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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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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재벌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완화 방침을 공식화했다. 청와대를 찾은 10대 그룹 총수들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하면서 재벌들이 원하는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재계의 불만을 달래는데 힘을 쏟았다. 하반기에는 경제살리기가 경제민주화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상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입법에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정부가 신중히 검토해서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내놓은 대선 공약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당·정·청도 이미 비공개 회동을 통해 상법 개정안을 완화하자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 개정안 완화 시사... 대선 공약 번복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하도록 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감사위원을 따로 선임하도록 하는 것은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높여 대주주의 전횡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집중투표제는 1개의 주식에 선임될 이사의 수 만큼 투표권을 부여해, 소액주주의가 지금 보다 쉽게 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경영권을 위협 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재계의 우려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제기된 상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너무 많은 입법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 모든 입법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돼야지 본의 아니게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입법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며 "독소조항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재벌의 손을 들어줬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경제민주화 입법 과정에서 (재계의) 많은 고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 운영에 있어 정부의 역할보다 기업이 우선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넘어섰다는 선언처럼 비치는 대목이다.

"기업이 경제발전 이끌어... 기업인은 국정 동반자"

박 대통령은 오찬 간담회를 시작하면서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투자 여건 마련, 규제 개혁으로 한정시켰다. "일자리는 기업이 투자해서 만드는 것이니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법·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서도 "규제를 위한 규제를 하지 않겠다"며 "정부가 이끌어 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밝혔다. 이어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기업인들의 애로와 고통을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경제발전을 이끄는 것도 결국은 기업이고, 저는 기업인 여러분이 국정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재벌 총수들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사실상 재벌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경제민주화는 후퇴 논란을 넘어 용두사미로 끝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10일 언론사 논설·해설실장들을 만나 "(경제민주화 관련) 중점 법안들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통과됐다"며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는 투자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금산분리를 강화하는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은 재계의 반발로 대폭 수정돼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안, 재벌 총수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경제가중처벌법 개정안, 형이 확정된 뒤에는 대통령이 사면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면법 개정안 등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 대통령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경제민주화

경제활성화를 하반기 국정 운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은 박 대통령이 투자를 볼모로한 재벌들의 전방위 압박에 항복선언을 하면서 이들 법안들의 대폭 수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정치권을 향한 박 대통령의 주문은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정부가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규정한 분야에만 집중되는 등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CEO(최고경영자)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 대기업들에게 온갖 특혜를 베풀었지만 재벌들은 투자보다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것에 몰두했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입법과 투자를 맞바꾸는 거래를 했지만 부도 수표만 남은 것"이라며 "재벌 투자를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것은 경제살리기와 전혀 상관없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대변인은 또 "10그룹 총수 간담회는 한마디로 박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포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자리였다"며 "경제민주화를 포기할테니 대기업 투자를 늘려달라고,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태그:#박근혜, #경제민주화, #상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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