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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마리의 새끼들이 어미에게 밥을 달라고 조르고 있다.
▲ . 여섯마리의 새끼들이 어미에게 밥을 달라고 조르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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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아는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베란다에 새가 알을 낳았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정확히는 베란다 난간에 붙어있는 화단에 알을 낳았다. 화단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붉은 색 알. 황조롱이의 알이었다.

자신의 집에 황조롱이가 둥지를 튼 게 신기한 듯 매일매일 황조롱이 소식을 올려줬다. 처음엔 알이 두 개였다가 네 개로 늘어나고 여섯 개로 늘어났다. 그 후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여섯째인 막내도 무사히 태어났다.

황조롱이가 번식을 한 이 집이 경기도 수원인데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너무 멀었다. 처음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도심 속에 있는 황조롱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도 흔히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하루 날 잡고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었다는 집을 방문했다.

새가 둥지를 틀었다면, 본체만체 해주세요

사람의 집에 새가 둥지를 튼 일은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옛적부터 <흥부놀부전>을 보면 알겠지만 초가집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고 시골에 가면 창고나 헛간같은 곳에 딱새나 박새 같이 작은 새들이 둥지를 튼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골에서 새가 사람들의 공간에 적응하여 살듯이 도시에도 사람들의 공간에 적응하는 종들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즐겨찾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새가 집에 둥지를 틀었어요'라고 검색 해봐도 많은 글을 찾을 수 있다.

"새가 저희 집에 둥지를 틀었어요. 너무 귀여워서 만지려고 했는데 갑자기 날아가서는 안 돌아와요."
"새가 저희 베란다에 둥지를 틀었는데 너무 시끄럽고 똥 냄새가 심해서 둥지 치우고 새끼는 경비실에 맡겨뒀습니다. 새 이름이 뭔가요?"
"(알을 손으로 잡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새가 알을 낳았어요. 이 새 이름이 뭐죠? 앞으로 뭘 먹여주면 되나요?"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내 속은 답답해서 타죽으려고 한다. 새들은 새끼를 무사히 길러내기 위해서 천적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공간에다가 둥지를 트는데, 사람들이 둥지에 관심을 보이면 새가 둥지를 포기하고 날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알을 품고 있는 포란시기에는 새들이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둥지에 있는 새에게 가까이 접근하거나 알을 손으로 직접 만지면 어미새는 둥지에 있는 알들을 포기하고 떠나버리고 만다.

그래서 내가 이 집 주인에게도 2주 정도만 지나면 알에서 새끼가 나오니까 조금만 참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는 쳐다보지도 말아달라고 당부했었다. 새끼가 알에서 나온 이후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서 관찰해도 좋으니 딱 2주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게다가 먹이 걱정은 왜 하는 걸까. 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애완동물 쯤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황조롱이 '키우기'라는 글들도 자주 보이니까 말이다.

이미 수 만년 동안 야생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이다. 야생에서 먹이를 어떻게 구해야하는지는 우리 사람들보다 새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먹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키운다기보다는 동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황조롱이는 천연기념물 323호로서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종이다. 물론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종의 개체수를 늘리는 번식을 방해한 경우는 깐깐하게 따지자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황조롱이 같은 천연기념물은 조심히 다뤄야 할 귀하신 몸들이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만약 황조롱이가 자신의 베란다에 둥지를 틀었을 경우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오로지 간단하게 문화재청에다가 전화를 거는 것이다. 베란다에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었다고 신고하고,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흐뭇하게 아빠미소를 지어주며 쳐다만 보면 된다. 훌륭하게도 내가 방문한 이 집 주인은 황조롱이 새끼들이 다 자랄 때까지 방관만 해주셨다.

아파트 11층에 둥지 튼 황조롱이, 왜?

새끼가 어미에게 장지뱀을 받아먹고 있다.
▲ . 새끼가 어미에게 장지뱀을 받아먹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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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가 둥지를 틀었다는 집에 방문했다. 베란다 화분에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황조롱이 암컷과 데굴데굴 기어다니는 여섯 마리의 황조롱이 아기들이 있었다. 진짜 이런 도심 속 사람들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는 게 직접 보니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려 11층이나 되는 높은 이 곳에 왜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안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 있으니 적어도 뱀 같이 알을 노리는 동물들이 오진 못 할 것이고 과감한 결정이지만 사람들이 있으니 까치나 까마귀 같은 녀석들도 함부로 못 올 것이다. 구렁이로부터 보호 받는 제비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그 다음 이유는 편리성에 있을 것 같다.

보통 황조롱이는 까치의 둥지를 빼앗아 쓰거나 빈둥지를 쓰는데 그런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둥지보다 평평한 흙이 깔린 화단이 더 새끼를 끼우는데 더 편리한 게 아닐까? 원래 둥지 주인이던 까치와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고 말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것저것 추측만 하고 있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알맞게 짤라 먹여주고 있다.
▲ .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알맞게 짤라 먹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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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모여자는 황조롱이 새끼들.
▲ . 꽁꽁 모여자는 황조롱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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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 황조롱이는 이 집 식구들과 익숙해져서 사람을 봐도 날아가진 않지만 낯선 나를 보고도 과연 안 날아갈까? 그동안은 황조롱이가 새끼를 기르는데 방해가 될까봐 창문을 자주 열지 않으셨다지만 오늘은 촬영을 위해 창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다행히도 황조롱이는 날아가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황조롱이는 동그란 검은 눈동자를,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부릅뜨고 있었다. 나를 봐도 날아가지 않고, 이 집 식구들은 황조롱이에게 익숙한 존재이니까 나도 가까이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렌즈를 들이밀고 편안하게 사진을 찍어도 나를 무시해주고 새끼를 돌 볼 줄 알았는데 황조롱이 어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심지어 새끼에게 먹이를 먹일 때조차 내가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먹이를 먹이던 것도 중단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야생동물은 야생동물이다. 고작 사진을 찍겠다는 나로 인해 어미가 불안해고 새끼들이 굶게 된다면 안 될 일이기에 둥지 앞에다가 캠코더로 관찰 카메라로 설치해놓고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망원렌즈로 관찰했다. 혹시 몰라 망원렌즈도 가져오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뚫어져라 보는 황조롱이 어미, 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사람이 익숙한 황조롱이 새끼. 그러나 야생동물은 야생동물.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자제해야한다.
▲ . 사람이 익숙한 황조롱이 새끼. 그러나 야생동물은 야생동물.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자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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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는 어미는 처음 1분여간은 캠코더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금방 캠코더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새끼들을 돌보는데 열중했다. 아파트 11층에 내리쬐는 햇빛은 새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온도인지 다들 그늘을 찾아서 기어 다녔다. 보통 어미가 새끼들에게 밥을 먹일 때 강한 놈이 먹이를 가장 많이 받아먹고 약한 놈일수록 적게 받아먹는 서열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도 서열이 보인다.

제일 덩치가 큰 놈들은 온 몸이 가려지는 큰 그늘 아래에서 쓰러져 누워있는 상태로 쉬는데 덩치가 작은 녀석은 머리만 간신히 그늘 속에 넣고 온 몸은 햇빛에 노출 되어있는 상태로 헉헉대며 어미를 기다린다. 어미는 간간히 날개를 펴줘서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품안에 새끼들을 품어주는데 역시 모두를 품어주진 못 한다.

수컷은 몇 십분 간격으로 먹이를 공급해준다. 이날은 쥐와 장지뱀을 제일 많이 잡아왔다. 수컷이 건너편 아파트에서 "께~엑 께~엑" 울면 암컷이 날아가 수컷에게서 먹이를 받아오기도 하고 수컷이 직접 둥지까지 날아와 새끼에게 물어다주기도 한다. 암컷이 먹이를 새끼들에게 먹여줄 때는 "꾹! 꾹!" 소리를 낸다. 지빠귀들도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일 때는 이런 소리를 내던데 맹금류인 황조롱이도 비슷한 소리를 낸다는 게 흥미롭다.

어미가 밥 먹으라고 울어대면 땅 바닥에 풀 죽은 듯 누워있던 새끼들이 번개같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어미에게 달려든다. 암컷은 먹이를 새끼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준 후 직접 입으로 넣어주는데 여기서 덩치 큰 놈들이 먹이를 독차지하는 것이다. 작은 놈은 한 입도 못 먹는 경우도 많았다.

수컷은 먹이공급 담당.
▲ . 수컷은 먹이공급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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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물고 오지 않은 암컷. 새끼를 그윽히 쳐다보고만 있다.
▲ . 먹이를 물고 오지 않은 암컷. 새끼를 그윽히 쳐다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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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날갯짓, 보기엔 쉬워 보여도 쉬운 게 아니랍니다

나의 두 번째 황조롱이 둥지 방문은 새끼가 거의 다 자라서 이소를 하기 직전이었을 때였다. 3일에 한 번 꼴로 방문하여 황조롱이 새끼들의 성장을 관찰하려고 했지만 내가 너무 집 주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게 되어서 새끼가 둥지를 떠나기 직전인 마지막에야 또 올 수 있었다. 만약 우리 집 베란다에 둥지를 틀면 내가 엄청 이뻐해줄텐데! 크….

다 자란 새끼가 이제는 스스로 먹이를 찢어먹는다.
▲ . 다 자란 새끼가 이제는 스스로 먹이를 찢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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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먹이 경쟁에서 밀린 막내가 도태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이 근방 지역에는 쥐가 많은지 다행히도 새끼 6마리 모두 어미만큼 훌륭하게 자라서 날갯짓 연습도 하고 화분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그 좁은 공간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늘을 자유로히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도 이 좁은 공간에 갇혀있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닐 거다.

그래도 어쩌겠나. 완벽하게 다 자라서 날개 짓의 힘이 강해지기 전에 둥지를 벗어나면 아파트 1층으로 떨어져 죽을텐데. 나도 예전에 55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뛰어본 적이 있는데 점프하기 직전의 그 공포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 몸에는 줄이라도 묶여있었지 얘들은 뛰어내렸다가 날갯짓 잘 못 하면 그대로 바로 저승행이니 새끼들이 둥지를 벗어나는 데에는 철저한 준비와 엄청난 용기가 필요로 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미가 둥지로 날아왔다. 보통 둥지로 날아올 때는 항상 부리에 쥐를 물고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 밥 달라고 울어대는 새끼들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다. 새끼들의 덩치가 아무리 어미만 해졌다고 해도 어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새끼들이랑은 차원이 다른다.

다 자란 황조롱이 새끼들이 이소할 채비를 하고 있따.
▲ . 다 자란 황조롱이 새끼들이 이소할 채비를 하고 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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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에게 곧 둥지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인지 어미가 먹이를 물고 나타나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새끼들이 이소를 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 위해 왔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는지 그날 새끼들의 이소를 보지 못했다. 며칠 뒤 페이스북에 새끼들이 무사히 이소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다들 무사히 자란 것 같아 다행이다.

인간들의 공간에서 새끼를 기르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한 황조롱이 어미와 황조롱이에게 아무 불만 없이 베란다 화분을 내어준 집 주인 이원우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이 조금 씩 한 발자국 씩 어울러져 나중에는 아무 문제 없이 서로 잘 사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집에 새가 둥지를 틀었을 경우 매정하게 내쫓지 말고 한달만 자리를 내어주세요. 그러면 새끼 새가 성장하는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태그:#황조롱이, #새, #조류, #사람,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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