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동건강연대는 2013년 산재를 입고 치료 재활중인 노동자들, 치료가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산재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개인의 질병도 사회구조와 떨어져서 볼 수 없기에 의료인들이 노동자를 진료할 때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편집자말]
산재보험을 어떻게 해야 노동자가 최우선이 되는 제도로 바꿀 수 있을까요. 알바든 정규직 노동자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대기업 노동자든 중소기업 노동자든 일하는 사람이라면 아프거나 다쳤을 때 맘껏 이용하고 치료 후에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노동조합, 사회단체가 '산재보험'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재보험의 당사자, 일하는 사람이 직접 관심을 갖고 말하지 않으면 제도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물론이고 정당,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기업의 편이고, 기업에 부담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사실 산재보험을 개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산재보험을 이용할 수 있게 바꾸려면 기업이 변해야 하는데, 기업은 손톱만큼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또 기업주 단체인 경총은 산재보험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감시하며,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정당한 사회보험혜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이 제대로 된 사회보험으로, 사회보장의 방편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변화를 계속 주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산재보험도 건강보험처럼, 아프면 누구나!

아프고 병든 개인이 의사소견서, 필름, 의학적자료, 판례, 인과관계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조직인 기업을 상대로 재판을 하고 직업병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큰 시련이고, 사회적으로도 참 어이없고 힘 빠지는 일입니다.
 아프고 병든 개인이 의사소견서, 필름, 의학적자료, 판례, 인과관계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조직인 기업을 상대로 재판을 하고 직업병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큰 시련이고, 사회적으로도 참 어이없고 힘 빠지는 일입니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산재보험을 바꾸는 첫 번째 방법은 발상을 '확' 바꾸는 것입니다. 산재보험도 건강보험처럼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처럼 병원에만 가면 병원이 알아서 처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치고 아픈 몸으로 인터넷 지식인에 들어가 검색하고, 근로복지공단홈페이지 찾아 신청서 다운받아, 사장 찾아가고, 관리자 찾아가고, 병원 찾아가고, 의사에게 소견서 떼어 달라고 사정하고, 노무사 찾아가서 '사건의뢰' 하지 않아도 산재보험 받을 수 있습니다. 산재보험을 건강보험처럼 병원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제도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 산재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하는 이들의 비율은 적어도 두 배 이상, 최대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OECD 국가 대비 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은 한국이 3배인데, 노동자가 다치는 손상률은 1/5밖에 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부상이 지금보다 15배 많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법으로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고 해도, 다친 노동자의 10~20%만 산재보험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노동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고서는 산재보험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법에는 된다고 써 있어도 실제는 이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산재가 일어나면 노동자는 해고 당할까봐, 사업주는 보험료 많이 낼까봐, 정부에서 감독이 들어올까봐 감추고, 감추고, 덮고 덮고를 반복합니다.

지난 2012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산재보험 신청서의 사업주 날인 제도가 노동자를 회유하는 목적으로 악용된다며 이를 폐지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국가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데, 사장을 만나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노동자에게는 압박이 됩니다.

사업주 관리자를 만날 필요 없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산재보험, 건강보험 여부를 의료기관이 판단하여 청구하면 됩니다. 정부가 좋아하는 외국 사례, 유럽 사례를 공부하면 얼마든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사장 눈치 보느라 개인치료비 내면서 일할 필요 없습니다.

"병원 갔더니 산재보험 처리되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겠지요. 이렇게 바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재보험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넝쿨처럼 따라 올라와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다. 보장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삶의 질이 올라가겠지요.

직업병이냐 아니냐, 회사가 증명하게 바꿔야

둘째, 직업병을 쉽게 인정해주고, 치료비를 제대로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면서 "그거 직업병이야", "산재처리해야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산재보험을 신청하지는 않죠. 직업병을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지 뉴스에 나오는 어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신청, 불승인, 기각, 법원, 재판, 패소, 항소….

아프고 병든 개인이 의사소견서, 필름, 의학적자료, 판례, 인과관계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조직인 기업을 상대로 재판을 하고 직업병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큰 시련이고, 사회적으로도 참 어이없고 힘 빠지는 일입니다.

직업병이 아니라는 것을 기업과 산재보험기관이 증명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게 노동자를 우선으로 하는 제도로 가는 길입니다. 월등하게 많은 정보와 전문 인력을 가진 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혼자 직업병임을 증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산재보험을 건강보험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직업병 인정도 훨씬 쉬운 방향으로 변할 것입니다. 산재보험 신청을 했더라도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어떤 것은 보장이 되고 어떤 것은 개인 부담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정말 보험이 필요한 경우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개인이 치료비를 부담해 생계가 어려워지는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활비용, 직업훈련 등에 대해서 정부가 나몰라라 하는 현실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2012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산재보험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면서 "전통적 제조업 일변도에서 화학물질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첨단 전자제조업과 서비스업 확대라는 산업구조 변화를 반영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고도의 전문성 및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적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가 쉽게 산재인정을 받을 수 없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또 산재보험 절차에 대해서도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작은 곳이라고 빼놓아서는 안 됩니다. 가내노동, 작은 공장, 일용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노동자인데도 산재보험 적용 자체를 안 해주고 제도에서 빼놓은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소규모 건설업 노동자, 가내에서 일하시는 분들, 상시노동자 수가 1명이 안 되는 사업장 노동자, 농업·임업·어업 등 상시적으로 5명 이하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에서 아예 빼놓았습니다. 서류가 복잡해서 빼 놓았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도 노동자가 5인이 안 되는 작은 업체에는 법적용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세한 사업주일 경우가 많고 정부가 감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인 이하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행정상 어렵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것 뿐입니다. 산재보험이든 근로기준법이든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사자가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개인사업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대부분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용되더라도 노동자가 빼달라고 신청할 수 있고(적용제외신청 제도), 보험료 부담을 사업주와 노동자가 나누도록 되어 있어 제대로 산재보험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도 다른 노동자들처럼 일합니다. 이들에게도 산재보험을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보험료도 사업주가 100% 부담해야 합니다.

최근 20년 동안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으로 일하시던 분이 카트에서 떨어져 1급장애인이 되었는데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 제도로 인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에 실렸습니다. 골프치는 사람들이 할 일을 대신 하다가 다쳤지만 사업주 눈치만 보다가, 정부가 제도를 잘 못 만들어서 산재보험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미 수천 만 원의 치료비가 들었는데, 앞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가 두 딸 앞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대기업과 재벌기업은 산재보험료 더 많이 내야

이 사회의 정의와 경제민주화 정신에 따라 대기업, 재벌기업이 더 많은 산재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이 사회의 정의와 경제민주화 정신에 따라 대기업, 재벌기업이 더 많은 산재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 양태훈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이 사회의 정의와 경제민주화 정신에 따라 대기업, 재벌기업이 더 많은 산재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100% 부담하고 있지만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 대한 보험료만 부담합니다. 따라서 대기업의 수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하청기업도 있지만,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가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산재보험을 이용하면 할수록 산재보험료를 더 내는 구조때문에 클린사업장(무사고 작업장)을 자랑하는 대기업에서는 산재사고가 나더라도 직접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해마다 산재보험료를 수백 억씩 할인받는 것입니다.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 비정규노동자에게 외주를 주니 대기업이 산재보험을 이용할 일이 있겠습니까. 산재보험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굳어져 있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팔고 많은 이득을 내는 대기업이 사회보험료를 더 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사회보험료를 매우 적게 부담하고 있습니다. 사회보험에 대한 기업과 노동자 부담률이 OECD 평균 5.4:3.1인데, 한국은 2.4:3.2로 오히려 노동자가 기업보다 많이 부담합니다. OECD 평균은 기업이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에서 노동자들보다 1.7배를 더 내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입니다.

기업이 노동자가 내는 보험료의 4분의 3정도 밖에 내지 않고 있습니다. 산재보험료 걷는 방식을 바꿔서 대기업이 더 많은 부담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공평하고 정의로운 일일 것입니다.

☞ 병원에서 배우는 노동인권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그동안 병원에서 배우는 노동인권 기획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노동건강연대 www.laborhealth.or.kr 02-469-3976



태그:#산재보험
댓글3

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