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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몇 개월 정도 찬찬히 돌아보면서 구하려고 했던 신혼집을 단 세 번의 부동산 방문만에 구하자 입주 날짜가 생각보다 빨라졌다. 곰씨와 나 둘 다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살림'을 합치는 게 월세라도 아낄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장 구하고, 신혼집 구하면 결혼준비는 다 끝난 거래."

결혼준비를 하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무슨 근거가 있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말을 철석 같이 믿었고(믿고 싶었고), 신혼집을 구하자 정말로 '결혼준비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식장과 신혼집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험난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신혼집을 채우는 것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돈 많이 쓰는 경험이 또 있을까

마트만 가면 살 게 한 가득.
 마트만 가면 살 게 한 가득.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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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라는 대문 제목을 내걸고 연재를 하면서 많이 받는 오해가 있는데 '소박한 결혼=돈 적게 쓰는 결혼'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되도록이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준비를 하자고 결심한 우리에게 금전적인 요소는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나와 곰씨가 생각한 '소박한 결혼'의 진짜 의미는 허례허식을 최대한 줄이고 우리가 꼭 필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채워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이유로 결혼준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리'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었다. 나는 우리의 결혼준비가 '일상'의 일부가 됐으면 했다. 너무 힘주지 않고 소박하게, 그리고 즐겁게. 비용을 줄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결혼식은 공공기관에서, 프러포즈는 간소하게, 예단은 생략, 예물은 곰씨네 부모님이 30여 년 전 결혼할 때 맞추셨던 것을 다시 세팅했더니 돈 들어갈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와이로 정한 신혼여행 정도에만 목돈이 들어갔다.

그런데 가구와 가전제품을 알아보니 이건 뭐, 어떤 의미로건 '소박하게'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집이 좁아서 들어갈 것도 별로 없겠군'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집이 좁아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침대, 장롱, 책상, 책장... 가격표를 보고 있으니 두 사람이 함께 '살림'을 차리는 것은 그야말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경험이 또 있을까. 자잘하게 사야 할 것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텅빈 싱크대를 보고 있으면 '저걸 언제 다 채우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결혼 준비 하다 보면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돼서 나중에는 돈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진다'고 하던 말이 실감났다.

집에 놓을 것들을 고르면서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내구성. 적어도 10년은 쓴다고 생각하니 아무거나 고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디자인까지 더하면 비용이 엄청나게 뛰었다.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는 가구를 보고 곰씨와 둘 다 한 눈에 반해서 가격을 물었다 괜스레 의기소침해진 적도 있었다. 그 비싼 가구를 실제로 구입한 사람들을 블로그에서 발견할 때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은 정해져 있었고, '이제 시작이니까'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우리 결혼할 때만 해도, 가구가 어딨노. 단칸방에 티비랑 냉장고만 놓고 시작하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하나하나 살림 늘려가는 게 보람이 있더라고. 처음부터 다 갖춰놓고 시작하면 그런 재미가 없지 않겠나."

신경 쓸 게 많아서 잠이 안 온다는 예비신랑

곰씨가 엑셀로 깨알같이 그린 신혼집 도면.
 곰씨가 엑셀로 깨알같이 그린 신혼집 도면.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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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가전제품은 대부분 '곰씨'가 알아봤다. 하루는 가구를 보러 갔는데 곰씨가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는 거다. 엑셀로 그려온 집 도면이었다. 어찌나 깨알같이 잘 그렸는지, 나도 직원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꼼꼼하신 신랑님은 처음이에요."

요리를 좋아하는 곰씨는 이미 마음에 드는 그릇까지 점찍어 뒀다. 반면, 나는 같이 보러 다니기만 했지 곰씨만큼 의욕적이지 못했다. '부서가 바뀌니까 정신이 없어서, 책 작업 때문에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러브하우스'에 대한 로망이나 관심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곰씨에게 해준 배려(?)는 되도록 토달지 않는 것이었다. 다행히 곰씨와 내 취향이 비슷해서 거의 트러블이 없었다.

우리 커플을 보고 주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준비는 제가 다하고 예랑(예비신랑)이는 일하느라 바쁘다고 그냥 고개만 끄덕여요'라는 스테레오 타입 속 '예랑'이가 된 느낌이랄까. 요즘이야 그런 고정된 성역할 개념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곰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결혼, 날로 먹으려고 하지마."

그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홍대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곰씨가 요즘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너무 설레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곰씨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응? 잠이 안 온다고? 어떻게 잠이 안 올 수가 있지.'

'먹고 자기 위해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긴, 곰씨가 숫자에 밝다는 이유로 대출부터 시작해서 가구, 가전제품 사는 것까지 돈 문제는 모두 곰씨가 관리했고, 대부분 곰씨 명의로 주문하고 결제하다 보니 곰씨의 휴대폰은 수시로 울려댔다. 그래, 내가 너무 무심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나서서 뭔가 사려고 하자, 곰씨가 어찌나 깐깐한지. '곰주부'님은 이미 장기간의 인터넷 쇼핑 경험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터라 물건 하나하나 구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곰씨도 자기가 이 정도로 까다로운 줄, 결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살림 차맀다매? 재미지게 살아라, 재미지게"

집에만 오면 택배가 한 가득.
 집에만 오면 택배가 한 가득.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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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자 내게도 임무가 떨어졌다. 바로 퇴근 후 바로 집에 와서 가구와 가전제품 설치기사 아저씨, 그리고 택배를 기다리는 것. 이사하던 날 폭우가 쏟아지면서 들어오기로 했던 가구와 가전제품이 미처 못 들어온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이 꼬이면서 나는 2주 넘게 매일 매일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야했다. 자연스럽게 약속은 전혀 잡지 못했다.

집 정리도 내가 하기로 했다. 곰씨가 중국으로 출장을 간 일 주일 동안 여름휴가를 내고 집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치우고, 정리하고. 다행히 부산에서 엄마가 올라와 지원군이 되어줬다.

이렇게 집에 '올인'하는 동안 기존에 내가 하던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끔씩 우울해지기도 했다. 1~2주에 한 번씩은 꼭 작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집 근처 카페에서 글 쓰고 책 읽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이건 뭐, 퇴근하고 나서 밥 먹고 설거지하고 집 한 번 쓸고 닦고 하면 시간이 금방 갔다. 두 명이 사니까 빨래는 어찌나 많은지. 하지만 내가 당장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늘어나는 거니까, 그리고 '곰주부'도 나만큼 열심히 하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사 직후, 밥상이 없어서 식사는 신문지 위에서.
 이사 직후, 밥상이 없어서 식사는 신문지 위에서.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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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집이 어느 정도 '사람 사는 집'의 꼴을 갖추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집에 대한 애정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자취를 하던 10년 가까이 단순히 잠자는 곳이었던 집은 이제 삶의 공간이 되었다. 가사분담은 둘 다 직장에 다니니까 서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양심적으로' 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랜 시간 연애를 하면서 '이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지만, 막상 같이 사니까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다(아직까지는). 다만, 이제는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니라 나와 곰씨가 함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외할머니가 해 준 조언인 것 같다.

"살림 차맀다매? 그래, 재미지게 살아라. 재미지게."


태그:#소박한 결혼, #결혼, #혼수, #이사, #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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