볕은 더욱 매서웠다. 어렵게 마하시명상센터를 찾았을 때 온몸은 땀에 절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더위에 지쳐 방문한 그곳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감돌았다. 이름에서 오는 마음 쏠림 때문인지 뭔지 모를 평화롭고 온화한 기운이 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 경내에는 가사 입은 많은 스님들이 평화가 가득한 얼굴로 땡볕인데도 유유자적 걷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수행의 한 방법인 행선(行禪)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행선(行禪)이란 위빠사나 수행방법(아래 정보 참조)의 하나로 '편안하고 이완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모든 마음을 발에 집중하되, 걷는 동작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각과 현상, 마음들을 낱낱이 관찰하여 알아차림 하는 수행법(위빠사나명상센터 호두마을 자료참조)'이다.

마하시명상센터에서 천천히 행선하는 스님들을 보는 순간 바로 만달레이 재래시장 노인들의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겹쳐 보였다.

'유레카!(Eureka) 그렇구나!'

평온한 붓다의 얼굴로 유유자적 경내를 행선하는 스님들의 모습 속에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들어 있었다. 일상을 불교와 함께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 삶속에 불교의 수행방법이 스며들어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미얀마식 걸음걸이가 꼭 불교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런 걸음걸이는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척박한 환경을 살아오면서 삶의 지혜가 몸에 스며들어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 불교식 삶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느릿느릿 행선중인 스님들의 걸음 속에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보였다.
▲ 마하시명상센터 수행스님 느릿느릿 행선중인 스님들의 걸음 속에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보였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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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중인 사람들
▲ 마하시명상센타 여성수행자 수행중인 사람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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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걸음걸이'를 한 번 흉내 내 본 적이 있다. 땡볕에 따웅지 시장을 몇 바퀴 돌아야 했을 때이다. 수십 년 빨리빨리로 살아 온 몸이 한 번에 낭창낭창 걷음걸이에 적응할 수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시도해보니 나름 효과가 있는 듯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다리도 편안한 상태로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걷어보니 등줄기 땀은 흘러도 휠씬 더위에 덜 지치는 듯 했다. 작은 깨달음이 왔다.

'바로 이것이 미얀마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지혜로구나'

생각은 미얀미얀, 행동은 낭창낭창 하는 미얀마 사람들

'아이쿠,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네'

내 어깨를 만져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나처럼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다고 한다. 아마도 팍팍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주 원인일 게다. 늘 빨리빨리로 살며 이뤄낸 초고속 성장의 후유증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이루었을지 모르나 항상 온몸이 뻐근하게 굳어 있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송곳같이 내리 쬐는 햇빛 아래에서도 서두름 없이 낭창낭창 미얀마식 걸음걸이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생각해본다. 늘 목표달성, 도전, 정복, 경쟁과 갈등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낭창낭창 살아가는 미얀마식 삶이 아닐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얀마가 지금 비록 낙후되었다고 하지만, 낭창낭창 미얀마식 삶이 장차 미얀마 부흥의 잠재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얀마 사람들은 생각은 미얀미얀(미얀마말로 빨리빨리) 하지만 행동은 낭창낭창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여행은 걸어야 할 일이 많다. 혹시 미얀마 여행자가 될 예정이면 모든 것이 빨리빨리 해결되는 도시의 편리함은 미리 내려 놓고 떠나길 바란다. 도시의 편리함을 놓고 가지 않으면 미얀마 땡볕아래 지쳐 자칫 지루하고 불편한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얀마는 유유자적 느릿느릿한 마음 가짐이라야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불편함과 느림, 예상에 빗나가는 일정까지도 음미 하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여유를 맛보다 보면 미얀마의 매력이 흠뻑 빠지게 된다.

'퍽퍽한 일상은 가라! 유유자적 낭창낭창! 여행자의 나라 미얀마가 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장소
▲ 마하시 명상 센터(Mahasi Meditation Center)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장소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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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좋은 정보:마하시명상센타(Mahasi Meditation Center)와 위빠사나
마하시명상센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빠사나 수행 장소이다. 이 명상센터는 1947년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가 세운 것으로 많게는 3000여명의 수행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하며 마하시 대선사의 기념관을 비롯하여 수행자를 위한 공간 등이 갖춰져 있고 지금도 주변에 공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봐서 계속 증축중인 것으로 보였다.

위빠사나(vipassana)는 위(vi)와 빠사나(passana)가 결합된 말로 빠사나(passana)는 깨달음이라는 말이고 위(vi)는 마음과 몸의 세가지 특성인 삼법인을 말하는데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괴로운 일만 있으며 이를 느끼고 아는 몸과 마음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 한다. 그러니 위빠사나(vipassana)는 삼법인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방법으로 내적 통찰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는 남방불교식 수행법이다. 위빠사나의 주된 수행방법은 '걷는 수행(행선行禪)'과 '앉아서 하는 수행(좌선坐禪)'이며, 이 두 가지 수행방법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현재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바로 알아차림(관觀)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마하시명상센터 수행법의 특징 중 하나는 들고 나는 숨이 아닌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독특한 수행법에 있다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명상센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마하시 명상센터도 예전에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였는데 유명세를 타면서 세계각국의 배낭족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지금은 외국인들에게 약간의 방값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수행자는 여전히 수행법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이곳 외에 미얀마의 대부분 명상센터는 아직도 무료인 곳이 많아 돈 없는 여행자가 알아두면 위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면 말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법은 현지 발음 중심으로 표기헸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바간, #마하시명상센터, #위빠사나, #만달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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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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