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교학사 집필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 근현대사의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1944년 이전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내용이 완전히 삭제됐으며,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일부 여성들'만이 일본군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처럼 내용이 왜곡됐다.

한편, 지난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1세기인 지금도 분쟁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계속되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여성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아베 총리의 발언에서 '여성 인권 유린'의 대표 사례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었기에, 그 발언의 진정성은 의심 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을 막론하고, 위안부 문제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약화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9월 25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미술관에서 <2013 고양평화예술제>의 일환으로 열리고 있는 <"우리 시대 리얼리즘전"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의 소녀들…> 전시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행사장에 있던 김운성 민족미술협의회 부회장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자들에 대해 '이놈들아, 우린 살아있다'고 외치면서 싸우시는 상황에서, 우리 예술인들 또한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전시장엔 예술인들을 비롯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의 작품들이 있었다.

전시관 건물 입구 우측엔 위안부 소녀상이 있었다.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과 같은 모습이나 색깔을 입힌 게 차이점이었다. 그 뒤엔 수많은 위안부 소녀상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그 그림은 방문객들이 마음대로 색칠도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께 전하고픈 이야기도 적고 나서 붙인 것들이었다. 일부 그림들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 '좋아해요, 사랑해요' 등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김서경, 김운성. <소녀상 채색>
김서경, 김운성. <소녀상 채색> ⓒ 강선일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괴로운 듯이 얼굴을 싸매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세상을 본다>(김화순 작)란 제목의 이 그림은, 2013년 오늘의 괴로운 현실 속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또한 괴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인 듯했다.

그 옆쪽엔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있었는데, <아침마당>, <힐링캠프> 등의 방송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대한 것을 표현했다.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대중적으로 자주 다루길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었다.

 김화순. <그들의 세상을 본다>
김화순. <그들의 세상을 본다> ⓒ 강선일

 이진석. <아침마당-위안부 할머니>
이진석. <아침마당-위안부 할머니> ⓒ 강선일

나를 저절로 숙연해지게 만든 '흰 옷의 소녀들

작품들이 표현하는 주제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첫째, 위안부 할머니들의 순수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이었다. 그 그림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하얀 한복을 입음으로써, '민족의 순결'을 표현하는 듯했다.

<소녀 날다>(장순일 작)는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순백의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가는 장면이 혼합재료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다. 그런데 그 아래를 보니, 죽은 채로 겹겹이 쌓여 있던 흰 옷을 입은 소녀들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즉, 일본군에 의해 온갖 수모를 당하고 목숨을 잃은 수많은 소녀들이 부활하여 순백의 나비로 부활한다는 의미였다.

한편, <치유>(김종두 작)라는 그림은 분홍 진달래 꽃잎이 흩날리는 공간에 한 소녀가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걸 표현했다. 흩날리는 진달래 꽃잎은 소녀가 고향에 돌아온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고향에 돌아온 소녀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걸 표현한 것은 아닌지 나름대로 추측해봤다. 상당히 큰 화폭에 표현됐던 이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게 했다.

 김종두. <치유>
김종두. <치유> ⓒ 강선일

 장순일. <소녀 날다>
장순일. <소녀 날다> ⓒ 강선일

둘째, 지금도 할머니들을 짓누르는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표현하는 작품들이었다. 첫째 주제의 작품들이 상징성이 강했다면, 이 주제의 작품들은 그 표현 방식이 첫째 주제의 작품들보다 훨씬 직접적이었다. '군국주의 일본'을 표현하는 장치로서 욱일기가 등장했다. <능욕>(송효섭 작)이란 그림에선 장옷으로 몸을 거의 다 가린 여성을 그리고, 그 뒤엔 욱일기가 상당히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욱일기는 엄연한 피의자임에도 오히려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일본 정부 및 우익 진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슷한 표현은 <붉은 그림자2>(김영중 작)에서도 나오는데, 근심 어린 표정의 위안부 할머니 얼굴 위에 욱일기를 덧씌웠다. <actual sad>(박지영 작)는 지난해 6월 22일에 있었던 '위안부 소녀상 말뚝테러 사건'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송효섭. <능욕>
송효섭. <능욕> ⓒ 강선일

 김영중. <붉은 그림자2>
김영중. <붉은 그림자2> ⓒ 강선일

 박지영, actual sad
박지영, actual sad ⓒ 강선일

 주완수. <이웃나라의 선물 4종 세트-호빵맨>. 일본만화의 유명 캐릭터들을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내용의 사진들에 합성한 것이다. 호빵맨 외에도 짱구, 케로로, 도라에몽이 다른 사진에 합성되었다.
주완수. <이웃나라의 선물 4종 세트-호빵맨>. 일본만화의 유명 캐릭터들을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내용의 사진들에 합성한 것이다. 호빵맨 외에도 짱구, 케로로, 도라에몽이 다른 사진에 합성되었다. ⓒ 강선일

아직도 남은 일본 군국주의 악령 강하게 표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내용들을 작품 형태로 표현한 것들도 있었다. 이 분야의 작품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이 작품들은 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광운대 학생들이 제작한 것이었다.

<소녀상 지도로 위치 알리기>(조수용, 김도연, 정혜란 작)는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활동했나를 증명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인사동 거리 근처에 위안부 소녀상이 있음을 착안하여, 각 관공서 및 포털 사이트에 소녀상 위치를 명확히 알릴 수 있게 만들고자 활동한 것을 정리한 것이었다.

<위안부 할머니 시계>(김은지, 정윤선 작)는 시계에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들은 없이 '58'이라고만 적혀있다. 이 숫자는 이 작품을 만들던 시점에서의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수를 가리킨다(하지만 지난 8월 11일 이용녀 할머니가, 같은 달 24일 최선순 할머니가 별세함으로써 생존자 수는 56명으로 줄었다). 이 시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위안부 생존자 countdown. 237명의 위안부 신고자 중 살아계신 분 58분. 남은 분들을 가리키는 시계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식사과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지 않길 바랍니다."

위안부 생존자 수를 알리는 시계 김은지, 정윤선. <위안부 할머니 시계>. 그러나 지난 8월 11일 이용녀 할머니가, 같은 달 24일 최선순 할머니가 별세함으로써 생존자 수는 56명으로 줄었다.
위안부 생존자 수를 알리는 시계김은지, 정윤선. <위안부 할머니 시계>. 그러나 지난 8월 11일 이용녀 할머니가, 같은 달 24일 최선순 할머니가 별세함으로써 생존자 수는 56명으로 줄었다. ⓒ 강선일

김운성 부회장은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싣고, 독일은 나치의 범죄 내용에 대해 주변국에 사죄한다. 이처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과거의 죄악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데, 유독 일본만이 그러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심히 답답하다"고 했다.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일부 역사학자들마저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 관련 내용 상당량을 삭제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전시장을 나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전시회에 작품을 낸 사람들 및 매주 수요집회에 참여하면서 싸우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그들을 생각하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했다.


#민족미술협의회#위안부 할머니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