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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만, 1분만 달라"...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토론회 뜨거운 열기(2014.8.5)
 "1분만, 1분만 달라"...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토론회 뜨거운 열기(2014.8.5)
ⓒ 박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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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에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찬사가 또 있을까. 동질감, 아련함, 먹먹함, 고마움 등이 한꺼번에 묻어 나오는 절절한 표현이다.

송창식·윤형주·조영남·김세환·이장희 등 1970∼80년대의 청춘·낭만·저항을 상징하는 세시봉(C'est Si Bon) 출신 가수들이 40여 년이 지난 2010년 9월 방송에 출현했을 때, 50~60대 대중들이 그들에게 보낸 찬사다.

이른바 486 학생회장 출신 정치인들에 대해 40~50대 대중들이 갖는 정서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민주화운동의 절정기였던 87학번이다. 맨 앞에 나서지는 못 했지만 대한극장 앞 거리에서 창문 틈으로 내려다보는 시민들과 함께 "독재 타도"를 외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평범한 486세대이다.

당시 선봉에 섰던 학생회장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들이 하나 둘 정치권에 입문했을 때, 기성 정치권의 구태에 맞서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주리라 기대하고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80년대 치열했던 고민과 운동의 정신을 진화·발전시켜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고한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워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세시봉은 여전히 동시대 대중들로부터 '같은 시대에 살아줘서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지만, 486 정치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서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만의 가혹한 평가일까.

'연판장 - 안철수·김한길식 중도개혁 동조'... 486의 구태정치

특히 지난 7.30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새정치민주연합 486의 '민낯'은 기득권화와 권력지향성, 계파주의의 전형이었다. 지기도 쉽지 않는 선거를 역사적 참패로 만들어버린 새정치연합의 무능·무기력 뒤에는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와 함께 486의 '패거리 정치'가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 7.30 재보선 과정에서 보여준 486 정치인들의 집단 행보는 과거 구태로 상징되던 정치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민평련계와 친노계로 나뉘어서 개개인의 공천에 대해 일일이 즉각적으로 집단 성명을 냈다. 지원사격의 대상이 자기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성명서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 빼기도 했다.

심지어 진보개혁파 후보를 겨낭해 공천 배제를 주장하며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칭 '미래세력'이라는 486 정치인들의 권력 싸움을 연상케 하는 '기자회견 아수라장'은 486 정치의 현주소를 뚜렷이 보여줬다.

486에게 더 이상 고뇌하는 80년대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야당의 기득권 중심부에 진입하면서 진보개혁과 학생운동 시절의 치열함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그동안 실천의 측면에서도 한미FTA에 대해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팔아먹었다고 일갈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전 의원(현 경남도지사)만큼도 정치 현장에서 진보적 입장을 보여주지 못 했다. 

간간이 당의 중도화를 비판하면서 진보성 강화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인터뷰나 토론회 등에서 일회성 레토릭에 그치고 만다. 정작 그 노선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투영되어야 할 당내 권력 투쟁 과정에서는 진보와는 아무 상관없이 당권에 가장 가까운 쪽에 줄서기 바쁘다.

이제는 486 의원 중에도 중도개혁을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철학과 시대정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인영 의원은 9일자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당의 혁신 방향에 대해 "대체로 사회 분야는 진보, 외교·안보는 보수, 경제는 중도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한술 더 떠 "국민은 경제 성장을 우선하는데 민주당은 성장에 대한 담론이 없다"면서 "중도를 지향해야 하고, 중도·보수 성향의 인재 영입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내 선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단 자체가 작위적이고 엉터리"라고 일축했다. 두 486 정치인의 생각이 바로 정확히 '안철수·김한길 노선'이었다.

박영선 '세월호특별법 야합'에는 왜 침묵하나?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7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단일안 마련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세월호 특별법과 주요 민생법안을 처리하는데 합의했다.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7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단일안 마련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세월호 특별법과 주요 민생법안을 처리하는데 합의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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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국회의원들의 절대적 지지를 통해 출범한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도 지난 5일 취임 일성으로 "투쟁 정당 이미지를 벗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7일 세월호 특별법 백기투항이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요구안은 물론, 자신들이 제시한 절충안조차 제대로 관철하지 못한 야합에 가까웠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싱글벙글했고, 세월호 유가족은 제1야당의 무능과 배신 앞에 또 한 번 깊은 좌절과 절망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발목 잡는 정당 이미지를 없애겠다"며 어르신들에게 '줬다 다시 뺏는' 기만적인 기초연금법을 통과시켜 주었고, 재보선 참패를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출범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회는 세월호 유가족과는 '공감'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새누리당과 '찰떡 공감'하며 세월호 특별법에 백기투항을 했다.

발목잡는 정당·투쟁 정당 이미지는 벗었는지 몰라도 야당 지지자들의 불신과 분노는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그런데도 소속 계파 정치인을 옹호하기 위해 연판장까지 돌리던 486의 결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당내 계파 지키기에 보였던 서슬 퍼런 용기와 투지는 세월호 가족 앞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보여준 노선과 행보가 새정치연합 현역의원 90% 이상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 현역의원의 절대 다수가 여전히 중도개혁론자들이고, 안철수·박영선식 '투쟁 알레르기'가 있는 엘리트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진보 학자·언론인 "486 퇴행, 더 두고 볼 수 없다"

7.30 재보선 이후 진보 학자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열렬히 기대했고 지지해왔던 486 정치인들의 역사적인 퇴행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걱정이 배어나온다.

지난 5일 국회에서는 7.30 재보선 참패 이후 재보선 평가와 야당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첫 토론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486 정치인들은 더 이상 미래세력이 아니라 즉시 '퇴출 대상'감이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제 50줄에 접어들어 더 이상 486이라 불리기도 민망해진 486 정치인들의 실패는 참담하다, 그들은 거의 30년째 학생회장을 하고 있을 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며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진정한 올드보이는 이들보다 10년 쯤 위인 정동영·천정배가 아니라 바로 이들 486"이라고 일갈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486 그룹들은 과거와 미래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는커녕 계파 보스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아전 정치, 하청 정치에 몰두해 왔다"며 "운동권 선후배로 묶여진 인연을 매개로 패거리 권력화되었고, 지난 19대 총선에서 친소관계에 의한 정실공천(밀어주고 끌어주기)으로 상당수가 국회에 진출하여 더 큰 기득권 집단을 형성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도파도 아니고 진보파도 아닌 중간에서 힘의 중심 이동에 따라 왔다 갔다 하였으므로 당연히 독자적 가치와 비전을 정립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김의겸 논설위원은 6일자 칼럼에서 새정치연합 486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논설위원은 "이정현이 지리적인 호남의 자식이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정신적인 광주의 아들들"이라며 "386이 486을 지나 586으로 접어들었건만 무얼 남겼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찬란했던 숭고함은 어디 가고 따분한 무능으로 허벅지살만 붙었다, 이정현의 반만 공부했더라도 지금 누구 하나쯤은 정책통이라는 소리를 들을 법하건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힐난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번마저 어물쩍 넘어간다면 다음 총선 때 퇴진 요구에 시달릴 사람들은 중진 의원들이 아니라 486 의원들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정현만도 못한 486... '차라리 정계은퇴하라'

야권 어디에도 486을 두둔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절대적 지지그룹이었던 시민단체와 진보적 학자, 진보적 언론에서도 '486 용도폐기론'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정현 의원이 민정당에 들어갔던 80년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화염병을 던졌던 486 정치인들로서는 이정현과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것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더 못한 정치인 취급받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86이 기성정당인 야당 정치에 입문한 시기도 간단치 않다. 얼마 전 한 지인은 "이인영·우상호·임종석과 정동영·천정배가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시기가 고작 2~3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며 "486이 한 10년 정도는 늦게 입문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긴 세월 동안 486이 기성 정치권에서 보여준 게 뭐냐는 질타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는 486 정치인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뻔뻔하다. 자신들을 미래세력이라고 칭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진보개혁파 선배 정치인을 올드보이라고 말할 처지도 못 된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어쩌면 486이 자신들을 성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국민공감혁신'의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486 정치인들은 처신을 분명히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진보의 깃발을 선명하게 들고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계파 수장의 홍위병 역할을 하며 구차하게 정치생명을 연장할 것인지를 결단해야 한다. 진보개혁적인 정치 선배들까지 싸잡아 올드보이로 매도하고, '세대교체'를 주장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민낯을 돌아볼 때다. 자연적인 나이보다 영혼이 너무 늙어버린 '진정한 올드보이'가 아닌지를.

비판이나 비난은 애증이 남아 있다는 다른 표현이다. 지금 야당 정치인들은 국민과 당원이 던지는 비난과 돌멩이 하나라도 귀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난조차 아깝다고 침묵하는 순간, 회생이 불가능한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하여 마지막으로 고언 드린다. 80년대의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평범한 486세대들에게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게 부끄러운' 사람들로 기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더 추해지기 전에 깨끗하게 정계은퇴하시라. 


태그:#세월호특별법, #486, #재보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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