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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길에 소나무 우거진 솔 숲에서 바라본 빛이 많은 동네, 미리벌의 빛나는 아침.
▲ 밀양강의 일출 아침 산책 길에 소나무 우거진 솔 숲에서 바라본 빛이 많은 동네, 미리벌의 빛나는 아침.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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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호텔 청계산 자락에서의 운공조식

청계산 자락에서 6개월하고도 11일을 운공조식의 내공을 쌓고 마침내 내나라 내 땅의 속세에 던져진 나그네! 드디어, 실제적으로 20여 년의 긴 방랑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길신 들린 나그네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마음으로 오랜 그리움의 연인이었던, 어머니의 속살처럼 아늑한 너른 대지의 들풀에 뜨거운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아! 좋습니다. 향기로운 꽃지짐으로 다가오는 내 산하와의 달콤한 입맞춤이 '너~어~무' 좋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좋습니다.

이십 년 만에 걸쭉한 막걸리도 한 사발 쭉 들이켰습니다. 신토불이 우리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안주 삼아 나그네가 이십 여 년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앉았던 청계산 자락의 풍속도를 잠깐 그려보겠습니다.

원시 시대의 초기 인류가 새겼던 조각그림들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 밀양강변의 조각공원 원시 시대의 초기 인류가 새겼던 조각그림들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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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가 지난 1월 1일 아침 담당교도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뱉은 첫 일성은 "정말 오랜만에 친정에 돌아왔는데 씨암탉 한 마리 내 놓으시지요. 하하하"라고 말했습니다. 청계산 자락 국립호텔 방은 나그네가 이십 여 년 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이른바 '남북고위급회담 방문사건'에 연루되어 신세를 진 적이 있었지요.

신기하게도 정년을 앞둔 어느 나이 지긋한 교도관이 오래 전의 나그네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시에도 나그네가 조금 별났나 봅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유수의 국립호텔답게 각계의 거물(?)들과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만사형통의 이상득옹은 이른 아침 운동시간에 긴긴 회랑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어김없이 병색 완연한(?) 모습에 마스크로 얼굴 거의 전부를 가리고 담당교도관의 부축을 받으며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처량하고 불쌍하게 걸어갔습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전형을 보는 듯 했습니다.

상득옹이 거의 매일 지나가는 회랑 중간쯤에 독거사동인 7사가 있는데, 이곳 독거 방에 명박산성 안에서 5년 내내 상득옹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두언 '거사'가 가부좌를 틀고 와신상담하고 있었습니다. 참, 두언 거사는 명박산성에서도 만사형통의 기세에 눌려 후미지고 외진 곳에서 토사구팽 당한 채 찌그러져 생활했었다고 스스로 주장했었던가요?

어쨌거나 명박산성 안에서 피 튀기는 기 싸움을 벌였던 두 '낙방거사'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법무부 국립호텔에 투숙 아닌 감금되어,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쓸개 없는 반달곰 신세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그네는 무척 궁금합니다. 두 거사는 주거 제한된 국립호텔 내에서 오다가다 가끔은 서로 마주칠 일도 있겠지요.

나그네의 운동 친구 중에 '은 머시기'라는 조폭 보스가 있었습니다. 은은 상득옹의 짠한(?) 모습을 보면서 '늙고 병든 노인네를 여론몰이로 국립호텔에 감금시켰다'고 단순한 진단을 내리기도 하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은은 60대 초반의 또 다른 건달보스(?)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고 있었는데, 그의 부인은 광주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컨테이너 박스에 숨어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윤한봉 선생의 여동생이라나요? 은 머시기는 조폭보스 답지 않게 운동 시간에 운동은 뒷전이고 네잎클로버 찾기에 천착했습니다. 접견 때 '마누라에게 건네주면 무척 행복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분의 네잎클로버는 사동도우미 등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희대의 흉악범이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이름만 대면 알만한 강아무개씨는 나그네를 처음 대면했을 때 한동안은 나그네를 '어르신'이라 불렀습니다. 으잉! 웬 어르신? 아마도 희끗희끗한 구렛나루 수염 때문이었겠지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서로간의 행동거지나 말 섞임의 횟수가 늘어나자 이번엔 나그네를 '선생님'이라 부르더군요. 흐흐흐.

반세기만에 가장 추웠다는 혹한의 겨울도 지나고 담장 안 길양이들도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흥에 겨워 나른한 오수를 즐기던 어느 날, 슬그머니 호칭이 '형님'으로 바뀌더군요. 강씨의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씨는 독거운동장 한켠에 해마다 봄이면 푸성귀나 꽃들을 키워오고 있었습니다. 텃밭 가꾸는 일에 조금 내공이 있는 듯 해 보였습니다. 나그네가 그의 텃밭 가꾸기에 관심을 보이자 대뜸 돌아오는 강씨의 말풍선은 이랬습니다.

"형님! 텃밭 가꾸기에 흥미가 있으시면 내년 봄에는 지가 앞장서서 도와 드리지유. 염려 붙들어 매랑게유."

나그네는 살점 두둑한 강씨의 어깨살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힘껏 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악담을 해라. 악담을 해. 이 친구야. 그래, 올 겨울을 또 이곳 국립호텔 독거방에서 보내라구? 에라이, 천하에...  하하하하하"
"말이 그렇게 흘러 갔남유? 헤헤헤헤헤. 그럼 편히 쉬시유. 내일 뵈유. 형님."

1심 최종 판결을 하루 앞둔 날, 운동 마치고 긴 회랑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두 사람의 말풍선이었습니다. 강씨는 옥방 안 건달들도 '깨갱'하는 천하에 둘도 없는 흉악범이기도 했지만 '강호동' 찜 쪄 먹는 넉살 좋은 두 얼굴의 중년 사내였습니다.

나그네, 드디어 내 땅의 강변가에 새 둥지를 틀고

밀양강변 따라 태고적 인류의 조각그림들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 순수하고 천진했던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미르피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밀양강변의 조각공원 밀양강변 따라 태고적 인류의 조각그림들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 순수하고 천진했던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미르피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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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게르만 나라에서 귀국할 때의 마음자리대로 청계산 자락에서 가부좌를 풀고 하산한 이래 연로하신 엄니, 아부지가 계시는 인천과 엄지엄마와 똥가리가 3년 전에 먼저 귀국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밀양을 오가며 내나라 내 땅의 살가운 공기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난 8월 15일이 아들 내미 똥가리를 내나라 내 땅으로 유학 보낸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었네요. 지금 오랜만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여기는 밀양강변의 한 자락 입니다.

"피해자인 내가 아직 너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인 니가 스스로를 용서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이 되는 겨?"

독일의 유명한 맥주 중의 하나인 크롬바흐를 선전할 때 나오는 배경하고 흡사하다.
▲ 밀양강 한 가운데 소담하게 자리한 섬 조각 하나 독일의 유명한 맥주 중의 하나인 크롬바흐를 선전할 때 나오는 배경하고 흡사하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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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에서 메아리 없는 절규를 허공에 날려 보낸 전도현의 목소리가 시골스런 거리 골목에 배여 있는 곳입니다. 오잉? 웬 뜬금없는 '밀양아리랑' 타령이냐고요? 앞으로 내나라 내 땅에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나그네의 묘비명을 세울 유력한 곳이니 당연히 언급해야지요.

'순악질 여사'는 자신의 묘비명을 '웃기고 자빠졌네'로 정했다고 만천하에 공표했습니다. 함축적인 풍자와 유머가 스며있는 멋진 묘비명이라고 나그네는 바람의 자유인다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해 봅니다. 그 아류로 나그네의 묘비명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 들풀하나 되어 여기 자빠졌네' 라고 정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에 있습니다^^.

아참, 지난 겨울 게르만 나라를 떠나올 때 국제 나그네의 여정을 길신에게 맡기고 작별을 고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나그네란 말은 쓰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곳 미리벌에서 '들풀하나'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 해서 나그네의 호칭은 이제부터 '들풀하나'입니다. 미리벌은 '빛이 많은 동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밀양의 옛스러운 말입니다.

밀양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 이곳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밀양이라 쓰고 '미르피아'라 부르기도 합니다. 들풀하나가 이곳에 정착한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은지라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밀양과 유토피아가 적절히 결합한 신조어 인 듯싶습니다. 그동안 들풀하나가 대충 돌아본 밀양의 자연환경만큼은 유토피아 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산경 수려한 아름다운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옥의 티라면 밀양이 대구분지의 영향권 하에 속한 지역이라 여름에 땀을 좀 많이 흘려야 하는 것이겠지요.

온 누리의 '미르피아'를 꿈꾸면서

우리 짐은 밀양강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섬 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삼문동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 창가에서 바라본 밀양강 우리 짐은 밀양강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섬 귀퉁이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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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하나가 엄지엄마와 아들 내미 똥가리와 함께 노스탤지어에 젖어 아련한 추억의 시간들을 보냈던, 게르만 나라의 마인강변을 연상케 하는 밀양강변은 정말, 들풀하나의 그동안 지친 심신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들풀하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를 전후로 해서 마인강변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그리고 미리벌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강변의 들풀과 이름 모를 풀꽃과 오랜 세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황토 흙에 입맞춤을 합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똥가리도 밀양을 참 좋아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자주 인천과 서울을 오갔지만, 혼잡한 대도시보다 게르만 나라에서 나고 자랐던 시골마을과 분위기가 비슷한 밀양에서 포근함을 느끼는 아들 내미입니다. 녀석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3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생소한(?) 문화의 충돌과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한동안 독일말도, 우리말도 하지 않으려 했던 녀석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려의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올 여름방학에도 우등상을 받아와서 아빠에게 자랑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고 잘 배웠다는 게 더없이 흐뭇하고 대견스럽습니다. 아빠 없는 하늘 아래서 3년을 보냈던 똥가리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자 하루 종일 곁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전방위로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우리말로 말이지요. 들풀하나는 지금, 녀석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하느라 바쁘지만 밀양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에 한껏 취한 것과 동일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밀양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들풀 하나는 매일 새벽 이 길을 걷는다. 그리고 온갖 풀벌레들과 들풀들과 대화를 나눈다.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걸어야겠다.
▲ 밀양 강변의 산책로 집에서 밀양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들풀 하나는 매일 새벽 이 길을 걷는다. 그리고 온갖 풀벌레들과 들풀들과 대화를 나눈다.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걸어야겠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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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름방학의 끝자락 무렵, 싱그러운 아침입니다. 무더웠던 더위도 한풀 꺾인 듯합니다. 들풀하나는 밀양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긴 세월, 애절양이 되어 그리워했던 내나라 내 땅에 돌아온 이후의 간단한 소회를 쓰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전 독일에서 대형사고로 인한 뇌수술을 받은 이후 모든 면에서 사고 전에 비해 5% 부족함을 느낍니다.

해서 글쓰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만 염라대왕과 생사를 건 담판을 지을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지요. 천우신조인 것도 있을 거고, 또 그동안 게르만나라 의사의 친절한 안내와 청계산 자락에서 가부좌를 틀고 꾸준하게 자가 치료를 한 덕도 있겠지요. 무엇보다 내나라 내 땅의 풀 내음을 맘껏 들이켜서 엔돌핀의 기가 충만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거실에는 아들 내미 똥가리가 방학의 특권을 만끽하면서 늦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런 소소한 행복 속에서도 한편으론 불편한 구석도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이곳 밀양은 송전탑 문제로 우리의 '엄니, 아부지들'이 무지 고생을 하고 있다고 바람결 따라 들은 풍월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직 바깥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서로 윈윈하는 길은 정말 없을까요? '빛이 많은 동네' 미리벌이 사실상의 '미르피아'로 나아가는 방향타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아침입니다.

사족 하나 덧붙입니다. 청계산 자락으로 부족한 내공을 더 쌓기 위해 다시 입산(?)할 지도 모릅니다. 검찰 측에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들풀하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이기 때문이지요.


태그:#빛이 많은 동네, #청계산 자락, #밀양아리랑, #미리벌, #들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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