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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나온 <죄와 벌> 상편.
▲ 죄와 벌 열린책들에서 나온 <죄와 벌> 상편.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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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19세기 러시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라스꼴리니꼬프는 대학교를 휴학한 가난하지만 똑똑한 사내다. 그는 어느 날 가난 탓에 은시계를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리러 고리대금업자 알료나를 찾는데, 돈을 밝히고 의심 많은 그녀의 성품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병적인 사색을 통해 나폴레옹과 같이 선택된 강자라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사회의 도덕률을 짓밟을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알료나 같은 해로운 인간은 사회의 공익을 위해 없어져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죄와 벌>의 죄에 해당하는 살인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전당포에서 알료나를 살해한 라스꼴리니꼬프는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동생 리자베타도 무참히 살해한다. 그러나 이 행위 후에 찾아온 양심의 가책으로 그는 '인류와의 단절감'에 번민하는 보잘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그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창녀' 소냐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녀에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엎드려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또한 정욕을 절대시하는 신비주의자 스비드리가일로프의 허황된 삶과 죽음에서 자신의 추악한 투영을 보게 되고 마침내 자수하여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의 유형 중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경외를 깨닫고 그녀의 무릎에 몸을 던져 우는 모습을 끝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우는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그의 눈은 메말라 불타는 듯 날카롭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별안간 그는 잽싸게 온몸을 굽혀 방바닥에 몸을 던지고 그녀의 발에 키스했다. 쏘냐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미친 사람이라도 대하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을 하는 거에요. 나 같은 여자 앞에서?"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서 중얼거렸다.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아프도록 심하게 죄어들었다. 그는 곧 일어섰다. "나는 당신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 아니오. 나는 온 인류의 고통 앞에서 머리를 숙인 것이오."(<죄와 벌> 에필로그 중에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심리적 방황과 살인, 죄에 대한 번민과 고통, 그리고 극복을 그린 소설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알료나에게 은시계를 저당잡히고 돌아오던 중 마르멜라도프라는 술취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만사에 의욕을 잃어버린 알코올중독자로 딸인 소냐가 몸을 팔아 벌어오는 돈으로 술을 사먹으며 근근이 연명하는 인물이다.

이 사내를 통해 소냐를 알게 된 라스꼴리니꼬프는 가족을 위해 몸까지 팔아가며 살아가는 소냐와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알료나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점점 더 우울해진다. 소냐와 같이 안타까운 사정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알료나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생충이나 이와 같은' 알료나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리자베타를 죽인 일 때문에 이후 어머니와 동생을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죄 그리고 벌

라스꼴리니꼬프의 범죄(두 노파를 살해한 행위)에 대한 벌은 바로 무서운 고독과 소외였다. 경찰서에 출두한 첫 날 그는 모두가 자신으로부터 괴리되어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와 두냐를 포함해 모두가 낯선 인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 자주 '혼자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타인과의 괴리감이 그들과 있는 시간 자체를 고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서도 계속되는데 라스꼴리니꼬프는 유형지에서조차 다른 죄수들과 철저히 단절된 상태로 생활한다. 이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을 다른 죄수들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도 라스꼴리니꼬프의 '부활' 이후 다른 죄수들이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서 점차 해소되기에 이른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 우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죄에 대한 벌이 끝났으며 그가 다시 사람들 사이로 부활하여 돌아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처음 라스꼴리니꼬프의 의식 속에서는 두 노파에 대한 살해가 양심의 가책이 되지 않는다. 양심을 문제삼는 사람들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오히려 라스꼴리니꼬프는 이 문제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회피하려 든다. 그가 소냐에게 "나는 노파가 아니라 나 자신을 죽였다"라고 말한 것처럼 라스꼴리니꼬프가 죽인 것은 어쩌면 그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열된 자아는 어떻게 구원에 이르렀는가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이름은 라스꼴이라는 어휘에서 따온 말이다. 이 어휘는 17세기 러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러시아 정교의 분열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뜻을 가진 이름처럼 그는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대체로 이성과 본성사이의 분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낸 나폴레옹 이론에 따라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초월하려 하지만 알료나와 소냐의 사이에서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잣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인간에 이끌리는 자신에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행동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갖기도 한다. 길에서 술 취한 어떤 여자를 도와주는 장면이나 마르멜라도프 가족을 돕는 장면에서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성의 결론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결국엔 본성이 이성을 앞지른다.

그는 의지가 인간의 전부라고 말했지만 친구 라주미힌이 한 말처럼 인간의 본성이야말로인간의 전체를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것이다. 범죄 후 라스꼴리니꼬프는 범행에 대해 모두 자백해버리고픈 충동을 수차례 느낀다. 그의 본성이 죄가 억누르는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는 범죄를 계획했을 때부터 죄의식이 잠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무의식은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해줄 벌을 갈망한다. 범행현장에 다시 찾아가는 행위를 하고 경찰서에서 기절을 하거나 라주미힌에게 암시를 주고 경찰인 포르피리에게 찾아가는 행동 등은 이성의 이면에 잠재된 본성에 이끌려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라스꼴리니꼬프와 또 다른 측면으로 흥미를 주는 인물은 스비드리가일로프다. 이 사람은 돈 많고 변태적인 인물로서 상당부분 라스꼴리니꼬프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 채 권총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는 소냐와 같은 구원자적 인물이 없다는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여동생인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주인인 그는 두냐를 사랑했음에도 변태적인 습성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그는 마침내 두냐를 능욕하려던 장면에서 두냐가 쏜 총알이 스쳤을 때 자신이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점점 궁지에 몰려가던 중 스스로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찾아가는데 이 장면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세운 이론의 비범인적 인물로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라스꼴리니꼬프는 발길을 돌리고 자신이 한 행동이 범죄라는 확신을 갖는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소냐의 무릎에 안겨 우는 장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점은 라스꼴리니꼬프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에게 나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데 나자로의 부활은 라스꼴리니꼬프의 자아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를 받아들임으로서 비로소 타인을 경험한다. 그처럼 자의식이 강한 인간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이전의 자신을 죽임을 통해서다. 그토록 혼자 있기를 원했던 이전의 라스꼴리니꼬프를 죽이고 나서야 그는 소냐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 부활을 통해 마침내 새롭게 정화된 자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부활을 하기 전에 라스꼴리니꼬프는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은 자신의 진리가 옳다고 우기는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물고 뜯어서 결국은 모두 파멸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꿈은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자신의 사상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알려준다. 모두가 자신의 진리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행동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가 세상을 위해 노파를 죽인다고 했던 것도 사실은 실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죄와 벌 - 상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2009)


태그:#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홍대화, #라스꼴리니코프, #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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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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