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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0 17:50최종 업데이트 13.04.22 13:12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은 누구일까?

<올로프 팔메>를 읽고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국민이 정치인을 사랑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사랑은커녕 미워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한국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스웨덴에서는 가능한 일이란다. <올로프 팔메> 책 표지를 읽으면서 궁금해졌다. 스웨덴 국민에게 사랑을 받은 정치인 '올로프 팔메'가 어떤 사람인지.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책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던 하수정씨가 썼다. 사실 나에게는 북유럽 국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북유럽 국가는 복지제도가 가장 잘 완비된 국가이며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대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삼성이 한때 모델로 삼았던 발렌베리 가문은 바로 스웨덴의 기업 가문이기도 하다. 발렌베리 가문의 신조는 "존재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지 말라"이다. 스웨덴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가문과 스웨덴의 사민주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스웨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풀 수 있을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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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올로프 팔메가 암살을 당한 날부터 글이 시작된다. 당시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 총리였다. 글쓴이는 사건이 있었던 날 그의 행적을 천천히 좇는다.

1986년 2월 28일 금요일 저녁, 일과를 마친 총리는 경호원도 없이 아내와 함께 시내 중심 극장가에서 둘째 아들 내외를 만난다. 현직 총리가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고 시내를 돌아다닌다? 사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25년 전의 스웨덴은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고 한다. 밤 9시에 시작된 영화는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아들 내외와 헤어진 팔메는 아내와 함께 길을 걸었다.

"이때 총소리가 울렸다. 총을 든 사람은 팔메의 등 뒤쪽 가까이에 서 있었다. 팔메는 뒤에서 총격을 받았다. 등에서 가슴 윗부분까지 관통했다. 치명상이었다. 두 번째 탄환은 아내인 리스베트를 향해 발사되었다. 리스베트는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총을 들고 있던 남자는 역 바로 옆으로 난 투넬가탄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 책에서.

경호원이 없었으니 범인을 쫓을 사람도 없었다. 신고는 신속하게 되었고 사건 발생 4분 후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목격자가 알려 준 쪽으로 범인을 쫓아 뛰어갔다. 1분 후 응급차가 도착해서 팔메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팔메가 죽은 지 25년이 지난 2011년, 경찰은 사건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당시까지 수사 비용으로 약 825억 원을 썼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83억 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약속했다. 스스로 암살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130명이고, 지금도 사건에 대한 제보가 하루 두세 건씩 들어온 단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살인죄에 관해 공소시효가 25년임을 감안해서 정부는 특별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기로 했다. 범인을 잡고자 하는 스웨덴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곧이어 책은 경찰의 사후 처리가 얼마나 형편이 없었는지 하나 하나 되짚는다. 범인의 도주로 봉쇄를 뒤늦게 했던 점들을 나열한다. 글을 읽는 내내 추리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궁금증이 나를 이끌었다. 누가 왜 스웨덴의 현직 총리를 죽었을까? 글쓴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볼 세력이 누구인가를 집어 나간다.

극우 세력. 극우 세력은 당연히 사민당 출신인 올로프 팔메의 정책에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쿠르드노동자당. 스웨덴은 경제적 이민을 받지 않는 반면 난민 이민에는 우호적이다. 쿠르드계 난민의 조직 중 스웨덴 정부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지목된 한 단체 지도자의 입국을 스웨덴 정부가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 단체가 연이어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이 되면서 회원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들 조직이 스웨덴 경찰에 의해 팔메 총리의 암살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또다른 세력으로 올로프 팔메 때문에 무기를 팔지 못하게 된 스웨덴 군수산업체가 있다. 스웨덴은 중립국의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무기 개발과 제조에 힘을 썼다. 그래서 세계 9위의 무기 수출국이다. 하지만 전쟁지역에 무기를 파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올로프 팔메가 이란과 이라크를 오가면 평화 협상을 하는 동안 스웨덴의 무기업체가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 이란에 무기를 공급해 온 것이 알려졌다. 올로프 팔메는 무기 판매에 대한 수사에 착수를 했고 수출중인 무기 선적을 무기한 중단을 시켰다. 이란 정부 관계자가 항의를 하러 총리를 방문한 날은 암살이 있기 24일 전이었다.

그리고 남아프리가 공화국 인종 분리주의자들 또한 팔메를 암살한 범인이 아닌가 의심을 받았다. 올로프 팔메는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남아공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죽기 일주일 전에도 "인종 분리 정책은 개혁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 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팔메는 반 아파르트헤이트를 외치는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를 지원했으며, 올리버 탐보를 비롯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암살 사건 초기부터 남아공 연루설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 본문 54쪽.

스웨덴 경찰은 남아공에 방문하여 수사를 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한다. 이렇듯 팔메는 국제 분쟁이 있는 곳에 중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팔메는 총리 임기를 마치면 유엔 사무총장으로 출마할 계획이었다. 팔메는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한 제3세계와 중국까지 그의 편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에게 유엔 사무총장의 길은 멀지 않았다. 팔메는 스웨덴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다그 함마르셸드의 뒤를 이을 인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제 2의 함마르셸드를 원하지 않았다. 함마르셸드 역시 1961년 9월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로 가는 길에 추락사했다." - 본문 59쪽.

이 사건의 범인을 여전히 찾지 못하는 것은 의심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총리로 재직 시 부모 육아 휴직 제도를 개혁하여 스웨덴의 양성평등을 한 단계 올려놓았고, 냉전 시대의 중립국 총리로 분쟁지역 평화와 대화를 위해 노력을 했다. 덕분에 변방의 스웨덴은 국제무대에서 주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민들이 팔메 총리를 사랑하기까지 했던 이유는 그가 좋은 정책을 편 훌륭한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비극적 최후를 맞은 지도자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메의 비극적 죽음은 국민들이 팔메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품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들이 그의 죽음에 관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라도 총리 암살자와 그 배후가 밝혀진다면 스웨덴 국민은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하수정 지음, 후마니타스(2013)


#하수정#올로프 팔메#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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